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동정담] 韓日 브로맨스
유럽 근대사에서 독일과 프랑스는 서로를 '주적(主敵)'으로 삼아온 앙숙이었다. 양국 관계 개선에는 1970년대 7년간 임기를 공유했던 두 정상이 있다. 헬무트 슈미트 독일 총리와 발레리 지스카르데스탱 프랑스 대통령이다.
동서 데탕트 무드를 잘 유지하면서 1990년 독일 통일, 1991년 소련 붕괴로 향하는 길을 닦았다. 주요 7개국(G7) 협의체도 두 사람의 아이디어로 시작했다. 이들의 '브로맨스'는 현대 정치사에서 가장 돋보인다. 지스카르데스탱의 부인은 홀로코스트로 아버지를 잃었지만 우정에 장애물이 되진 못했다. 훗날에야 알려졌지만 슈미트에게 유대인의 피가 흘렀기 때문일까. 지성과 철학을 두루 갖춘 두 사람은 퇴임 후에도 30년간 서로의 집을 오가며 진한 우정을 이어갔다.
동북아의 앙숙인 한국과 일본에도 브로맨스는 존재했다. 김종필(JP)과 나카소네 야스히로, 김대중(DJ)과 오부치 게이조가 그랬다. 좀 덜 알려졌지만 아주 감동적인 사례도 있다.
한일 국교가 정상화된 뒤 2대 주한일본대사였던 가나야마 마사히데(金山政英)와 한일관계 연구의 대가 최서면이다. 가나야마 대사는 박정희 대통령의 부탁을 받고 사토 에이사쿠 당시 일본 총리와 이나야마 요시히로 신일본제철 회장을 설득해 포항제철소 지원을 끌어낸 일등 공신이다. 은퇴 후 최 선생과 깊은 우정을 쌓았고 별세한 뒤 파주 천주교 하늘묘원에 묻혔다. 3년 후에는 최 선생도 가나야마 대사 옆에 안장됐다. 천주교 세례명마저 아우구스티노로 똑같았던 두 사람은 죽어서도 한일 친선을 상징하고 있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7~8일 답방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국내의 반대 여론을 뚫고 먼저 손을 내민 데 대한 화답이다. 정치인 가문 출신의 기시다 총리와 검사 출신의 윤 대통령은 인생 행로만큼이나 스타일도 다르다. 호방한 성격의 윤 대통령과 달리 평소 신중한 기시다 총리지만 화끈한 면모도 있다. 전후 세대인 두 사람이 새로운 브로맨스를 만들면서 역사의 응어리도 풀어가길 바란다.
[신헌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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