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죽만 요란했던 ‘대통령·야당 회동’…공은 다시 대통령실로
조건 달고 갑작스럽고 변칙적 초청
민주당에 공 넘기는 모양새 취해
갈라치기 의혹에 진정성 의심받아
대통령실 ‘회동 불씨’ 살릴지 주목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사진)는 5일 “대통령께서 하루속히 야당 대표와 먼저 만나 국가 위기의 극복 방안을 논의하시는 것이 순리이고 순서”라고 밝혔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전날 “대통령께서 원내대표와 만나는 것도 괘념치 않겠다”고 말한 데 대해 답한 것이다. 대통령실의 윤석열 대통령과 여야 원내대표 회동 제안을 거절한 것으로 풀이된다.
박 원내대표는 이날 출입기자단에 보낸 문자 공지에서 “이 대표의 말씀은 국가적인 위기 상황에서 우리 정치가 하루빨리 정상화되길 바라는 충정에서 하신 말씀으로 이해된다”며 이같이 밝혔다. 박 원내대표는 “대통령께서 민생 회복과 정치 복원을 위한 좋은 길을 선택해주실 것을 다시 한번 정중히 요청드린다”고 말했다.
박 원내대표는 지난 2일 이진복 대통령실 정무수석으로부터 윤 대통령이 여야 원내대표와 만날 의향이 있다는 뜻을 전달받고 “당대표를 먼저 만나는 것이 순서”라고 답했다. 그러자 이 대표는 전날 “대통령께서 야당 대표를 만나는 것이 어렵다면 원내대표와 만나는 것도 괘념치 않겠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이 대표가 막힌 정국을 풀기 위해 대통령실에 ‘통 큰 양보’를 했다는 입장이다. 권칠승 수석대변인은 이날 “(대통령이 야당 대표를 먼저 만나야 한다는) 기본 형식이 파괴된 것을 당이 대승적으로 포용한 것”이라고 했다. 이 대표로서는 이번 양보 제스처로 협치 실종의 책임을 윤 대통령에게 돌릴 수 있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박 원내대표는 고심 끝에 대통령실 제안을 거절했다. 윤 대통령과 만나더라도 협치의 물꼬를 틀 수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이 여야 원내대표를 만난 후 나중에 여야 대표를 만날 가능성이 희박해서다. 비이재명계인 박 원내대표로서는 윤 대통령과의 회동을 수용하고 성과를 내지 못하면 임기 초반 지도력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애초 대통령실의 진정성 없는 회동 제안이 박 원내대표 운신의 폭을 좁혔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수석은 지난 2일 박 원내대표에게 “(윤 대통령이) 여야 원내대표가 합의하면 만날 수 있고, 여야 원내대표가 따로 만나는 과정에서 대통령을 부르면 올 수도 있다”고 밝혔다. 대통령실이 야당 원내대표를 공식 초청한 게 아니라 여야가 합의하면 만날 수 있다는 조건을 내건 셈이다. 이 대표를 만날 수 없다는 불통 원칙을 재차 확인하면서 공을 야당에 넘긴 것으로 해석된다.
이 대표의 급작스러운 제안으로 박 원내대표가 곤란한 처지에 놓였다는 지적도 나온다. 앞서 대통령실은 박홍근 전 민주당 원내대표에게 비공식적으로 윤 대통령과 여야 원내대표 회동을 제안했으나 박 전 원내대표도 “당대표를 먼저 만나야 한다”고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은 대통령실의 여야 원내대표 회동 제안을 갈라치기 전략으로 규정해왔다. 권 대변인은 전날 “검찰을 앞세워 편파·표적·기획 수사하면서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들먹이며 회동을 회피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공은 다시 윤 대통령에게 넘어갔다. 야권 일각에서는 윤 대통령이 이 대표와 만나는 것을 전제로 박 원내대표에게 먼저 회동을 제안하라는 의견도 나온다. 박수현 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이날 KBS 라디오에서 “여야 원내대표를 불러서 함께 대화하고 당대표와의 대화도 그 뒤에 분위기가 있으면 하게 되는 것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여야 협치의 소중한 계기가 무산된 것을 아쉽게 생각한다”며 “위기 극복과 민생 회복, 정치 복원을 생각해 향후 만남을 결정해주시면 언제라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야당 신임 원내지도부 구성을 계기로 여야가 뜻을 모으면 대통령과 함께 모이는 자리를 할 뜻이 있다는 데 변함이 없다”면서 “박 원내대표가 뜻을 밝혔으니 상황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윤나영·탁지영 기자 nayo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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