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아스트로의 멤버 문빈의 안타까운 죽음으로 본 K팝 산업의 현실[이진송의 아니 근데]

기자 2023. 5. 5.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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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덤을 먹고 사는 아이돌…무한 경쟁 속 ‘친밀성 노동자’의 아픔

얼마 전 그룹 아스트로의 멤버 문빈이 세상을 떠났다. 어린 시절부터 연예계 활동을 했던 문빈은 꼭 아스트로 팬이 아니더라도 아이돌을 좋아한다면 누구나 아는 ‘레전드 직캠’ 시리즈가 있을 만큼 돋보이는 가수였다.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으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던 사람에게 닥친 죽음은 처음이 아니다. 그래서 추모와 애도는 연쇄 고리를 만들며 같은 직업군에 있는 다른 아이돌들에 대한 우려와 걱정으로 확장되기도 했다.

고 문빈

문빈의 사인은 확언할 수 없다. 다만 그가 생전에 라이브를 하던 중, 많이 힘들었다는 고백 끝에 “내가 선택한 직업이니” 자신이 행복해져서 팬들도 행복하게 해줘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는 장면에서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한다. ‘친밀성 노동자’이자, 힘들다거나 불행하다고 말할 자유가 없는 직업에 대하여.

(정서적) 친밀성은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느낌을 공유하는 가까움을 타인에게 느끼는 것, 이해나 지지, 돌봄에 대한 기대가 따른다는 것이다. 린다 맥도웰은 <노동하는 몸들>에서 ‘체현 노동(embodied work)’ 개념을 도입하는데, 이는 서비스 노동이 인종, 성별, 나이 등에 따라 다양한 몸을 구현할 것을 요구하는 동시에 서비스 노동 전반에서 몸과 육체적 감정이 중요하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맥도웰은 육체적, 정서적 접촉이 이뤄지는 체현 노동의 특징으로서 ‘하이-터치 서비스(high-touch service)’ 개념을 제시하기도 했다. 아이돌은 팬사인회 현장이나 공연장에서 팬들과 손깍지, 하이파이브 등 신체적 접촉을 하고 정서적 욕망을 충족시켜준다는 점에서 친밀성 노동이자 체현 노동을 수행한다고 볼 수 있다.

순전히 아이돌 팬들이 사리분별 못하고 ‘과몰입’을 해서만이 아니다
K팝 산업과 기획사가 팬의 과몰입과 아이돌의 과로를 적극 조장하는 구조적 문제가 있다
돈을 쓰도록 유도하면서 이로 인해 치솟은 친밀성의 기대는 오로지 아이돌 개인이 짊어져야 한다

아이돌의 친밀성이라고 하면 가장 인지도 높은 센터(!)로서 연애 감정이 꼽힌다. ‘낭만적 사랑’의 대상으로 아이돌을 누리는 것이다. 또 다른 감정 중 하나는 가족애 혹은 동료애다. 경쟁이 치열한 가요계에서 함께 단합하여 성장하고, 기쁜 일과 슬픈 일을 함께하며 정서적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이다. 팬이 자신을 ‘엄마’라고 지칭하거나, 아이돌을 ‘내 새끼’라고 하는 호칭은 이런 관계를 가족이라는 익숙한 역할 놀이에 반영한 결과이다. 여기에 데뷔 서바이벌이 난립하면서, 어원부터 ‘우상’이었던 아이돌은 내가 책임지고 ‘살려야 하는’ 존재로 위상이 변경되었다. 구름 위의 존재가 이제 팬들의 등으로 내려와 ‘어부바’를 하는 형상이랄까? 그 외에도 무수한 갈래의 감정이 있겠지만, 핵심은 아이돌과 팬덤의 관계를 떠받치는 가장 중요한 기둥이 ‘친밀성’이라는 사실이다. 그냥 본업(춤과 노래)만 잘해서는 안 된다. 소통을 적극적으로 하며 친밀하게 다가오고, 팬들의 사랑과 인정을 기꺼워해야 하고, 또 거기에 기대되는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켜야 한다.

