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외교 방향 대전환 이끌었지만, 민심 얻기 남은 과제

2023. 5. 6.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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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 출범 1년 - 여의도 톺아보기]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5월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대통령 취임 선서를 하고 있다. [뉴스1]
윤석열 정부가 오는 10일 출범 1년을 맞이한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네 번의 수평적 정권 교체(1997·2007·2017·2022년)가 이뤄졌지만 5년 만에 정권이 교체된 건 처음이고 이례적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당선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법치가 회복된 나라를 만들라는 국민의 기대가 반영된 결과로 받아들여졌다. 보다 큰 틀에서는 ‘레짐 체인지’를 통해 “정치를 한번 바꿔 보라”는 시대적 여망이 투영된 것으로 해석됐다.

실제로 윤석열 정부는 전임 문재인 정부 때와는 달리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복원을 최고의 국정 목표로 삼았다. 국정 운영의 내용과 구성 체계를 놓고서도 지난 1년간 대대적인 ‘거버넌스 시프트’를 추진했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 거버넌스는 청와대와 운동권 출신이 중심이 된 반면, 윤석열 정부는 전문가와 민간이 중심이 되고 국가가 지원하는 체제와 법의 지배 확립에 중점을 뒀다.

외교 정책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전임 정부의 ‘전략적 모호성’은 ‘전략적 명확성’으로 바뀌었고 균형 외교는 동맹 외교로, 자주 외교는 가치 외교로 대전환을 꾀했다. 최근 한·미 정상이 확장억제를 강화하는 내용의 ‘워싱턴 선언’을 채택한 게 상징적이다.

윤 대통령은 이처럼 집권 1년간 국정 운영 기조와 가치 변화를 주도했지만 민심을 얻는 데는 성공하지 못한 모습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인 지난해 5월 둘째 주 한국갤럽 조사에서 윤 대통령 직무 수행에 대한 긍정 평가는 52%, 부정 평가는 37%였다. 그런데 집권 1년을 앞둔 지난달 넷째 주엔 긍정 30%, 부정 63%로 집계됐다. 역대 대통령들의 취임 1년 국정 지지율과 비교해도 매우 낮은 수준이다.〈이하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윤석열의 법치’ 보였을 때 지지율 상승

윤 대통령 지지율 추이를 보면 몇 가지 특징이 발견된다. 첫째, 더블딥 현상이다. 더블딥은 불황에 빠졌던 경기가 잠시 회복기를 보이다 다시 침체에 빠지는 ‘이중 침체 현상’을 뜻한다. 윤 대통령 지지율은 집권 초 50%대를 유지하다 20%대로 추락한 뒤 30%대로 소폭 회복했다가 다시 20%대로 추락하는 양상을 보였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윤 대통령은 취임 후 국민에게 몇 가지 원칙과 기준을 약속했다. 법과 질서, 공정과 상식, 자유와 연대(동맹),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등이다. 윤 대통령이 화물연대 불법 파업과 강성 민주노총 등을 법과 원칙에 따라 처리할 때 지지율은 상승했다. 법치를 강조한 ‘윤석열다움’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편중 인사와 대통령실의 여당 전당대회 개입 등으로 ‘공정’의 가치가 흔들리고 도어스테핑 중단 후 소통이 막히는 모습을 보일 때 지지율은 출렁였다. 여기에 독단적·일방적 국정 운영이란 논란이 불거지고 정상회담을 전후로 각종 구설에 휩싸인 것도 지지율에 악영향을 미쳤다.

둘째, 부정 평가가 긍정 평가를 앞서는 ‘데드크로스’의 고착화다. 한국갤럽 조사에서도 지난해 7월 첫째 주 긍정 37%, 부정 49%로 첫 데드크로스가 발생한 뒤 지금까지 한 번도 긍정이 부정을 앞서지 못하고 있다. 역대 정부에서는 대통령이 해외 순방을 통해 정상 외교를 펼칠 때면 지지율이 상승하면서 골든크로스의 견인차 역할을 했지만 현 정부에선 오히려 지지율이 떨어지는 역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셋째, 20%대 지지율 추락이 너무 빠르게, 그리고 너무 자주 나타났다. 한국갤럽 조사 결과 윤 대통령 지지율은 취임 두 달여 만인 지난해 7월 말 경찰국 신설과 여당 내부 갈등 및 문자 노출 논란 등이 이어지면서 30% 아래(28%)로 처음 떨어진 데 이어 지난해 8월 초(만 5세 취학 추진)와 9월 말(방미 때 비속어 논란)엔 최저치인 24%를 기록했다. 한국갤럽이 매주 실시하는 윤 대통령 지지율 조사에서 지난해 7월 이후 20%대 지지율은 모두 13번으로 집계됐다.

