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에서 한때 개혁가로 오판했던 그들

한경환 2023. 5. 6.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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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스트롱맨
더 스트롱맨
기디언 래크먼 지음
최이현 옮김
시공사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이들에게 공통으로 붙은 닉네임은 ‘스트롱맨(strongman)’이다. 이들은 법과 제도보다는 자신의 ‘근육’을 자랑하며 개인숭배를 조장하고 공포·민족주의 정치를 하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 에르도안, 모디처럼 민주주의 선거 방식으로 선출된 지도자들도 있어 이들을 모두 독재자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저자에 따르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사우디아라비아의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 폴란드의 실권자인 야로스와프 카친스키 법과정의당 대표, 아비 아머드 알리 에티오피아 총리, 좌파 포퓰리스트인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 보리스 존슨 전 영국 총리,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필리핀 대통령, 극우 성향의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브라질 대통령도 스트롱맨에 속한다.

시진핑 국가주석과 푸틴 대통령이 지난 3월 모스크바에서 만찬 중 건배하는 모습. [AP=연합뉴스]
세계적인 경제권위지인 파이낸셜타임스의 수석 칼럼니스트 기디언 래크먼이 펴낸 이 책 『더 스트롱맨』(원제 The Age Of Strongman)은 이런 지도자들은 문화적 보수주이자이며 자신과 의견이 다른 사람, 소수자, 외국인의 이익에 거의 무관심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규정한다. 북한의 김정은, 벨라루스의 알렉산더 루카셴코, 캄보디아의 훈 센을 스트롱맨 리스트에서 제외한 이유는 이들이 이미 오래전부터 자유주의를 경멸하고 권위주의 통치방식을 유지한 사람들이어서 새로울 게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나간 20세기도 아닌 지금 21세기에 스트롱맨들이 판을 친다니 역사가 거꾸로 가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2차 대전이 끝난 1945년 전 세계에서 민주국가는 12개뿐이었으나 2002년에는 92개국으로 늘었다. 그러나 국제 인권 단체인 프리덤하우스에 따르면 2005년부터는 상황이 급격히 달라져 정치적·시민적 자유가 감소하는 나라의 수가 많아지고 있다.

푸틴은 유럽 대륙에서 전쟁을 일으켰고, ‘중화민족의 대부흥’이라는 중국몽(中國夢)의 대망을 공공연히 내세우는 시진핑은 대만을 겨누고 있다.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부르짖었던 트럼프는 내년 미국 대선에 다시 출마해 화려한 복귀를 노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 책은 정치적 자유주의자들이 어떻게 하면 스트롱맨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는지를 모색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트롱맨 정치현상을 제대로 살펴보고 적절하게 대응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서구의 여론 형성가들은 푸틴이나 시진핑, 에르도안 등장 초기에 일시적으로 이들을 자유주의 개혁가로 오판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지은이는 “그런 오판은 냉전 승리에서 비롯된 정치적·경제적 자유주의가 가진 힘에 대한 과신과 소망적 사고의 혼합물인 것 같다”며 “결과적으로 전 세계가 반자유주의로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파악했다”고 썼다.

이 책에서는 단지 푸틴이나 트럼프, 시진핑, 에르도안, 두테르테 등의 개인적인 정치 역정만을 다룬 것은 아니다. 왜 그들의 스트롱맨적 포퓰리즘이 득세하게 됐는지, 일반 대중이 그들의 목소리에 열광하는지, 자유민주주의적 질서를 왜소하게 만드는지에 대한 사회정치과학적인 날카로운 분석이 담겨 있다.

트럼프로 대표되는 미국의 스트롱맨 시대가 한풀 꺾이고 바이든 시대를 맞은 지금 미국은 과연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서 소프트파워를 되찾을 수 있을까. 한국에서도 과연 스트롱맨이 등장할 수 있을까. 흥미롭지만 굉장히 중요한 주제이기도 하다. 현대 국제정치와 국제질서를 깊이 있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한 번쯤은 반드시 읽어 볼 만한 책이다.

한경환 기자 han.kyungh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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