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日, 소부장·北인권 협력 기대 … 과거사·오염수 입장차 커
與"尹결단에 기시다 화답 차례"
日, 과거사 직접사과는 없을 듯
대통령실 "이제 시작하는 단계"
용산시위 예고에 경호수위 격상
윤석열 대통령의 결단과 한미정상회담 성과 등 영향으로 한일정상회담이 조기에 성사됐지만, 양국 사이에는 자칫 '뇌관'이 될 수 있는 요소가 다분해 한일 외교가가 긴장하고 있다.
5일 외교가에 따르면 한일정상회담을 바라보는 양국의 기대치에 격차가 작지 않다. 12년 만의 셔틀외교 복원이 강제징용 피해 배상 제3자 변제 해법이라는 윤 대통령의 결단으로 이뤄진 만큼 한국에서는 일본이 보다 선제적이고 적극적으로 과거사 문제 해결에 나서주기를 바라는 부분이 크다. 유상범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이날 공식 논평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오직 국익과 미래를 위한 대승적 결단을 내린 만큼, 일본 역시 전향적인 태도를 보여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이번에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이른바 '선물 보따리'를 가져와야 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기시다 총리가 과거사에 대해 한국이 기대하는 수위의 직접적인 사과 발언을 내놓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으로서는 2011년 노다 요시히코 당시 총리 이후 12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 현충원을 방문하는 것에 무게를 싣고 있다. 이 때문에 정상회담을 앞두고 대통령실과 정부는 극도로 말을 아끼고 있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일본은 과거사 문제를 논의하기보다는 현재 양국이 뭘 할 수 있는지, 미래에 어떤 관계로 나아가 협력할 수 있는지에 집중하는 모습"이라고 말하며 고민을 드러냈다. 독도, 위안부 등 과거사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현안으로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도 민감하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오는 6월로 예고된 오염수 방류 문제가 이번 정상회담에서 논의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은 오염수 방류 문제에 대해 "정치적 차원에서 볼 문제가 아니다. 국민이 가지는 우려와 의문을 과학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여론과 국민 정서는 과학적인 근거보다 한일 관계와 이를 둘러싼 감정적 문제에 치우쳐 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그동안 한일 관계 악화로 막혀 있던 교류들이 이제 막 활성화되고 있는 단계"라고 말하면서 "3월에 시작돼 5월까지 이어지는 두 달간의 정상회담이 물꼬를 터주겠지만, 그것이 곧바로 손에 잡히는 성과로 나오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유 대변인 역시 "그간 양국 관계에 많은 부침이 있었던 만큼, 이번 방한으로 단번에 해결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라면서 "양국이 진정성 있는 대화를 이어 간다면 그동안 엉킨 실타래를 풀어 물 잔의 반이 채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다행히 경제 관련 협력이나 미래 세대 교류 문제에 대해선 대화가 잘 풀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소부장(소재·부품·장비)'이라고 불리는 분야에서 강한 일본과 제조 분야에서 강점이 있는 한국이 손을 맞잡는 공급망 협력, 액화천연가스(LNG) 등 에너지를 공동으로 구입해 구매력을 높이는 에너지 협력, 일본이 강한 나노, 신소재 등과 한국이 '초격차'를 유지하고 있는 디지털·수소 등 분야에서의 과학기술 협력 등은 양국 정상이 논의하고, 실무진 차원에서 발전시킬 수 있는 대목이다.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는 북한 인권 문제와 납북자 송환 문제에 대해서도 힘을 합할 예정이다. 양국 정상은 지난해 11월 캄보디아 프놈펜 한·미·일 정상 공동 성명에서 납치자 문제의 즉각적 해결을 위한 공동 의지를 확인한 바 있다. 특히 지난 3일 일본의 납치피해자가족회가 미국을 방문해 웬디 셔먼 국무부 부장관을 만나 납치 문제 해결을 위한 지원을 요청하는 등 납북자 문제 해결에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미국 국무부도 납북 문제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한일 등 동맹과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외교 전문가들은 북한 인권 문제와 일본 납북자 송환 문제는 한일 양국의 의견이 완벽히 일치하는 몇 안되는 분야 중 하나이기 때문에 이번에도 양국 정상 간에 긴밀한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을 반영해 기시다 총리에게 이례적으로 최고 수준의 경호 조치가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 총리는 통상 주요국 정상이 속한 최고 등급 경호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이번 방한에 맞춰 경호 등급이 상향됐다고 대통령실 관계자 등이 전했다. 정상회담이 이뤄지는 서울 용산 대통령실 인근, 기시다 총리가 방문할 것으로 예상되는 주한 일본대사관, 기시다 총리의 숙소로 알려진 서울 롯데호텔 인근에서 반일 단체의 시위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라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작년 7월 일본에서 총기 피습으로 사망했고, 기시다 총리 역시 지난달 한 남성이 투척한 사제 폭발물이 1m 앞까지 오는 위험천만한 사건을 겪었다. 다만 경호처는 구체적인 경호 내용에 대해서는 보안상 이유로 특별한 코멘트를 하지 않았다.
한편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는 이번 정상회담에 앞서 지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유엔 총회,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정상회의 등에서 만났고, 지난 3월 윤 대통령이 방일하면서 제대로 된 정상회담을 했다.
[박인혜 기자 / 이호준 기자 / 한예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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