338만명 찾은 청와대, 스토리 살려야 ‘K관광 성지’된다
청와대 개방 1년
청와대는 평일임에도 관람객으로 북적였다. 현장체험학습을 온 초등학생들, 나들이 나온 노인복지관 어르신들은 해맑은 모습이었다. 청와대 방문 예약은 전날 늦은 오후에 했지만, 승인을 받았다. 1년 전이라면 어림도 없었다. 당시에는 한 주 전에 예약해야 관람이 가능했다. 지난해 개방 뒤 5월(10일~31일) 관람객은 57만여 명이나 몰렸다. 올해 4월까지 12개월간 338만여 명이 찾았다. 지난해 전국 주요관광지 방문객은 에버랜드(370만여 명)가 1위. 청와대는 아직 관련 통계의 대상이 아니지만 12개월의 성적표를 대입하면 2위에 해당한다.
그런데 지난달에는 23만여 명이 방문했다. 단순히 숫자만 보면 1년 새 반토막 이하다. 청와대에 대한 관심이 식은 걸까. 이훈 한양대 국제관광대학원 원장은 “우리나라 관광지는 계절을 많이 탄다”며 “여기에 호기심과 유행, 코로나19같은 변수가 플러스 혹은 마이너스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방역지침이 풀리고 봄기운이 완연한 이번 달에는 개방 초기의 한 달 50만 명대 방문에 육박할 것이라는 전망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역대 대통령 초상화가 걸려 있는 본관 1층 세종실. 영국인 로즈(57)는 “영어 설명이 없어 누가 누구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글 안내도 입구에만 간단히 있을 뿐, 초상화 아래에는 없었다. 본관 내 모든 공간이 그랬다. 로즈는 한 차례 더 뼈를 때렸다. “다국어로 써놓기 어려우면 오디오 가이드로 만들면 어떻겠냐”는 제안까지 하면서다. 캐나다 유학 중 동생과 함께 청와대를 찾은 김모(31)씨는 “외국인을 위한 설명이 부족하니 안타깝다”고 말했다.
하지만 관람객들은 대체로 만족스러워하는 분위기였다. 박선희(70)·최인영(70)씨는 “이렇게 아름다운 공간을 시민의 품으로 돌려주니 좋다”고 밝혔다. 마산에서 온 이모(71)씨도, 용인에서 온 김모(65)씨도 “자연친화적으로 수수한 느낌”이라고 말했다.
만난 시민 중에는 “다시 올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한 사람도 꽤 있었다. 문제는 이런 사람들이 다시 찾아올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청와대는 자연과 어울리도록 지어졌지만, 재방문율이 높은 ‘자연생태환경’이 아닌 ‘관광시설’이기 때문에 현재의 단순한 ‘방문 관람’ 형태로는 한계가 있다. 이훈 원장은 “그래서 관광시설은 스토리를 입히는 콘텐트가 절실하다”고 밝혔다.
지난해 7월 박보균 문화체육부 장관이 ‘한국의 베르사유’를 표방하며 본관 일부와 영빈관의 미술품 기획전, 관저와 대정원의 종합 공연예술 무대 활용안 등의 구상을 밝힌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하지만 현실적 한계가 따랐다. 미술품을 전시하자니 장비 설치로 청와대 원형이 훼손될 우려가 제기됐다. 미술계에서는 지난해 가을 ‘청와대 컬렉션 특별전’의 무산 이유로 이 점을 들고 있다. 게다가 영빈관은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2월부터 국빈행사 공간으로 쓰고 있다.
임종성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알려진 대통령 직속 청와대관리활용자문단(지난 1월 활동 중단)의 최종 검토 보고서는 ▶역사·상징성 보존 및 구현 ▶국가성장 중심지 역할·정체성 존중 ▶정체성·품격에 맞는 지속 가능한 콘텐트 제공 등을 내세웠다. 구체적으로 본관에는 주요 문건, 회의 모습 등 역사적 순간을 복원하고, 영빈관은 외빈 접견 등 행사에 주력하자는 것이다. 사실상 ‘미술관 구상’은 어려워지는 것이다. 그런데 보고서대로라면 본관의 ‘역사적 순간’ 외에는 현재와 큰 차이는 없어 보인다.
이후 문체부는 지난달 19일 테마별 도보 관광코스 10개를 소개하며 청와대 인근 역사·문화 관광자원을 바탕으로 다양한 테마와 이색체험을 제공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전 구상과는 다른 결이다. 이훈 원장은 “최근 경복궁 관람객이 많아진 이유는 별빛야행·궁중문화축전 등 내부 콘텐트 개발”이라며 “청와대도 김영삼 대통령의 칼국수, 노무현 대통령의 모내기 국수, 이명박 대통령의 돌솥간장비빔밥 등의 이야기를 엮는 등 다양한 스토리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관람 막바지. 김모(28)씨는 “얼마 전 청주의 청남대를 찾았더니 ‘원래 소파가 푹신했는데, 대통령의 허리가 안 좋아서 딱딱한 쿠션으로 바꿨다’는 설명이 흥미로웠다”며 “디테일할수록 흥미가 깊어지는데, 외국어는커녕 한국어 설명도 빈약해 아쉽다”고 밝혔다. 국민이 뽑은 대통령이 있던 곳. ‘대통령’보다는 ‘국민’에 방점을 찍는 묘안이 필요하다.
김홍준·윤혜인 기자 rimr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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