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멀어지는 달, 처음엔 지금보다 20배 커 보였다”
[최준호의 첨단의 끝을 찾아서] 국내 1호 달 박사 정민섭 천문연 선임연구원
지난 50년간 달은 ‘고요의 바다’였다. 1972년 12월, 20세기 인류의 마지막 달 탐사선 아폴로 17호의 우주인들이 타우루스-리트로우 계곡을 탐사한 이후 잊히는 듯 했던 달이었다. 반세기 전, 달은 자유진영과 공산권을 대표하는 미국과 소련의 자존심을 건 체제경쟁이었다. 1957년 소련이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를 쏘아올린 이후 촉발된 미·소간 우주경쟁은 미국의 승리로 끝났다. 이후로 인류는 50년이 되도록 달에 다시 가지 않았다. 아니, 갈 이유가 사라졌다.
달이 반세기 만에 다시 바빠진 이유가 뭘까. 전문가들은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우주탐사에 다극화 체제가 형성됐고, 국가 간 자존심 경쟁을 넘어 비즈니스의 영역까지 진화한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그래도 의문은 남는다. 달은 무엇이며, 인류에게 어떤 의미일까. 지난달 24일 대전 한국천문연구원을 찾아 국내 최초의 달 박사인 정민섭 우주탐사그룹 선임연구원을 만나 달에 대해 탐구했다.
달에는 내핵 없어 자기장 형성 안 돼
Q : 한국은 아르테미스 계획에 어떤 방식으로 참여하고 있나.
A : “아르테미스 사업 안에 민간 달착륙선 탑재체 서비스(Commercial Lunar Payload Service; CLPS)라는 게 있다. 민간 우주탐사 기업들이 달에 탑재체를 보내주는 사업이다. 여기에 천문연이 포함돼 현재 4개의 탑재체를 개발하고 있다. 대표적인 게 2025년 발사가 확정된 우주 환경 모니터링 시스템이다. 나머지 3개는 아직 탑재가 최종 확정되지 않은 후보 탑재체다. 자기장 측정기와 방사능 측정기, 달 표면을 현미경으로 촬영하는 카메라가 그것이다.”
Q : 우리 다누리 달 탐사선에도 천문연이 참여하고 있지 않나.
A : “다누리에 실린 6개 탑재체 중 하나인 광시야 편광카메라가 천문연에서 만든 것이다. 편광을 이용해 세계 최초로 완벽한 달 표면 지도를 제작하는 것이 임무다. 편광영상으로 추출된 달 표토 입자크기 분포지도를 만들고, 이 과정에서 달 표면에 티타늄이 얼마나 존재하는지도 파악한다. 티타늄은 우주자원 분포와 월면의 마그마 고체화 과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Q : 다누리가 달에서 뭘 하려는 건가.
A : “다누리에는 광시야 편광카메라 외에도 우주인터넷 장비, 고해상도 카메라, 자기장측정기, 감마선분광기,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음영카메라 등 총 6개의 탑재체가 실려 있다. 자기장 측정기는 달 주변의 자기장 세기를 측정한다. 감마선분광기는 달 표면의 지질자원 탐사가 목적이다. 달 표면을 이루는 물질의 원소지도와 달 우주방사선 환경지도 작성에 활용된다.”
A : “달에는 지구처럼 액체로 된 내핵이 없기 때문에 자기장이 형성되지 않는다. 하지만, 지구에 있는 자철석처럼 달 표면에도 자기장을 가진 철광석이 일부 남아있다. 이게 왜 있는 건지 아직 정확히 모르지만 가설 중에는 달도 예전엔 분명히 지구처럼 마그마가 있어 자기장을 만들어 냈을 것이란 주장도 있다. 또는 자성을 띤 소행성들이 달에 충돌하면서 자기장의 흔적을 남겼다는 설도 있다. 달을 이해하는 데 자기장 또한 중요한 요소다.”
Q : 달에 대기가 없나. 중력이 있으면 대기도 있을 것 같은데.
A : “달의 중력은 지구의 6분의 1 수준이다. 따라서 달에도 대기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지구에는 없는 나트륨과 칼륨 등이 달의 대기에 희미하게 있다. 하지만 지구 등 다른 천체의 대기에 비교하면 무시할 수 있을 수준이다. 때문에, 일반적으로 달은 대기가 없이 진공인 것으로 간주한다.”
Q : 달엔 대기가 없어 소행성 같은 게 마찰이나 폭발 없이 곧바로 떨어질 텐데, 그러면 달기지가 위험할 수 있겠다.
