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운행할수록 손해, 만년 적자” 사면초가 ‘시민의 발’ 마을버스
위기의 서울 마을버스
지난 3일 오후 서울 중구 남대문 앞의 종로09번 마을버스 정류장. 한 70대 남성이 무거운 짐을 든 채 마을버스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향하는 곳은 종로09번 버스의 종점인 수성동계곡. 인왕산 등산로 초입에 위치한 이 정류장은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까지 도보로 20분이 걸린다. 서울에서도 고지대에 있어 도심인 경복궁역, 광화문역에서 이곳까지 가는 길은 ‘등산’과 마찬가지다. 그는 “집에서 광화문까지 나올 때는 천천히 걸어서라도 나올 텐데, 올라갈 때는 경사가 높아서 마을버스가 유일한 이동수단”이라며 “마을버스가 사라진다면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은 사실상 외출이 불가능해진다”고 말했다.
골목 누비는 ‘대중교통 모세혈관’
버스, 지하철이 닿지 못하는 골목골목을 다니며 승객을 나르는 ‘대중교통의 모세혈관’ 마을버스가 사면초가에 몰렸다. 2015년 요금 인상 이후 8년간 요금을 동결해온 마을버스가 누적된 적자로 더는 버틸 수 없다며 백기를 들었다. 마을버스 업체들이 ‘만년 적자’를 겪게 된 것은 2004년 서울시가 대중교통 환승 시스템을 도입하면서부터다. 버스 회사의 수익을 지자체가 직접 관리하며 재정을 지원하는 준공영제로 운영돼 운영손실 전액을 보전받는 시내버스와 달리, 민영업체가 운영하는 마을버스는 이용객이 타 대중교통으로 환승하게 되면 환승액 전액이 아닌 일부 손실분만을 보조받았다. 현재 마을버스는 이용객이 지하철과 시내버스로 두 차례 환승하면 336원을, 시내버스만 이용하면 514원을, 지하철만 이용하면 523원을 벌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마을버스 이용객이 타 교통수단으로 환승하면 손해는 늘고, 수입은 줄어드는 구조다.
마을버스조합은 운영할수록 쌓이는 적자에 지속해서 요금인상 요청을 했지만 지난 8년간 서울 마을버스 요금은 ‘900원’에 멈춰있다. 업체들의 불만이 새어 나오자 서울시는 뒤늦게 적자업체 구제를 위한 재정지원액을 2019년 192억원에서 2022년 495억원으로 크게 늘렸다. 같은 기간 월 평균 지원업체도 2배 가까이 늘어났다. 하지만 업체들은 코로나19 이후 점차 쌓인 부채가 더이상 감당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불어나 회생이 불가능한 수준이라고 호소했다.
종로09번 버스를 모는 장 모 기사는 “하루 9시간씩, 주야로 교대하는 일인지라 업무강도가 상당히 세다”며 “사장님도 빚을 지며 업체를 운영하고 있어 직원 월급을 올려주고 싶어도 어렵고, 우리도 이런 사정을 아니 임금인상을 요구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그는 “시내버스만큼 지원을 해주는 게 어렵다면 요금이라도 동일하게 받을 수 있도록….”이라고 말끝을 흐렸다.
서울시 마을버스 운송사업조합 홈페이지에도 하루가 멀다고 ‘대형 운전 경력이 없어도 와서 훈련받으면 버스운전을 할 수 있다’, ‘운전직 공무원에 도전할 수 있게 돕겠다’는 공고가 올라온다. 하지만 스러져가는 마을버스 업계에 정착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시내버스를 운전할 수 있는 경력만 쌓으면 바로 떠난다. 영등포지역 마을버스를 운행하는 태경운수의 관리부장은 “지속적으로 사람을 모집해도 지원하는 사람이 없고, 일하던 사람들도 더 나은 처우를 받고 싶어 시내버스로 이직하는 추세”라며 “일하는 환경과 조건이 좋지 않으니 누가 마을버스 운전기사가 되고 싶어 하겠나”고 말했다. 총 7대의 마을버스를 보유한 태경운수는 기사 구인난과 승객 감소로 인해 매일 1~2대의 버스는 사실상 운행을 중지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마을버스 운행을 포기하는 회사들까지도 나온다. 금천구에서 마을버스를 운행하는 범일운수는 2021년 5월 장기간에 걸친 경영악화로 금천01-1번 마을버스 휴업을 결정했다. 당초 6개월간 운행중단을 시행했지만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운행을 재개하지 못한 상태다. 박주운 서울마을버스운송사업조합 전무는 “현재 서울에서 운행 중인 마을버스 노선 중 흑자 노선은 단 1개 노선밖에 없다”며 “모든 노선이 운행하면 할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라, 공익을 위한다는 심정 하나만으로 버티고 있다”고 토로했다.
