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공천 개입’ 의혹 덮고 개인에 책임···이준석 “태영호, 징계 왜 하는지 불분명”
국민의힘에서 태영호·김재원 최고위원에 대한 중징계가 임박했다. ‘대통령실 공천 개입 의혹’ ‘왜곡된 역사관’ 같은, 이번 사태를 낳은 본질적인 원인은 덮어둔 채 당을 시끄럽게 만든 개인에게만 책임을 물어 상황을 마무리 지으려 할 경우 같은 문제가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당 상황으로 인해 오는 7~8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방한에 쏠려야 할 관심이 흩어지지 않도록 하는 방안을 고심 중이다.
태 최고위원에 대한 당 중앙윤리위원회 징계 개시 사유 중 하나인 ‘4·3 사건 김일성 지시설’은 3·8 전당대회 선거운동 기간인 지난 2월12일 처음 나왔다. 당시 제주 합동연설회를 하루 앞두고 제주 4·3 평화공원을 찾은 태 최고위원은 “4·3 사건은 명백히 김씨(김일성) 일가에 의해 자행된 만행”이라고 주장했다. 제주도민을 중심으로 이를 비판하는 여론이 들끓었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 선거관리위원회는 태 최고위원 측에 ‘민감한 사항에 대한 발언은 자제해 달라’는 취지의 입장을 전달하는 데 그쳤다. 이 사건이 석 달이 지나 태 최고위원의 중징계를 예상하는 사유 중 하나가 됐다.
김 최고위원에 대한 징계 개시 사유들도 사태 초기엔 당 지도부조차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것들이다. 김 최고위원이 지난 3월12일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의 주일예배에 참석해 ‘5·18 민주화운동 정신 헌법 수록 반대’ 발언을 했지만, 김기현 대표가 공식적인 경고 발언을 한 것은 한 달 가까이 지난 4월6일이었다. 이마저도 ‘전 목사 우파 천하통일’ ‘4·3은 격 낮은 기념일’ 등 김 최고위원이 추가로 논란 발언을 한 뒤에 나왔다. 앞서는 그냥 넘어갈 뻔한 일들이 이제 와서는 국민의힘 소속으로 차기 총선 출마를 못 할 사유가 되려 한다.
왜곡된 역사관 자체를 문제 삼지 않고 ‘시끄럽게 만들어 당에 피해를 줬다’는 이유로만 징계하는 것은 여당 지도부 일부 인사들의 역사 인식이 태·김 최고위원과 별반 다르지 않아서다. 당 지도부 일부 인사들은 “두 사람이 틀린 말한 거 하나도 없다”면서도 다만 논란이 됐기 때문에 징계하지 않을 수는 없다는 생각을 전하기도 했다.
태 최고위원이 보좌진에게 이진복 대통령실 정무수석이 내년 총선 공천을 거론하며 정부의 일제 강제동원(징용) 피해 배상안을 옹호하는 발언을 요청했다고 말한 음성 녹취 내용은 진실 여부를 아직 알기 어렵지만 당 지도부는 이미 ‘태 최고위원의 허언’으로 결론을 내려놨다. 태 최고위원 발언 내용이 사실일 경우 그간 당 안팎에서 우려한 대통령실의 공천 개입 시발점으로도 볼 수 있는 중대한 문제임에도, 그 가능성은 원천 차단한 채 윤리위를 통해 태 최고위원을 서둘러 ‘처리’하는 데만 관심이 있는 모습이다.
국민의힘 지도부의 이 같은 태도로는 앞으로 유사한 문제가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 나온다. 최근 일련의 사태들을 대통령실의 공천 개입 우려를 차단하고 보수정당의 바람직한 역사관을 정립하는 동력으로 활용하기보다는 특정 개인의 문제로 환원시킬 경우 ‘사고’를 막을 수 없다는 얘기다.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의 ‘내부총질 당대표’ 문자 메시지 보도 이후 당대표직에서 쫓겨난 이준석 전 대표는 5일 MBC 라디오에 출연해 “태 최고위원은 징계를 왜 해야 되는지도 불분명하다”며 “당대표가 누가 되느냐를 가지고 굉장히 민감해했던 대통령실이 (총선) 공천에 관심이 없었으면 왜 그런 일을 했을까”라고 말했다. 이재오 당 상임고문은 이날 CBS 라디오에서 “‘대통령실이 내년 총선 공천을 좌우하는구나’ 하는 건 그대로 남고 당은 대통령실만 쳐다본다고 하면 무기력한 당의 모습은 그대로 남게 된다”며 “앞으로 당과 대통령실을 아주 어렵게 만드는 녹취”라고 말했다.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전날 YTN 라디오에서 “(녹취 사태를 통해) 내년에 공천이 어떻게 이루어지느냐 하는 것에 대해서 현역 의원들이 굉장히 불안한 심정을 노출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에서는 오는 8일 최고위원회의를 연기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같은 날 열리는 윤리위에서 두 최고위원에 대한 징계 수위가 결정될 것으로 예상됐는데, 이 또한 연기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기시다 총리의 한국 방문과 윤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이 7~8일로 예정된 상황에서 당 내부 문제가 외교 성과를 가릴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이에 8일 전 이번 주말 사이 태·김 최고위원의 최고위원직 자진 사퇴를 바라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유상범 수석대변인은 통화에서 “(한·일) 셔틀외교 재개가 순조롭게 갈 수 있게 당에서 지원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며 “(이슈가 분산돼서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여당 지도부 한 인사는 통화에서 “주말 사이 자진사퇴를 안 한다면 8일 최고위 개최와 윤리위 징계 결정을 미룰 수밖에 없다”며 “(당원권 정지 징계 후 최고위원직을 사퇴하지 않으면) 태·김 최고위원 자리를 채울 수가 없어 지도부 결함이 계속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대연 기자 hoan@kyunghyang.com, 문광호 기자 moonlit@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김문기의 추석 선물’ ‘딸에게 보낸 동영상’···이재명 ‘선거법 위반’ 판결문
- 조국 “민주주의 논쟁에 허위 있을 수도···정치생명 끊을 일인가”
- 최현욱, 키덜트 소품 자랑하다 ‘전라노출’···빛삭했으나 확산
- 사라진 돌잔치 대신인가?…‘젠더리빌’ 파티 유행
- “민심의 법정서 이재명은 무죄”···민주당 연석회의 열고 비상행동 나서
- 40대부터 매일 160분 걷는 데 투자하면···수명은 얼마나 늘어날까?
- 드라마인가, 공연인가…안방의 눈과 귀 사로잡은 ‘정년이’
- 중학생 시절 축구부 후배 다치게 했다가···성인 돼 형사처벌
- 은반 위 울려퍼진 섬뜩한 “무궁화꽃이~”···‘오징어게임’ 피겨 연기로 그랑프리 쇼트 2위
- ‘신의 인플루언서’ MZ세대 최초의 성인···유해 일부 한국에 기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