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터지는 파산 뉴스…이미 2만개 은행이 사라졌다는데 [Books]
인류 역사에 영원히 반복되는 것이 있다. 금융위기다. 은행이 연쇄적으로 파산할 때 마다 경기는 얼어붙고 부수적 피해가 일어난다. 실업이 늘고 주가가 떨어지며 많은 이들의 인생이 곤두박질친다.
1812년 미국의 경제붕괴 이후 200여년에 걸친 9번의 미국의 금융위기를 분석한 책이 나왔다. 레이건 행정부 연방주택대출은행이사회 법무 자문 위원을 지낸 ‘금융 분야 미국 최고의 변호사’란 평가를 얻고 있는 토머스 바타니안의 저서다. 그에 따르면 200년간 미국은 어떤 국가보다 금융 공황을 많이 겪었고, 약 2만개의 은행이 파산했다. 가장 번영한 경제대국이 왜 반복되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1980년대 말 미국의 금융 위기를 부른 주택대부조합의 파산을 감독관으로 지켜봤던 저자는 당시 무능한 조합 경영진이 아닌 미국 의회가 위기를 자초했음을 깨달았다. 당시 그는 금융 서비스에 대한 정부의 관리, 감독이 과중해지고 정형화될수록 관리의 효율성이 떨어져 위기를 부른다는 것을 발견했다.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빨리 성장한 비결 중 하나는 금융이다. 미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세계에서 가장 크고 복잡하며 혁신적인 일종의 금융 시장이다. 미국 경제는 빚에 대한 의존도가 크며 빠른 속도로 팽창과 수축이 이뤄진다. 각종 관계자들이 연결된 거대한 연결망은 시장에 이상 신호가 잡히면 담보물의 가치가 증발하고 빛의 속도로 신용이 사라진다. 대출 기관은 부실해지고 이 기류가 시장으로 퍼져나가면 연쇄적으로 거대 연결망 자체가 무너지고 마는 것이다.
위기 발생 후에는 모든 이들이 냉혹하고 부도덕한 은행과 투기자, 자본가를 비난한다. 하지만 근본 원인은 무분별한 대출과 투기적 투자를 일삼는 이들의 탐욕이 아니다. 선의에 의한 정부의 개입이 깨지기 쉬운 시장의 평형을 교란하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이런 결론에 도달한다. “유감스럽게도 어설프거나 잘못된 정부 개입이 지난 200년 동안 발생한 거의 모든 금융 위기를 조장하거나 유발했다.”
금융 시스템은 본질적으로 취약하다. 이 취약한 틈을 탐욕이 파고들 때 정부와 민간이 의도치 않게 결착하며, 이로 인해 금융 유인책을 왜곡하고 호황과 불황, 나아가 공황을 부추긴다.
역사 수업을 해보자. 제임스 먼로 정부는 미영전쟁 직후 햇병아리 단계인 미국 제조업을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높은 관세를 부과하고 10여개의 주정부인가 은행을 설립했으나 1819년 이들은 거의 붕괴했다. 앤드루 잭슨 대통령은 중앙은행의 존재가 절실했던 1830년대 중앙 집중을 완화하겠다는 미명 아래 미국 유일의 중앙은행을 폐쇄해, 국가 통화의 위상을 약화시켰다. 이는 1857년 경제 위기와 1873년 장기 불황의 원인이 됐다.
19세기는 말 그대로 공황의 시대였다. 금, 은, 법정 화폐 중 주요 교환 수단으로 뭘 선택할지 논쟁하느라 1857년, 1873년, 1893년 금융 공황을 일으켰다. 1920년대 유럽을 지원하려고 미국의 금리를 낮게 유지한 연방준비제도(FED)는 미국 주식시장의 과열을 불렀고 결국 대공황을 불렀다.
저자가 직접 소방수로 뛰었던 1980년대 저축대부조합(S&L) 파산발 위기도 1960년대 의회와 주정부가 인위적으로 예금과 주택담보대축 금리에 상한선을 둔 것에서 비롯된 거품 붕괴였다. 1980년대 오일쇼크로 금리가 두자리수로 급등하자 은행은 담보대출로 인한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1400곳이 넘는 S&L이 파산하거나 합병했고 문제가 봉합된 건 1995년이었다. 선의로 인한 정부 정책, 불안정한 시장, 신뢰의 상실 등이 중첩된 위기였다.
2008년 금융위기의 원인은 모두가 알고 있다. 그런데 저자는 놀랍게도 2008년 위기의 본질은 파생상품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해석하며, 1990년대와 2000년대까지 이어진 미국의 초저금리와 강력한 주택 공급 목표가 빚어낸 참극이었다고 단언한다.
9번의 금융위기를 복기하며 저자는 각기 다른 6개 요소가 서로 충돌할 때 붕괴가 일어났음을 발견한다. 그것은 관리 경제, 과열된 시장, 시장 상승 및 호황에 대한 심리, 신뢰 상실, 예상치 못한 사건, 시장 혼란이다.
공화당과 민주당을 오가며 세 차례 공직을 맡았던 저자는 망가진 미국 금융 체계를 혁신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밝힌다. 미래의 공황에 대한 논의로 책을 마무리한다. 그가 꼽는 해결책은 첨단 기술이다. 기술은 양날의 칼이다. 21세기에는 은행의 예금 자산보다 뮤추얼펀드와 MMF가 관리하는 자산이 더 커졌다. 엄격한 규제를 받지 않는 비은행권의 경쟁력이 커지는 건, 위험이 전가되며 안전성 감시 작업이 더욱 복잡해지는 걸 의미한다. 가상화폐·핀테크 기업이 발전할수록 위기의 빈도는 짧아질 가능성이 커진다.
동시에 인공지능을 비롯한 기술의 혁신을 도구로 삼아 감독과 규제의 효율성을 높이는 방법도 찾을 수 있다. 2019년 블루닷이 인공지능을 이용해 세계보건기구에 앞서 코로나19 팬데믹을 예상한 것처럼, 금융 위기의 조짐도 예측할 수 있다면 빠른 대응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미래의 금융위기는 오늘의 위기와 다른 얼굴로 찾아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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