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적인 삶과 미스터리 죽음…OTT에 부활한 반 고흐 [문소영의 영감의 원천]

2023. 5. 6.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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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의 원천] 반 고흐 다룬 영화들
반 고흐에 관한 영화 포스터들(하단)과 포스터에 영감을 준 반 고흐의 자화상들(상단)
빈센트 반 고흐(1853-1890)처럼 많이 영화화 된 화가는 없을 것이다. 영화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해 보면, 다큐멘터리를 제외하고도 반 고흐에 대한 극영화만 열 편이 넘는다. 마침 다음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릴 영국 내셔널갤러리 소장품전에 반 고흐의 ‘풀숲이 우거진 들판의 나비’(1890)도 포함된다고 하니 연휴 기간에 반 고흐 영화들을 통해 그에 대해 더 알아보는 게 어떨까. 지금 OTT에서 볼 수 있는 세 편을 골라보았다. 최근작인 2018년 영화 ‘고흐, 영원의 문에서’ (넷플릭스·티빙·웨이브·왓챠), 2017년 애니메이션 ‘러빙 빈센트’ (티빙·웨이브·왓챠), 그리고 1956년 영화 ‘열정의 랩소디’ (티빙·웨이브)다.

모범적인 전기영화 ‘열정의 랩소디’

영화 '열정의 랩소디'(1956) 프랑스판 포스터와 미국 디트로이트 미술관에 소장된 반 고흐 '자화상'(1887) [IMDb, 디트로이트 미술관]
어빙 스톤의 동명 소설(1934)을 원작으로 해 빈센트 미넬리가 감독한 ‘열정의 랩소디(원제: Lust for Life·1956)’는 반 고흐에 관한 최초의 컬러 극영화다. 커크 더글라스가 반 고흐 역을 맡고 앤서니 퀸이 폴 고갱 역을 맡는 등 호화 캐스팅이다. 개봉 당시 흥행과 비평에서 모두 성공을 거두었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 반 고흐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미술전문지 아트뉴스페이퍼 기자이며 반 고흐 전문가인 마틴 베일리는 평한다.

거의 70년 전 영화인데도 전개가 느리지 않다. 반 고흐가 목사를 꿈꾸던 초창기부터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겪은 주요 사건들과 예술적 여정을 두 시간에 압축해서 보여주기 때문이다. 반 고흐의 편지 문구를 대사로 적극 활용하고, 영화 대부분을 반 고흐가 실제로 살고 그림을 그렸던 장소에서 촬영하는 등, 다큐멘터리에 버금가게 고증에 충실하다. 그러면서 드라마적 허구와 과장을 조금씩 섞어서 몰입도를 높였다. 한 마디로, 요즘 보아도 반 고흐 입문용으로 좋은 전기 영화다.

특히 반 고흐에 심취했던 커크 더글러스의 메소드 연기가 볼 만하다. 그림을 배워서 연기 중에 직접 그린 것은 물론이고 촬영을 마치고 집에 와서도 한동안 반 고흐처럼 굴었다고 한다. 그의 자화상을 연구하며 외모조차 닮으려고 노력했고, 특히 디트로이트 미술관에 있는 밀짚모자를 쓴 자화상을 모델로 삼았다고 한다. 심지어 이 영화를 보고 크게 감동을 받은 현대미술 거장 마르크 샤갈(1887-1985)이 더글러스에게 자신의 자서전이 영화화 되면 주연으로 출연해 주지 않겠냐고 물었을 때 더글러스는 “저는 다른 화가는 연기하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거절했다고 한다.

영화는 사실과 다른 클리셰를 대중에게 각인시킨 면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까마귀가 나는 밀밭’(1890)을 반 고흐 최후의 작품으로 잘못 아는 것도 이 영화의 영향이 크다. 영화에서 반 고흐가 이 그림을 완성한 직후 나무에 기대어 마지막 메모를 쓰고 권총을 꺼내 든다. 하지만 실제 최후의 그림은 ‘나무 뿌리들’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화가’ 감독이 그린 ‘고흐, 영원의 문에서’

영화 '고흐, 영원의 문에서'(2018) 포스터와 런던 코톨드 갤러리 소장 '귀에 붕대를 감은 자화상'(1899) [IMDb, 코톨드 갤러리]
‘고흐, 영원의 문에서’(원제: At Eternity’s Gate·2018)는 반 고흐의 일대기 전부를 다루는 대신, 그가 예술의 중심지인 파리에서 회의를 품고 남프랑스 아를로 향하는 순간부터 시작해서, 고갱과 다툰 후 자신의 귀를 자르고 생레미 정신병원에 입원했다가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서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를 다루고 있다. 이 최후의 3년은 반 고흐가 예술의 꽃을 활짝 피운 시기다. 그러나 영화는 그의 예술적 성취 과정이나 삶의 구체적인 사건보다 그의 감정과 심리에 초점을 맞춘다. 그래서 장면들은 단속적이고 시처럼 아름다우며 시처럼 불친절하다.

