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적인 삶과 미스터리 죽음…OTT에 부활한 반 고흐 [문소영의 영감의 원천]
[영감의 원천] 반 고흐 다룬 영화들
모범적인 전기영화 ‘열정의 랩소디’
거의 70년 전 영화인데도 전개가 느리지 않다. 반 고흐가 목사를 꿈꾸던 초창기부터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겪은 주요 사건들과 예술적 여정을 두 시간에 압축해서 보여주기 때문이다. 반 고흐의 편지 문구를 대사로 적극 활용하고, 영화 대부분을 반 고흐가 실제로 살고 그림을 그렸던 장소에서 촬영하는 등, 다큐멘터리에 버금가게 고증에 충실하다. 그러면서 드라마적 허구와 과장을 조금씩 섞어서 몰입도를 높였다. 한 마디로, 요즘 보아도 반 고흐 입문용으로 좋은 전기 영화다.
특히 반 고흐에 심취했던 커크 더글러스의 메소드 연기가 볼 만하다. 그림을 배워서 연기 중에 직접 그린 것은 물론이고 촬영을 마치고 집에 와서도 한동안 반 고흐처럼 굴었다고 한다. 그의 자화상을 연구하며 외모조차 닮으려고 노력했고, 특히 디트로이트 미술관에 있는 밀짚모자를 쓴 자화상을 모델로 삼았다고 한다. 심지어 이 영화를 보고 크게 감동을 받은 현대미술 거장 마르크 샤갈(1887-1985)이 더글러스에게 자신의 자서전이 영화화 되면 주연으로 출연해 주지 않겠냐고 물었을 때 더글러스는 “저는 다른 화가는 연기하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거절했다고 한다.
영화는 사실과 다른 클리셰를 대중에게 각인시킨 면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까마귀가 나는 밀밭’(1890)을 반 고흐 최후의 작품으로 잘못 아는 것도 이 영화의 영향이 크다. 영화에서 반 고흐가 이 그림을 완성한 직후 나무에 기대어 마지막 메모를 쓰고 권총을 꺼내 든다. 하지만 실제 최후의 그림은 ‘나무 뿌리들’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화가’ 감독이 그린 ‘고흐, 영원의 문에서’
고전적인 촬영 방식과 달리, 이 영화는 종종 핸드헬드 카메라 워크를 이용해 관람객이 반 고흐와 함께 돌아다니는 느낌을 준다. 영화 미술도 독특하다. ‘열정의 랩소디’ 등 기존 반 고흐 영화들은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실제 장소들과 그림들을 교차시키는 장면을 많이 넣는다. 반면 ‘고흐, 영원의 문에서’에는 그런 장면이 없다. 그럼에도 영화 전체의 빛과 색감이 묘하게 반 고흐를 연상시킨다. 미술가로서도 인정받은 영화감독 줄리안 슈나벨의 기획과 촬영감독 브누아 들롬의 능력이 만나 이런 독특한 영상미를 완성했다. 감독이 반 고흐와 같은 화가로서 그의 내면의 혼란에 누구보다도 깊게 공감한 흔적이 두드러진 영화다.
반 고흐 역을 맡은 윌렘 대포의 싱크로율도 놀랍다. 생김새나 분위기가 반 고흐 자화상을 빼닮았다. 촬영 당시 대포가 이미 환갑을 넘겨서 37세에 사망한 반 고흐보다 훨씬 나이 들어보이는 건 다소 아쉽다. 커크 더글러스의 경우는 마흔 즈음에 반 고흐를 연기했다. 하지만 대포는 덕분에 더글러스의 격렬한 반 고흐와 차별화되는, 그림을 그릴 때를 제외하고는 쇠잔하고 연약했던 반 고흐의 모습을 절묘하게 연기해냈을 수도 있다.
한편 이 영화는 전기 작가 스티븐 나이프와 그레고리 화이트 스미스가 저서 『화가 반 고흐 이전의 판 호흐』(2011)에서 제기한 타살설, 즉 반 고흐가 동네의 불량한 십대 소년에 의해 총에 맞았으나 그것을 함구하고 스스로 죽음을 받아들였다는 가설을 기정사실로 하고 있다. 하지만 이 설은 아직 정설이 아니다.
그림이 정말 꿈틀거리는 ‘러빙 빈센트’
영화는 청년 아르망이 반 고흐를 알았던 다양한 사람들을 탐문하면서 그들의 회상과 의견을 통해 반 고흐라는 인물의 정체성과 삶에 서서히 접근하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영리한 방법이다. 아직도 그의 성격, 그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그의 광기, 그의 죽음에 대해서 연구자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할 정도로, 반 고흐는 입체적이고 복합적인 인물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미스터리 스릴러의 형태도 띠고 있다. 아르망은 탐문을 계속하면서 반 고흐가 과연 자살했는지에 의문을 품게 된다. 이 영화 역시 반 고흐 타살설에 기울어 있다. 하지만 ‘고흐, 영원의 문에서’와 달리 기정사실로 하지는 않고 여지를 남겨둔다. 이러한 스릴러적 구조에 대해 관람객이 반 고흐의 예술보다 ‘자살이냐 타살이냐’에 관심을 쏟게 된다는 비판도 있지만, 몰입을 더 강하게 하는 효과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또한 영화는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던 청년 아르망이 불행한 화가 반 고흐가 얼마나 삶을 사랑했는지 알게 되고 거기에 감화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반 고흐 입문자라면 먼저 모범적인 전기 영화 ‘열정의 랩소디’를 보고, 반 고흐의 내면을 다룬 일종의 영상시 ‘고흐, 영원의 문에서’를 본 뒤, 반 고흐에 대한 복합적인 관점을 포용하는 ‘러빙 빈센트’를 보는 게 좋을 것이다. 서로 보완적인 이 세 편의 영화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하면서도 여전히 우리가 아직 모르는 게 많은 화가 반 고흐에 좀 더 다가가게 해 준다.
문소영 문화전문기자 sym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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