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방지 vs 비효율…금융규제와 닮은꼴

주정완 2023. 5. 6.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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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의 역사
불황의 역사
토머스 바타니안 지음
이은주 옮김
센시오

여기 고속도로를 달리는 자동차 운전자가 있다. 전방에 과속 단속 카메라가 보이면 어떻게 할까. 대개는 속도를 늦추고 단속 구간을 통과할 것이다. 그렇다고 과속으로 인한 사고 위험이 없어진 건 아니다. 단속 구간을 지나자마자 차량 속도를 다시 높이는 걸 흔히 볼 수 있다.

만일 경찰이 극단적 방법으로 사고를 예방하려 한다면 어떨까. 제한 속도를 왕창 낮추고 단속 카메라를 촘촘하게 설치할 것이다. 확실히 사고 위험은 줄겠지만, 차량 속도가 매우 느려지는 비효율을 피할 수 없다. 미국의 금융 전문 변호사인 저자는 금융 규제의 역할이 과속 단속 카메라와 비슷하다고 본다. 아예 없어도 안 되지만, 지나치게 많아도 안 된다는 생각이다. 그는 “미국은 금융 규제가 절실히 필요하고 또 금융 규제의 역할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현 감독 체계는 과도하게 부담스럽고 경제적으로 왜곡된 규제를 생성한다”고 말한다. 중요한 건 균형. 저자는 “우리는 이런 균형을 잘 잡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이 책은 지난 200년간 미국 금융공황의 역사를 되짚어본다. 신생국가 미국이 처음 공황을 맞은 1819년부터 코로나19 위기가 발생한 2020년까지다. 그중에도 1980년대 저축대부조합(S&L) 부실 사태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집중적으로 살펴본다. 저자는 정치인의 ‘선의’가 금융시장을 어떻게 왜곡시켰는지도 주목한다. 서민의 ‘내 집 마련’을 돕는다며 금융 규제를 어설프게 조이거나 풀었던 게 재앙의 불씨가 됐다는 설명이다.

미래에도 금융위기는 되풀이될까. 그럴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저자의 판단. 그러면서 중국의 막대한 부실채권, 미국 주택담보대출과 학자금 대출의 부실 위험 등을 경고한다. 인공지능을 포함한 첨단기술에 대한 견해도 흥미롭다. 저자는 “푸틴은 인공지능을 지배하는 국가가 ‘세계를 지배’한다고 말했다”며 “무서운 말이지만 세계 경제를 통제하는 일이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주장한다. 동시에 첨단기술이 정밀하고 효율적인 금융 규제 설계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본다. 한마디로 기술 발전은 위기이자 기회라는 얘기다.

주정완 논설위원 jw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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