고전적인 촬영 방식과 달리, 이 영화는 종종 핸드헬드 카메라 워크를 이용해 관람객이 반 고흐와 함께 돌아다니는 느낌을 준다. 영화 미술도 독특하다. ‘열정의 랩소디’ 등 기존 반 고흐 영화들은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실제 장소들과 그림들을 교차시키는 장면을 많이 넣는다. 반면 ‘고흐, 영원의 문에서’에는 그런 장면이 없다. 그럼에도 영화 전체의 빛과 색감이 묘하게 반 고흐를 연상시킨다. 미술가로서도 인정받은 영화감독 줄리안 슈나벨의 기획과 촬영감독 브누아 들롬의 능력이 만나 이런 독특한 영상미를 완성했다. 감독이 반 고흐와 같은 화가로서 그의 내면의 혼란에 누구보다도 깊게 공감한 흔적이 두드러진 영화다.

반 고흐 역을 맡은 윌렘 대포의 싱크로율도 놀랍다. 생김새나 분위기가 반 고흐 자화상을 빼닮았다. 촬영 당시 대포가 이미 환갑을 넘겨서 37세에 사망한 반 고흐보다 훨씬 나이 들어보이는 건 다소 아쉽다. 커크 더글러스의 경우는 마흔 즈음에 반 고흐를 연기했다. 하지만 대포는 덕분에 더글러스의 격렬한 반 고흐와 차별화되는, 그림을 그릴 때를 제외하고는 쇠잔하고 연약했던 반 고흐의 모습을 절묘하게 연기해냈을 수도 있다.

한편 이 영화는 전기 작가 스티븐 나이프와 그레고리 화이트 스미스가 저서 『화가 반 고흐 이전의 판 호흐』(2011)에서 제기한 타살설, 즉 반 고흐가 동네의 불량한 십대 소년에 의해 총에 맞았으나 그것을 함구하고 스스로 죽음을 받아들였다는 가설을 기정사실로 하고 있다. 하지만 이 설은 아직 정설이 아니다.

그림이 정말 꿈틀거리는 ‘러빙 빈센트’

영화 '러빙 빈센트'(2017) 포스터와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 소장된 반 고흐의 '자화상'(1899) [IMDb, 오르세 미술관]
‘별빛이 소용돌이치고 사이프러스가 불꽃처럼 꿈틀거리는 반 고흐의 그림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라고 생각해 본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이 소원을 이루어주는 영화가 도로타 코비엘라와 휴 웰치먼이 감독한 유화 애니메이션 ‘러빙 빈센트(Loving Vincent)’다. 반 고흐의 독특한 스타일을 학습한 125명의 화가들이 일일이 손으로 그린 6만5000개의 유화 프레임을 연결해 만든, 경이로운 수작업의 산물이다.

영화는 청년 아르망이 반 고흐를 알았던 다양한 사람들을 탐문하면서 그들의 회상과 의견을 통해 반 고흐라는 인물의 정체성과 삶에 서서히 접근하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영리한 방법이다. 아직도 그의 성격, 그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그의 광기, 그의 죽음에 대해서 연구자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할 정도로, 반 고흐는 입체적이고 복합적인 인물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미스터리 스릴러의 형태도 띠고 있다. 아르망은 탐문을 계속하면서 반 고흐가 과연 자살했는지에 의문을 품게 된다. 이 영화 역시 반 고흐 타살설에 기울어 있다. 하지만 ‘고흐, 영원의 문에서’와 달리 기정사실로 하지는 않고 여지를 남겨둔다. 이러한 스릴러적 구조에 대해 관람객이 반 고흐의 예술보다 ‘자살이냐 타살이냐’에 관심을 쏟게 된다는 비판도 있지만, 몰입을 더 강하게 하는 효과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또한 영화는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던 청년 아르망이 불행한 화가 반 고흐가 얼마나 삶을 사랑했는지 알게 되고 거기에 감화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반 고흐 입문자라면 먼저 모범적인 전기 영화 ‘열정의 랩소디’를 보고, 반 고흐의 내면을 다룬 일종의 영상시 ‘고흐, 영원의 문에서’를 본 뒤, 반 고흐에 대한 복합적인 관점을 포용하는 ‘러빙 빈센트’를 보는 게 좋을 것이다. 서로 보완적인 이 세 편의 영화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하면서도 여전히 우리가 아직 모르는 게 많은 화가 반 고흐에 좀 더 다가가게 해 준다.

문소영 문화전문기자 sym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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