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풍 맞은 ‘평양 스타일’... ‘탈북자 손절’로 몰면 안되는 이유 [만물상]
1994년 MBC 개그맨이 된 전철우(56)씨는 북한의 동독 유학생 출신이다. 방송과 냉면 사업으로 유명해졌다가 활동이 뜸해졌다. 사업 실패와 이혼으로 어려움을 겪었다는 사연이 나중에 전해졌다. 1998년엔 북한 배우 김혜영(51)씨가 귀순했다. 드라마에 출연하며 활발하게 활동했지만 두 차례 이혼하는 등 한국 정착이 순탄치 않았다. 일부 유명 탈북민만의 얘기가 아니다. 3만명이 넘는 탈북민 상당수가 적응에 애를 먹는다.
▶국민의힘 태영호(61) 의원은 스스로를 ‘태미넴’이라 부른다. 미국의 전설적 힙합 가수 에미넴(넘)과 자신의 성을 합성했다. 2020년 총선 유세 때 시작한 랩을 지금은 능숙하게 구사한다. 랩, 막춤, 먹방 콘텐츠를 선보이는 유튜브 채널 구독자는 28만명이 넘는다. 보수 정치인 특유의 ‘엄근진’(엄격·근엄·진지) 이미지를 깨고 국회의 탈(脫)꼰대 아이콘으로 등극했다. 그 주인공이 환갑을 넘긴 평양 출신이란 사실이 정치권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여세를 몰아 두 달 전 최고위원에 올랐다.
▶최근 며칠 ‘대통령실 공천 개입 의혹’ 녹취 유출, 쪼개기 후원금 의혹, 청년 보좌관 특혜 채용 의혹 등 태 의원을 둘러싼 불미스러운 보도가 쏟아졌다. 태 의원과 함께 일한 전·현직 보좌관들이 제보자로 지목됐다. 휴일도 없이 오전 6시 30분에 출근해 밤 11시 이후 퇴근하는 ‘천리마운동’식 업무 방식, 일주일에 스무 번이 넘었다는 상호 비판식 보좌진 ‘총화’ 등 북한식 업무 스타일에 MZ세대 보좌진이 학을 뗐다고 한다.
▶회사에서 젊은 직원들이 업무 지시를 받으면 ‘이걸요?’ ‘제가요?’ ‘왜요?’라고 되물어 임원들 사이에 ‘3요 주의보’가 도는 세상이다. 기존 ‘3요’에 ‘지금요?’까지 더해져 ‘4요’란 말까지 나온다. ‘라떼(나 때)는 말이야’가 입에 밴 50~60대뿐 아니라 젊은 축인 30~40대 상사들도 난감해한다. 엄격한 상명하복식 관료주의에 익숙한 태 의원에겐 납득하기 어려운 문화일 것이다.
▶국민의힘 윤리위원회가 곧 태 의원 징계를 결정한다. 쪼개기 후원금 의혹과 청년 보좌관 특혜 채용 의혹은 사실이라면 심각한 일이다. 잘못이 확인되면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하지만 ‘탈북자 손절’이 돼선 곤란하다. 대한민국이 탈북자 출신 국회의원, 탈북자 출신 여당 최고위원을 배출할 수 있는 체제라는 사실이 북한 주민들에게 주는 메시지는 어떤 대북 정책보다 강력하다. 대북 확성기보다 효과적이고 핵미사일보다 강한 비대칭 전력을 죽이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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