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마저 …"지방선 공장 지을 인력 못구해"

이윤재 기자(yjlee@mk.co.kr), 서대현 기자(sdh@mk.co.kr) 2023. 5. 5.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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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떠나고 젊은층 기피
에쓰오일·SK 등 예의주시
국내 투자계획 지연 우려도

지방 공사 현장의 고질적인 인력난이 대기업들의 신규 투자 사업도 옥죄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사장 인력을 제때 충원하지 못할 경우 애써 추진 중인 국내 투자 계획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 섞인 전망도 나온다.

5일 업계에 따르면 지방에 신공장 건설을 계획하고 있는 대기업들이 공사장 인력난으로 인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최근 수년간 코로나19로 인해 외국인 노동자 유입은 단절됐고 그나마 숙련직은 입지나 임금 면에서 더 좋은 일터를 찾아 이동했기 때문이다. 또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후 공사장에선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는 한국인에 대한 수요가 높지만 젊은 인력은 일용직 건설 업무를 기피해 고령자만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국내 대표적 공업 단지인 울산의 경우 신사업으로 대전환이 이뤄지고 있지만 심각한 인력난 때문에 곳곳에서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현재 울산에서는 에쓰오일이 샤힌 프로젝트로 불리는 국내 최대 규모의 석유화학 공장 설립에 나섰고 SK가스는 세계 최초 액화천연가스(LNG)·액화석유가스(LPG) 복합발전소인 울산GPS를 짓고 있다. 여기에 SK지오센트릭이 플라스틱 재활용 종합 클러스터(ARC), 현대자동차는 전기차 울산공장 신설을 올해 안에 진행할 예정이다. 고려아연 역시 2차전지 소재 공장 증설에 나선다.

이 같은 상황에서 대기업들도 지방 공사장 인력을 확보하는 것이 투자 계획상 최우선 과제로 부상했다. 세계적으로 탄소중립 기조가 강화되는 가운데 기업들은 친환경 사업으로 전환을 서두르며 신공장 설립 계획을 세우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심각한 인력난이 도사리고 있다.

실제로 국내 한 기업의 경우 신사업을 위한 공장을 새로 짓기로 했지만 최종 투자금액은 하반기에 확정 짓기로 했다. 해당 기업 관계자는 "현재 삼성전자의 평택 반도체 공장부터 에쓰오일의 울산 샤힌 프로젝트까지 초대형 공장 건설이 진행되면서 전국의 건설 인력이 특정 지역으로 쏠리고 있다"며 "건설 노동자 인력 수급 상황과 인건비 변동 요인을 좀 더 살펴본 후 하반기에 투자금액을 확정할 계획"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비가 내린 5일 경기도 평택시 고덕동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4공장 건설 현장에서 노동자들이 작업장을 나서고 있다. 이곳은 일당이 높고 일감도 넉넉해 전국 기능·일용직이 가장 선호하는 건설 현장으로 꼽힌다. 이승환 기자

울산 공장건설 2만명 필요한데 "지방 왜가요"

대기업 지방 공사현장 인력난

기능공·일용직 근로자 수요

수도권에 쏠림 현상 심해져

울산, 조선 인력난 겹쳐 울상

일부 공사장선 벌써 인력 끊겨

새만금·광양도 잇단 공장 계획

 현재 건설 인력 사이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곳은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 공장 설립 현장이다. 국내에서 진행되는 가장 큰 플랜트 공사로 2015년부터 시작돼 벌써 10년 가까이 돼간다. 인력 공급업계 한 관계자는 "서울에서 가깝고 다른 지역 대비 일당도 높아 전국 기능직은 물론 일용직까지 일제히 몰려드는 곳"이라며 "공사 기간이 길다 보니 일감이 많고 오랜 기간 일할 수 있다는 게 장점으로 꼽힌다"고 설명했다. 평택 현장에는 많게는 하루 5만명에 이르는 인력이 투입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곳에선 코로나19로 한동안 사라진 외국인 근로자마저 흔히 볼 수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안전 지휘봉을 잡고 현장 차량과 인력 이동을 지휘하는 업무의 경우 조선족을 비롯한 외국인 여성 인력에게 매우 인기가 높다"며 "보통 1공수(공사장 노동 단위로 통상 하루 근무시간인 8시간) 근무만으로도 월급이 350만원이 훌쩍 넘고 1.5공수(10시간 근무) 땐 500만원도 가능하다"고 귀띔했다.

 에쓰오일의 샤힌 프로젝트는 최근 착공식을 한 후 용지 정비 등 기초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현재는 공사 초기 단계로 인력이 대대적으로 투입되는 상황은 아니지만 토목공사 이후 설비 건설이 본격화되면 하루 최대 1만5000명에 달하는 인력이 투입될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울산에서 연내 SK지오센트릭, 현대자동차, 고려아연 등 대기업 공장 신증설이 본격화할 경우 하루에 2만명 넘는 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조선업 인력난이 심각한 상황에서 다시 인력 수요가 치솟으면 인건비도 자연스레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울산 지역에서는 현재 기업에 파견되는 일용직 근로자 일당이 13만원 수준으로 지난해보다 1만원 올랐다.

 업계에서는 조만간 진행될 민주노총 플랜트건설노조와의 임금협상도 주목하고 있다. 플랜트업계는 매년 노조와 협상해 임금 인상 폭을 결정하고, 여기에서 합의된 임금은 플랜트업계 인건비 산정의 기준이 된다. 지난해 노사 합의문을 보면 노사는 기능공을 기준으로 일당 5200원 인상에 합의했다. 합의에 따라 오는 7월까지 기능공은 일당 20만2200원(배관·배관용접은 20만7200원)을 받는다. 조력공 일당은 15만~18만원으로 알려졌다.

 노조는 올해 임금과 단체협상을 앞두고 오는 10일 임시대의원대회에서 임금 요구안을 확정할 계획이다. 업계에서는 최근 급격한 물가 상승 여파로 노조가 올해 생활임금 보장 차원에서 예년 수준보다 높은 임금을 요구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런 가운데 사측은 건설자재 가격 인상에 따른 수익 감소와 각종 수당 등 임금 외 비용 증가 부담을 호소해 교섭 과정이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울산 지역의 한 인력업계 관계자는 "소규모 공사 현장에서는 벌써 인력난 조짐이 보이고 있다"며 "앞으로 동시다발로 공사가 진행돼 업체들이 인력 확보전에 뛰어들 경우 임금 상승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공사 인력 부족 사태가 전국적으로 더 확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국내 배터리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LG화학·SK온·포스코퓨처엠 등은 전라북도 새만금, 전라남도 광양, 경상북도 포항 등지에 전구체·양극재·음극재 공장을 설립하겠다는 계획을 연이어 발표하고 있다.

[이윤재 기자 / 울산 서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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