최근 3년 사이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사태가 다양한 온라인 서비스를 활성화했다. 대표적인 상품이 바로 온라인 콘서트, 영상통화 팬사인회, 그리고 아이돌로부터 직접 메시지를 받아볼 수 있는 ‘메시지 구독 서비스’이다. 메시지 구독 서비스는 아이돌과 1 대 1로 대화하는 듯한 느낌을 주며, 영상통화 팬사인회, 통칭 ‘영통팬싸’ 역시 팬이 사적인 공간에서 영상통화를 받는다는 점에서 기존 팬사인회의 장점과 비견되는 친밀성을 형성한다. 고가의 장비 없이도 영상통화를 녹화하고 소장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그런데 팬의 처지에서는 경쟁을 뚫기 위해 고액을 지불한 상태라 많은 것을 기대하게 된다. 이 ‘많은 것’은 높은 친밀성의 기대와 충족이다. 그러다 보니 영상통화에서 아이돌의 태도가 만족스럽지 않을 경우 영상의 일부를 잘라서 올리며 소비자로서의 피해 사실을 호소하거나, 팬으로서 서운함을 표출한다. 메시지 구독 서비스의 경우 “내가 돈을 냈는데도” 특정 아이돌이 며칠 동안 오지 않는다며 날짜를 세는 계정이 생기기도 하고, 아이돌끼리 소통의 양을 비교하여 ‘줄 세우기’도 한다.

걸그룹 아이브가 웹 콘텐츠 <아이돌 인간극장>에서 멤버들이 역할을 바꿔가며 팬사인회 연습하는 상황극을 선보였다. 이 장면은 매니저 역할을 맡은 유진이 아티스트(원영)와 손을 맞잡는 팬(가을)의 행동을 제지하는 상황이다. 유튜브 KBS Kpop 캡처