A : “그래서 아르테미스 계획에 그려진 달기지는 대부분 충격을 잘 분산할 수 있는 돔 형태로 돼 있다. 그런 돔 여러 개가 지하로 연결돼 있어 한쪽이 위험에 처하면 다른 쪽으로 대피할 수 있도록 설계된다. 미국 등 주요국 우주환경감시기관들이 10㎝ 이상 크기의 우주물체는 모두 추적·감시하고 있기 때문에 미리 대비할 수도 있다. 앞으론 달에도 그런 별도의 감시체제가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Q : 뜬금없는 질문 같지만, 지구의 달은 왜 하나인가. 화성도 위성이 2개인데.
A : “지구와 달이 좀 독특하긴 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직 모른다.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태양계 속 다른 행성들의 위성은 행성 무게의 1% 미만인데, 달은 지구의 5% 수준으로 굉장히 크다. 화성의 위성인 포보스와 데이모스는 굉장히 작기도 하지만 달처럼 동그랗지 않고 불규칙하게 생겼다. 이 둘은 원래 소행성이었는데 화성의 중력에 붙잡혀 위성이 됐다는 게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구의 달은 그렇지 않다.”
Q : 달은 어떻게 생겨났나.
A : “역시 모른다. 다만 형제설과 딥임팩트(deep-impact)론 두 가지가 거론된다. 태양계 형성 초기에 지구가 만들어지고 주위에 남은 찌끄러기가 뭉쳐 달이 됐다는 설이 형제설이다. 딥임팩트론은 요즘 가장 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이론이다. 원시 지구가 있는데 어느 날 화성보다 조금 작은 크기의 우리가 모르는 행성이 다가와 부딪쳐 떨어져 나간 부분이 달이 됐다는 얘기다. 이 정도 크기의 물체가 지구와 충돌하면 양쪽이 모두 녹아버린다. 나이를 측정하면 0살, 완전히 새로운 암석이 되는 거다. 하지만 이 가설도 완벽하지 않다.”
Q : 달이 1년에 몇 ㎝씩 지구로부터 멀어진다는 말도 있던데.
A : “연간 3.74㎝씩 멀어진다.”
Q : 그럼 45억 년 전엔 굉장히 가까웠다는 말인가.
A : “처음엔 약 2만4200㎞ 정도였다. 지금(평균 38만㎞)의 약 16분의1 거리였다. 그땐 지금보다 달이 20배 정도 더 커보였을 거다. 동산에 어마어마하게 큰 보름달이 걸려 있다고 상상해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 영화 판도라에 나오는 행성처럼 굉장히 크고 밝은 모습이었을 거다.”
수백억 년 뒤 지구 한 쪽에서만 달 보여
Q :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가 봤던 달은 어느 정도 크기였을까.
A : “30만 년 전을 계산해보면 지금보다 11.1㎞ 정도 가깝다. 하지만 지금도 달이 가까울 때는 36만㎞, 멀 때는 44만㎞다. 8만㎞ 가량 차이가 나니, 30만 년 전이라고 크게 달라보이진 않았을 것 같다.”
Q : 달은 왜 지구에서 멀어지고 있나.
A : “지구에 물이 있어서 그렇다. 바다는 달을 따라 간다. 달이 움직이면 그 방향으로 물이 모인다. 그게 밀물과 썰물이다. 이 과정에서 해저면과 바닷물이 지구 자전속도가 느려지는 방향으로 마찰이 생긴다. 그렇게 잃어버린 에너지를 달이 가져간다. 그러면 달의 공전 속도가 빨라지면서 멀어지게 되는 거다.”
Q : 그럼 언젠간 달이 지구를 떠난다는 얘긴가.
A : “아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달의 공전 속도는 더 빨라지고 지구의 자전 속도는 느려지게 된다. 그러다 양쪽의 속도가 똑같아지는 시점이 온다. 이렇게 되면 한국에선 보이는 달이, 미국에선 보이지 않게 된다. 이때 조수간만의 차가 없어지면서 달과 지구가 에너지를 주고받는 게 없어진다. 달이 더 이상 멀어지지 않는다는 얘기다.”
Q : 그게 언젠가.
A : “대략 수백억년 뒤다. 하지만 그때까지 태양이 살아있지 못하기 때문에 의미 없는 계산이다.”
Q : 인류가 달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나.
A : “무엇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지 말하려면 목표 지점이 얼마인지 알아야 하는 것 아닌가. 달에 대해 몇 %나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지금 달에 대해 알고 있는 게 별로 없다. 달이 언제 어떻게 생겨났는지도 모르고 있지 않나. 그렇기 때문에 지금 달 탐사선이 가서 분광사진을 찍고, 감마선을 측정하는 거다.”
최준호 과학·미래 전문기자, 논설위원 jo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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