“지자체 직접 운영 등 대책 필요”
서울 강동구 강일동에서 강동02번 마을버스를 이용하는 노부부(80·73)는 “4000세대가 넘게 사는 이 지역에 다니는 마을버스 배차 간격은 20분 수준인데, 마을버스 회사에서는 인력이 없어 운행 증대가 어렵다고 하니 너무 답답하다”며 “비역세권에 거주한다는 이유로 불편한 교통을 계속 감수하며 살라는 것인지….”라며 불편함을 호소했다. 이 지역에 거주 중인 박준서씨는 “심각한 마을버스 배차 간격에 이곳 주민들은 마을버스를 탈 수 있겠다는 기대를 버린 지 오래”라며 “서울에 살고 있는데도 교통 난민이 된 기분으로 산다”고 토로했다.
구내 지하철역이 3곳에 불과해 마을버스 노선이 활성화되어 있는 금천구에서는 코로나19 확산 이후 지속된 감차로 마을버스 배차시간이 1시간까지 늘어난 노선도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 이전 4대의 마을버스를 운영하던 금천11번 노선은 차량 노후화로 인해 운행 가능한 차량이 줄어들면서 배차 간격이 20분에서 1시간으로 늘어났다. 홍의석 정의당 금천구지역위원장은 “금천11번 마을버스는 가파른 언덕길과 주택가가 밀집된, 교통 접근성이 낮은 지역에서 운행하다 보니 적자를 면치 못해 경영상 어려움이 크다”며 “젊은 세대는 도보로 이동해 시내버스를 탈 수 있지만, 주 이용객인 노약자나 임산부, 어린이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라고 전했다. 홍 위원장은 “마을버스의 고질적인 적자 문제를 더이상 업체들에 맡길 것이 아니라 구청이 적극적으로 나서 직접 운영을 하는 등의 개선책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상황이 극에 달하자 서울시는 지난달 28일 ‘마을버스 적자업체 재정지원 확대 계획’을 통해 추경예산을 투입, 추가 예산을 확보하겠다는 처방을 내놓았다. 하지만 마을버스 운영자들은 서울시의 이번 대책이 숨통을 트일 만큼의 처방조차 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박주운 전무는 “1일 1대당 재정지원기준액인 45만7040원은 4년 전에 산출한 금액으로, 그사이 오른 인건비와 물가를 전혀 반영하지 못한 기준”이라며 “서울시는 시에서 7.5%, 자치구에서 7.5%를 부담해 월 재정지원금 산정액의 100%를 받게 해주겠다고 하지만, 자치구와는 아무 상의 없이 시에서 일방적으로 내린 결정이라 실제 시행이 가능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박 전무는 “서울시가 정말 교통약자인 시민들을 우선순위에 뒀다면 이런 정책을 해결책이라고 내놓지는 않을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서울시도 민영으로 운영되는 마을버스에 시내버스 수준의 지원금액을 투입하긴 어려워 고심이 크다. 운영·재정관리 주체가 다른 마을버스에 동일한 금액을 지원하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다. 서울시 관계자는 “준공영제도가 아닌 마을버스 업계에 전액 지원을 할 근거도 없고, 재정도 마련되어있지 않은 상태”라며 “시민 불편을 막기 위해서라도 하반기 요금인상에 반영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 고양시 일부 버스 배차 간격 4시간, 광주시 노선 절반만 운행
「 전국 곳곳에서 코로나19 확산, 기사 구인난, 물가 인상 ‘삼중고’가 겹친 마을버스 대란이 벌어지고 있다. 경기도 고양시의 일부 마을버스 노선은 배차 간격이 4시간까지 늘어나 사실상 교통수단의 기능을 상실했다. 고양시는 하반기부터 시내버스와 마을버스를 모두 준공영제로 운영하는 방안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남양주시도 마을버스를 준공영제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광주광역시는 관내 총 12개 마을버스 노선 중 6개만 운행 중이다. 광산구 평동 평지·봉정마을의 유일한 대중교통인 720-1번 마을버스가 지난 1월부터 휴업에 돌입하면서 이 지역 주민들은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게 됐다. 주민들이 ‘마을에 고립됐다’며 연일 항의하자 택시 이용권을 지급하고, 임시버스를 투입하고 있지만 아직 뾰족한 대책은 보이지 않는다. 광주시는 마을버스 재정 손실 지원을 검토하고 있으나 시내버스 준공영제에도 적지 않은 예산을 투입하는 상황에서 마을버스까지 본격적으로 지원하기는 쉽지 않아 고심 중이다.
」
오유진 기자 oh.yoo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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