문제는, 친밀성 노동이 파편화·일상화되어 있어 노동으로 잘 인지되지 않고, 새로운 형태의 비물질 노동이다 보니 피로도나 스트레스 등이 장기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와 같은 데이터도 없다는 사실이다. 친밀성을 수행하는 데에는 순발력과 기억력, 적절한 리액션 같은 요소가 필요하다. 얼마 전 걸그룹 아이브는 웹 콘텐츠 <아이돌 인간극장>에서 경험에서 우러나온 팬사인회 상황극을 선보였다. 유진은 팬 역할을 맡은 원영 앞에서 ‘자신이 몇 번째 왔는지’, ‘이름이 뭔지’, ‘스펠링은 뭔지’, ‘우리끼리는 어떻게 표시하기로 했는지’ 같은 긴장감 넘치는 테스트에 놓인다. 아슬아슬 통과할 때마다 팬의 얼굴은 정색과 미소 사이를 오가고, “위기 탈출”이라는 해설이 웃기면서도 등골 서늘하다. 여기서 ‘삐끗’하면 커뮤니티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진출해 ‘까일’ 수 있다. 현실에서, 몇 번 본 사이라도 기억 못할 수도 있고 상대의 이름을 틀리는 경우는 흔하다. 상대가 원하는 반응이나 대답을 하지 못하는 일은 또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이 직업 특성상 실수가 용납이 안 된다. 어느 분야에서나 신입은 1년은 버리는 인력이라 보고 좌충우돌하며 배우지만, 아이돌은 연습생이나 신인이라도 친밀성 수행에서 삐끗하면 커뮤니티나 SNS에 진출하여 ‘까인다’. 그야말로 외줄 타기 혹은 폭탄 해체와 같은 작업이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소셜 딜레마>에는 인간은 한꺼번에 많은 사람의 평가를 받도록 진화하지 않았다는 대사가 나온다. 불특정 다수의 폭발적인 피드백이 어떤 취약함을 자극하고 어떤 위험을 초래하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그저 인기가 많으면, 널리 알려지면, 사랑받고 팬이 많으면 좋겠거니 생각하며 그러려면 더 열심히 하라고 채찍질할 뿐이다. 아이돌이 힘들다고 하면 쿠팡 뛰어보라는 여론이 형성되는 것 또한 메시지를 보내고 사인회에 앉아 있는 것이 육체노동보다 쉬워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번에 수천, 수만 개의 메시지를 받고, 또 수만 명이 거슬려 하지 않을 내용을 자주 보내야 하는 작업이 반드시 다른 노동보다 쉽다고 단언할 수도 없다. 모르는 사람과 스몰토크를 하는 것이 힘든 성향이 있듯이, 다들 성격이나 성향도 가지각색일 테니까. 퇴근하고 나서 회사로부터 카톡을 받고 싶은 직장인은 아무도 없지만, 아이돌이 일정 없는 며칠 동안 메시지를 보내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가 된다. 돈을 냈기 때문에? 하지만 애초에 몇 번이라는 횟수가 정해진 것도 아니고, 만족도가 떨어지면 해지하면 그만이다. 메시지를 보낼 자유가 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아이돌에게 메시지를 보내야만 한다는 압박으로 작용하고, 해지할 자유를 실행하지 않음으로써 소비자의 억울함을 발사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그런데 이것은 순전히 아이돌 팬들이 사리분별 못하고 ‘과몰입’을 해서만이 아니다. 여기에는 K팝 산업과 기획사가 팬의 과몰입과 아이돌의 과로를 적극적으로 조장하는 구조적 문제가 있다. 되도록 많은 돈을 쓰도록 유도하면서 이로 인해 치솟은 친밀성의 기대는 오로지 개인으로서의 아이돌이 짊어져야 한다. 경쟁은 너무 심해졌고, 휴식은 곧 ‘무떡밥’ 시기라 팬들의 이탈을 초래하니 아이돌은 언제나 깨어 있어야 한다. 미세한 요구를 맞춰주어야 한다. 그럼에도 ‘자기가 선택했으면 자기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논리가 개인을 옥죄며 고통조차 은폐한다.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는 신자유주의적 사고방식은 ‘누칼협’(“누가 칼 들고 협박했나요?”)이라는 신조어로 요약된다. 이런 환경에서는 누구도 힘들면 힘들다고 말하거나 구조적 문제를 제기할 수 없다.

이진송|계간 ‘홀로’ 발행인

가수 아이유가 2018년 골든디스크 수상소감에서 고(故) 종현을 애도하며 했던 말은 이런 맥락에서 아주 중요하다. 아이유는 “기쁠 때 웃고 슬플 때 울고 배고프면 힘없고 아프면 능률이 떨어지고, 그런 자연스러운 일들이 좀 자연스럽게 내색 되고, 또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으면” 좋겠다며, 특히나 사람을 위로하는 직업을 가진 아티스트들이 내색하지 않으려다 더 병들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최근 들어 건강상의 이유로 활동을 중단하는 멤버들이 나올 때 팬들의 반응이 달라졌다. 아직은 의학적 판단이라는 방패막이 있을 때만 가능하지만,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이야기하기를 멈추지 않아야 한다. ‘나’와 아무런 접점이 없는 대상이, 수만 명 중의 하나인 ‘나’의 친밀성 욕구를 완전히 채워줄 수는 없다. 이 당연함의 감각을, K팝 산업은 마비시켰다. 그 불완전함을 되찾아오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결국 K팝 산업을 바꿀 가능성도 팬덤에게 있기에. 자신이 선택했다는 이유만으로 거기에 뒤따르는 모든 위험과 고통을 감당하라고 말하는 사회는 잘못되었다. 많은 사랑을 받는다고 해서 많은 고통을 감당해낼 의무는 없다고 소리 높여 말해야 한다.

반짝반짝 빛났던 고인의 명복을 빈다.

이진송|계간 ‘홀로’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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