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 갈 수 있는 식당” 휠비 덕에 장애인 외출 쉬워진다
휠체어 내비 앱, 이달 중 출시
장애인의 날이었던 지난달 20일 장애인협동조합 ‘무의’ 소속 리서처 윤지영(24)씨가 말했다. 이들은 휠체어 내비게이션 앱 ‘휠비(WheelVi)’에 활용될 휠체어 이용 가능 시설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장애인의 날을 맞아 무의 리서처들의 수집 과정에 동행해봤다. 오늘의 수집 구역은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구청역 인근 일대. 한 블록, 두 블록, 세 블록 넘게 가서야 겨우 휠체어 출입이 가능한 카페가 나왔다. 마침내 지영씨가 정보 수집 앱을 열었다. 출입문 종류와 폭이 넓은지 체크하고, 사진을 촬영해 업로드 한다.
90개 전철역 인근 정보 제공 목표
휠체어를 이용하는 지체 장애인들의 외출은 그야말로 첩첩산중이다. 약속 장소 인근에 장애인 화장실이 있는지 미리 알아봐야 하는 건 기본, 밥도 아무데서나 먹을 수 없다. 완만한 경사로가 있고, 입구가 넓고, 의자를 옮길 수 있는 식당을 찾아야 한다. 운이 좋게 이와 같은 조건을 가진 장소를 찾았다고 해도 그곳까지 휠체어로 갈 수 있는지는 또 다른 문제다. 언덕길은 아닌지, 보도 폭이 휠체어가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넓은지도 확인해야 한다.
이들의 외출이 이렇게 수고로운 이유는 비단 장애인 시설이 부족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장애인 시설이 있어도 어디에 있는지, 실제로 사용할 수는 있는지 가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다는 점도 문제다. 휠체어가 다니기에 괜찮은 길, 휠체어도 이용할 수 있는 식당과 카페가 있어도 정작 장애 당사자들이 모르고 있는 경우가 부지기수. 결국 안전한 선택지인 ‘대형 쇼핑몰’ 또는 ‘아는 곳’으로 선택의 폭이 좁혀진다.
새로운 지역에 갈 때면 지도 앱의 로드뷰로 인도 상태를 어림잡아 보고, 온라인 방문자 후기를 참고해 갈 수 있을지 판단한다. 매장에 직접 휠체어 출입이 가능한지 문의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사전에 만반의 준비를 하고 외출해도 단번에 성공하기는 쉽지 않다. 휠체어 이용 장애인 임슬기(33)씨는 “도로 중심의 로드뷰로 보는 것과 실제로 가는 건 다르고, 사장님이 ‘휠체어도 들어올 수 있다’고 해서 갔는데 건물 엘리베이터 앞에 계단이 있거나, 진입로에 턱이 있어 못 들어간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인근에 있는 장애인 화장실도 직접 찾아가 본다. 이용할 수 없게 잠겨있는 것은 아닌지, 있어도 없느니만 못한 정도로 좁거나 물건이 쌓여 있는 것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휠체어 사용 장애인이자 리서처로 활동하고 있는 한경아(39)씨가 한 건물의 장애인 화장실에 들어서 휠체어를 움직였다. “이 정도면 충분히 넓고 괜찮네요.” 합격이다. 정보 수집 앱에 이용 가능한 화장실로 입력한다. 한씨는 “이런 곳만 있으면 좋겠지만 어떤 곳은 청소도구함으로 사용해 휠체어를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물건이 쌓여 있기도 하다”고 귀띔했다.
“앱 덕분에 외출 소소한 재미 느껴”
휠체어 사용자들의 외출 장벽이 서울 지역을 중심으로 한층 더 낮아질 전망이다. 휠비가 시험 서비스 기간을 마치고 이달 중 공식 출시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휠비는 장애인 화장실 위치, 휠체어로 가기 적합한 경로, 휠체어로 출입할 수 있는 건물 등 휠체어 사용 장애인이 외출할 때 반드시 필요한 정보를 담고 있는 내비게이션 앱이다. SK행복나눔재단을 포함한 7개 기업의 공동 사회공헌 ‘휠체어 이동정보 제공 프로젝트’로 개발됐다.
