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얼 시각] 그럼에도 육아

2023. 5. 5.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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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 고갈될 듯 사랑하라고
신이 우리에게 준 한 시절
어려운 만큼 가치 있는 일

요즘 같은 시대에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은 여러모로 권유되지 않는다. 아이를 배척하는 분위기, 무한 경쟁 사회에서의 양육비 같은 것들이 모두 저출산을 장려하고 있는 듯하다. 경력단절 문제도 심각하고, 양가의 도움이 없는 맞벌이 부부들은 거의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해야만 아이를 키울 수 있다고도 한다. 그 수많은 문제에 깊이 공감하고 있다.

아내와 나는 연고 없는 도시에서 거의 누구의 도움도 없이 아이 하나를 키우고 있다. 아내는 육아와 관련된 업무 조정 같은 것 때문에 직장 상사 앞에서 눈물을 펑펑 쏟기도 했다. 둘이서 영화관에 가는 것은 1년에 한두 번도 힘들다.

그래서 주위에서 아이를 꼭 가져야 하느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당연히 꼭 그럴 필요는 없다고 답한다. 세상에는 다양한 기쁨과 의미가 있는 것이니, 아이 가지는 일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고 말이다. 그러나 반대로, 다시 태어나도 아이를 가질 거냐고 물으면, 아내와 나는 거의 이구동성으로 대답한다. 우리는 꼭 다시 아이랑 함께 살고 싶다고 말이다.

종종 나는 어린아이가 있는, 젊은 부부로 살아가는 이 시절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시절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영화 '어바웃타임'은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남자들의 이야기다. 영화에서 한 남자는 죽기 전 마지막 시간여행으로, 어린 아들과 함께 해변을 달리던 순간을 택한다. 사실, 예전에 영화를 봤을 때만 해도 그 장면이 잘 와닿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알 것 같기도 하다.

나무에 달라붙은 매미처럼 부모를 사랑하는 아이가 있는 시절, 나는 삶의 모든 것을 새로이 경험한다. 한 번도 의지로는 뛰어들어 본 적 없는 갯벌에 벌써 몇 번째 들어가는지 모르겠다. 20년 만에 다시 축구를 하고, 운동을 싫어하는 내가 숨이 차오를 때까지 아이랑 달리기 시합을 한다. 언제나 앉아서 커피를 마시며 바라보는 것을 좋아했던 내가, 그 어떤 시절보다 활동적이다.

아이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쉽게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존재다. 그냥 같이 누워서 떠오르는 대로 상상의 이야기를 해주면, 아이는 좋아서 깔깔대며 계속 더 이야기해 달라고 한다. 그래서 아이는 나를 세상에서 가장 쉽게 행복하게 만들어준다. 아이가 있어서, 아내와 나는 하루에 수십 번, 수백 번을 너무 쉽게 웃는다. 우리는 이 시절이 너무 짧다는 것을 매번 의식하고, 그래서 자주 슬퍼진다.

마음껏, 온 마음을 바닥까지 박박 긁어서 다 꺼내어 사랑해도 되는 시절, 숨이 차오르고 심장이 쿵쾅쿵쾅댈 만큼 사랑해도 되는 시절, 끌어안고 부비고 뽀뽀하고 깔깔대는 시절, 아무리 사랑해도 도망갈 리 없고, 서로에게서 도망칠 수도 없는 시절, 사랑이 강요가 되어 갇혀버린 무인도의 시절, 내 영혼을 털어내듯 걱정하고 보호하는 시절, 이런 시절은 인생에 잠시 주어진다.

인생에 한 번, 이렇게 서로에게 완전히 구속되어 꽁꽁 묶인 채로, 무한히 서로를 온 마음으로 다 사랑하라는 명령이 떨어진 이런 시절을 살아볼 가치가 있다고 느낀다. 이 시절이 끝나고 나면 다소 의연해지는 때가 올지도 모르겠다. 그때가 되면, 나도 갯벌 앞의 카페에 앉아, 저 갯벌에 아이 손을 잡고 뛰어들던 시절을 무한히 그리워할 것 같다. 셋이서 온 몸에 진흙을 묻혀 가며 깔깔대던 날들이 영원히 사라져서, 그저 내 안에 희미한 영상으로 머물다가 그조차도 완전히 사라질 것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있을 듯하다.

신이 있다면, 신은 우리에게 잠시 온 영혼을 고갈시키듯이 사랑하라고 아이가 있는 한 시절을 주는 것 같다. 한 번 사는 인생, 그렇게 사랑할 시절을 가지라고, 삶의 가장 깊은 정수를 한 모금 마시고 돌아오라고 말이다.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삶이 어려운 것은 그만큼 가치 있기 때문이라고, 가치 있는 모든 것은 어렵다고 말이다. 삶의 어려움이 아이와 살아가는 삶의 가치를 훼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정지우 문화평론가·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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