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저주 ‘합스부르크 턱’, 딸의 병을 숨긴 펄벅…명암 가득한 유전학의 역사[책과 삶]
웃음이 닮았다
칼 짐머 지음·이민아 옮김
사이언스북스 | 880쪽|5만원
16~17세기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가의 특징이었던 ‘주걱턱(합스부르크 턱)’은 반복되는 근친혼으로 인한 유전자 이상이 이유로 지적된다. 이 밖에도 왕가의 인물들은 건강상 문제가 많았다. 그럼에도 당시 펠리페 4세(1605~1665)는 자녀들 다수가 잇달아 요절하자 “자기가 여배우들에게 탐닉한 탓에 자식들이 이른 나이에 죽는 것”이라며 자책했다. 오늘날 같은 ‘유전’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과학 저널리스트 칼 짐머의 <웃음이 닮았다>에 따르면 18~19세기 이전까지만해도 오늘날과 같은 의미의 과학적 ‘유전학’이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유전(heredity)’이란 단어는 상속받는 ‘유산’이라는 의미로 쓰였다.
칼 짐머는 <웃음이 닮았다>에서 유전에 대한 개념부터 유전학의 역사, 멘델의 번뜩이는 아이디어, 펄 벅이 숨기려 했던 딸의 유전병, 20세기 초 수많은 사람을 죽이는 데 이론적 근거를 제공했던 ‘우생학’의 어두운 과거 등을 폭넓게 다룬다.
이 책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두 가지다. 우선 유전은 중요하지만 결코 환경을 무시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이는 남북한의 평균키를 비교해보아도 알 수 있다. 재능에 있어서도 환경이 갖는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라지 않다.
이어 유전은 결코 단선적인 방식으로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통상 생각하듯 ‘뛰어난 콩’을 심은 데서 반드시 ‘뛰어난 콩’이 나리라는 법은 없다. 어떤 특성은 때론 나선형으로, 수많은 다른 유전자들의 영향을 받아, 공동 조상으로부터, 대를 건너뛰기도 하며 복잡하게 이어진다.
인류는 이제 유전자에 직접 개입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과연 그것은 뛰어난 콩들로만 가득한 ‘멋진 신세계’를 만들 것인가? ‘타고난 유전자’가 갖는 영향은 어디까지인가? 우리는 이 도구를 어떻게 쓸 수 있을 것인가? ‘유전의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는 노정의 우리가 진지하게 던져야 할 질문들이다.
김지원 기자 deepdeep@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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