휠비는 리서처들이 모은 정보를 활용해 장애인 화장실 위치와 이용 가능 여부, 휠체어로 접근할 수 있는 식당·카페의 위치와 사진을 제공한다. 도로 폭, 경사로 등을 고려해 목적지까지 휠체어로 갈 수 있는 보행로도 안내한다. 접근성 정보는 장애 당사자가 목적지를 찾아가고, 이동 반경을 넓히는 데 큰 도움이 된다. SK행복나눔재단이 2020년 진행한 파일럿 테스트에서 접근성 정보가 있는 휠체어 사용자 9명의 목적지 도달률은 93%였지만 정보가 없는 휠체어 사용자 8명의 도달률은 41%에 불과했다. 지난해 11월부터 지난 3월까지 서울시 휠체어 사용자 20명을 대상으로 휠비 활용성을 측정했을 때도 도달율이 92%에 달했다.
SK행복나눔재단에 따르면 휠비는 이달 공식 출시 후 분기별 업데이트를 통해 올해까지 서울 지하철 90개역 반경 500m 내 식당·카페·약국·병원·장애인 화장실 등의 출입 정보를 전달할 예정이다. 한경아씨는 휠비를 통해 휠체어 사용 장애인들의 외출이 쉬워지는 사회를 소망한다. “리서처 활동을 하면서 신당동, 익선동 같은 구도심에도 휠체어로 갈 수 있는 식당과 카페가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이전에는 ‘휠체어로 갈 수 없는 곳’이라고 생각해 갈 엄두도 못 냈던 곳이죠. 요즘 새로운 가게를 찾아가는 소소한 재미를 느끼고 있답니다. 휠비 앱을 통해 외출을 포기한 장애인들이 밖으로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 ‘휠비’ 개발한 이시완 대표 “AI 활용, 경사도·장애물 등 분석”
Q : 휠비에 인공지능(AI)을 활용했다.
A : “건물 접근성과 보행로 정보 수집에 활용된다. 접근성에 대해서는 무의 리서처와 기업 임직원분들, 그리고 복지관 등에서 건물 진입로, 출입구 등의 사진을 보내주면 그 사진을 AI가 다시 확인한다. 문 사진을 예로 들자면 AI가 문 모양으로 옆으로 열리는 문인지 밀어야 열리는 문인지 확인하고, 폭이 휠체어가 지나갈 수 있는 정도로 넓은지 픽셀화해 파악한다.”
Q : AI가 보행로 정보를 수집하는 방법은.
A : “건물은 휠체어가 들어가기 힘들다는 것을 전제로 ‘가능한’ 곳을 수집한다면, 보행로의 경우 일단 다닐 수 있다는 전제로 ‘장애물’을 수집한다. 길에 있는 가로수, 전봇대, 자전거 등이 장애물이다. 거리 측정 기능이 있는 카메라를 부착한 휠체어를 조작해 보행로 영상을 촬영하고, AI로 보행로의 경사도, 평탄도, 넓이 등을 분석해 실제로 사람이 탄 휠체어가 갈 수 있을지 판단한다. 이때 전봇대나 가로수 같은 장애물과 보행에 편익을 주는 점자블록, 엘리베이터도 AI가 구분해 인식한다.”
Q : 배리어프리 스마트시티 구현이 목표라고.
A : “스마트시티라는 개념이 장애인 분들에게는 굉장히 어렵게 느껴질 것이다. 그분들에게는 지금의 도시도 접근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든 것이 시각장애인을 위한 내비게이션 앱 ‘지아이플러스’와 휠체어 이용 장애인을 위한 ‘휠비’다. 서울을 시작으로 세종, 대전 등 서비스 지역을 넓혀갈 예정이다. 우선 접근성을 높이고, 도심에서 충분히 다양한 시설을 활용하고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다. 지아이플러스에 경로 안내와 더불어 음식 주문 및 결제 시스템 도입을 고려하고 있다.” 」
윤혜인 기자 yun.hy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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