그렇다면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난 것일까. 우선 경제 악화가 첫손에 꼽힌다. 미·중 패권 경쟁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에 따른 글로벌 경제 위기 속에서 금리 인상과 수출 부진 등으로 인한 경제 불황이 계속됐다. 현 정부에 기대했던 것과 제공받은 것 사이의 격차가 커지면서 국민이 정부에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평가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한국갤럽이 현 정부 출범 직후인 지난해 5월 셋째 주 ‘향후 1년간 국내 경기 전망’을 물은 결과 25%가 좋아질 것, 40%가 나빠질 것, 31%가 비슷할 것이라고 답했다. 그런데 집권 1년을 맞아 지난달 셋째 주에 실시한 조사에선 62%가 나빠질 것으로 내다봤고 12%만 좋아질 것으로 예측했다. 비관적 전망이 22%포인트 증가한 반면 낙관적 전망은 절반으로 줄어든 셈이다. 현 정부가 추진하는 각종 경제 정책이 일반 국민에겐 거의 와닿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둘째, 선거 연합의 해체다. 한국 정치에서 집권 초기에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선거 연합을 해체한 대통령은 늘 지지율이 급락하며 위기를 맞곤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57만여 표 차이(2.3%포인트)로 신승한 뒤 집권 9개월 만에 열린우리당을 창당하며 호남의 전통적 지지층과 대립각을 세웠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531만여 표의 압승을 거둔 여세를 몰아 취임 후 두 달 만에 치러진 총선에서 국정 운영의 동반자로 약속한 박근혜 전 대표와 공천 갈등을 일으키며 사실상 결별 수순을 밟았다. 이 같은 선거 연합의 해체는 자신의 지지 기반을 스스로 좁히는 결과를 초래했고 결국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3월 중도 성향의 안철수 후보와 극적인 단일화를 이뤄내고 공동 정부를 약속하면서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집권 1년도 지나지 않아 대통령실은 안 의원을 ‘국정 운영의 훼방꾼’이라고 몰아세웠고 이로 인해 보수·중도 연합의 상징이었던 ‘윤·안 연대’도 깨지고 말았다. 중도층 민심을 꽉 붙잡아도 부족한 상황에서 스스로 연대의 틀을 해체해 버린 것이다. 그 결과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한국갤럽의 지난달 넷째 주 조사에서 윤 대통령에 대한 중도층의 긍정 평가는 20%인 반면 부정 평가는 73%에 달했다. 전체 부정 평가 63%보다 10%포인트나 높은 수치다.

셋째, 취약한 통치 환경 극복을 위한 정교한 전략이 부재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에서 24만여 표(0.73%포인트) 차이로 박빙의 승리를 거뒀지만 의회 권력은 여전히 거대 야당이 쥐고 있었다. 국민은 윤 대통령이 소통과 협치를 통해 정치를 ‘정상화’해줄 것을 기대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라진 게 없었다. 물론 방탄과 대여 투쟁에만 집중하는 야당과의 협치가 쉽지만은 않았겠지만 이를 극복하려는 노력과 용기를 보여주지 못했다. 대통령실은 1997년 대선 때 겨우 39만여 표 차이로 승리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여소야대 국회 상황에도 포용적 리더십을 통해 집권 1년 때 60%의 지지를 받은 사례를 참조할 필요가 있다.

국민 이해 구하는 자리 더 많이 가져야

윤 대통령이 지난 1년을 성찰하고 ‘성공한 대통령’의 길을 가기 위해 해야 할 과제는 산적해 있다. 무엇보다 경제에 더욱 집중해야 한다. 역대 대통령들은 성과 여부를 떠나 집권 초기에 경제를 살리기 위한 ‘정책 어젠다’를 제시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신경제 계획’, 김대중 전 대통령의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 박근혜 전 대통령의 ‘창조 경제와 경제 혁신 3년 계획’, 문재인 전 대통령의 ‘소득주도성장’ 등이 그것이다. 윤석열 정부도 규제 혁파를 통한 민간 중심의 역동 경제와 수출 활성화를 통한 성장 등을 제시하고 있지만 국민이 피부로 느끼고 공감할 수 있는 보다 구체적인 목표와 로드맵이 시급한 상황이다.

둘째, 통치 리더십의 변화다. 핵심은 겸손함과 소통이다. 윤 대통령이 독단적·일방적 태도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낮추는 ‘섬김의 리더십’을 펼치고 국가 주요 현안에 대해 국민에게 상세히 알리고 설득하는 모습을 보일 경우 지지율 반전의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쓴소리하는 사람들의 말을 경청하고 인재를 널리 구하라는 국민적 요구도 크다.

소통의 리더십도 필수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재임 중 매달 1.7회 기자간담회를 했다. 윤 대통령도 민감한 정치 현안과 관련해 국무회의 생중계가 아니라 국민에게 직접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자리를 더 많이 가져야 할 때다. 야당과의 대화도 더 이상 미룰 수만은 없다. 여야 대표와의 회동이 여의치 않다면 국회를 찾아가 현안 관련 상임위의 여야 의원들을 만나는 것도 방법이다. 당장 한·미 정상회담 결과를 국회 외통위와 국방위 여야 의원들에게 직접 설명하는 방안도 검토해볼 만하다.

셋째, 개혁의 우선순위를 조정해야 한다. 지난해 12월 한국갤럽 조사에서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정부가 가장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할 개혁 과제’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39.2%는 ‘정치 개혁’이라고 답했다. 반면 현 정부의 핵심 개혁 과제인 노동 개혁은 18.9%, 교육 개혁은 11.2%, 연금 개혁은 10.8%였다. 당위론적으론 3대 개혁이 중요하겠지만 국민의 지지를 얻기 위해선 뼈를 깎는 정치 개혁에 앞장설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마지막으로 대통령과 정부가 내세우는 가치와 실제 행동 사이의 간극이 더 이상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어쩌면 이는 유권자들이 가장 민감하게 느끼고 바라는 점일 수도 있다. 대통령 주변 인사나 여당 지도부의 언행이 현 정부의 강조점인 자유·공정·법치와 상충되는 현상이 계속될 경우 지지율 회복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세간의 공통된 여론이다. “변해야 하고 바꿔야 한다. 그래야 반등할 수 있다.” 집권 1년을 맞는 윤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민심의 요구는 이렇게 요약되고 있다.

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전 한국선거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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