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설마’는 금물… “괜찮아요?” 한마디가 사람을 살립니다
’살리는 남자’ 정택수
“마음이 답답해요. 견딜 수가 없어요. 저 정말 죽고 싶어요.”
지난달 5일 밤, 정택수(58) 한국자살예방센터장에게 걸려온 다급한 전화. 앳된 목소리였다. 중학교 1학년이라는 익명의 소녀는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냈다. “온라인 채팅으로 만난 대학생과 사귀었는데, 갑자기 이별 통보를 받았다. 성관계까지 했는데, 더는 살고 싶지 않다….” 정 센터장은 차분히 대화를 이어나갔다. “지금 너무 힘들겠어요. 오빠가 왜 헤어지자고 한 것 같아요?” 소녀는 울면서 속내를 털어놨다. 1시간 통화 끝에 “이제 좀 편해졌다”는 말이 나왔다. 정 센터장은 “또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연락하라”고 한 뒤, 전화를 끊었다.
정택수 센터장은 이런 통화를 매일 한다.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의 마음을 돌리는 게 그의 일이다. 전문 상담가가 된 지 올해로 13년째, 지금껏 상담한 사람이 1만5000명이 넘는다고 했다.
2021년 우리나라에선 1만3352명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하루 평균 36.6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뜻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자살률 1위라는 오명을 쓴 지는 이미 오래. 거의 매일 자살 관련 뉴스가 나온다. 최근에는 우울증을 앓던 한 10대 여학생이 건물에서 투신하며 소셜미디어(SNS) 라이브 방송으로 그 현장을 중계해 충격을 줬다.
자살이 너무 흔해져버린 요즘, ‘살리는 남자‘가 궁금했다. 수더분한 인상의 정택수 센터장은 시종일관 나긋나긋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사는 게 고통스러우면, 자살을 선택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단호했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는 가장 불행한 죽음이에요. 살인과도 같습니다. 절대 해서는 안 됩니다.”
◇자살은 가장 중요한 사람을 죽이는 살인
-자살 상담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나.
“하루에 적게는 두 명, 많게는 여덟 명 정도다. (한국자살예방센터) 홈페이지로 사연을 보내는 분도 있고, 전화를 하는 분도 있다. 학교나 군부대 등 기관과 연계돼 나를 찾는 사람들도 있고. 상담은 한 번에 1시간가량 한다. 직접 만나길 원하면 대면 상담도 한다. 위급한 경우엔 경찰에 도움을 요청한다.”
-모든 상담을 무료로 한다고?
“내 앞으로 나오는 군인 연금, 교육과 강연 수입 등으로 센터를 운영한다. 자살하려는 사람들에게 돈을 내라고 하면 누가 상담을 받겠나. 사람을 살리는 일이 돈보다 더 값지다고 생각한다. 상담을 진행하다 보면 사람이 바뀌는 걸 느낀다. 자해를 하고 바다에 뛰어들려 했던 여고생은 상담을 하면서 봉사활동을 하고 십자수를 하게 됐다. 지금 그 여고생은 제빵사가 돼 평범하게 사회 생활을 하고 있다.”
-상담은 어떤 식으로 이뤄지나.
“(내담자의) 첫마디는 보통 ‘죽고 싶다’ ‘이젠 끝내고 싶다’다. ‘많이 힘드시군요. 얼마나 힘드셨으면 죽음을 생각하실까요?’라고 부드럽게 묻는다. 내담자의 고통을 인정하고, 공감해주는 게 대부분이다. 상담은 팽팽한 고무풍선에 작은 바늘구멍을 내 바람을 빼주는 일과 같다. 힘든 사연을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고통이 많이 줄어든다. 신원은 절대 묻지 않는다.”
-별명이 ‘살리는 남자’라던데.
“하하. 상담받은 분들이 감사 편지를 종종 보내오는데, 내 덕분에 살았다며 ‘살리는 남자’라고 하더라. ‘울리는 남자’란 별명도 있다. 대부분의 내담자가 상담할 때 운다. 상담 과정에서 흘리는 눈물은 치유의 눈물이다. 가슴속 응어리가 눈물로 배출된다.”
-우리나라가 유독 자살률이 높은 이유는 뭔가.
“심각한 양극화가 큰 문제고, 다혈질적인 사람이 많은 것도 이유다. 하나부터 열까지 남과 비교하는 문화, 소소한 행복을 등한시하는 문화도 문제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어떤 이유로 자살하려고 하나.
“가장 많은 게 먹고사는 문제다. 경제적 능력이 ‘마음의 근육’인 자존감으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신용회복위원회 같은 기관으로 연결해주기도 하고, 내 지갑에 있는 몇 만원을 쥐여주기도 한다. ‘내가 부자였다면 이 사람을 더 많이 도울 텐데’란 생각도 한다. 청소년들은 공부 스트레스와 왕따 등 인간관계 문제가 많다.”
-10~20대 자살 문제가 심각하다.
“정말 큰일이다. 나라의 미래가 완전히 꺾여가고 있다. 어린 친구들에게 꿈과 희망이 없는 게 근본 원인이다. 가정 형편이 넉넉하고, 공부 잘하고, 인간관계도 좋은 아이들은 인생이라는 마라톤에서 쭉 달려나가는 반면, 여러 이유로 조금 뒤처진 아이들은 아예 레이스를 포기해 버리는 거다. 답답한 심정을 털어놓을 곳이 없으니 ‘우울증 갤러리’ 같은 인터넷 커뮤니티에 접속해서 동병상련의 정을 나누는데, 위로만 받으면 좋겠지만 자살충동이 강화되는 결과를 낳는다. 범죄의 표적이 될 수도 있고.”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가정에서는 아이를 칭찬하며 인정욕구를 충족시켜줘야 하고, 학교는 자존감 향상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도입해야 한다. 자살을 고민하는 친구들이 정신과 의사, 상담가 등 전문가들을 쉽게 만날 수 있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지금도 학교에 위클래스(상담교실) 같은 공식 채널이 있긴 하지만, 비밀 보장이 안 된다는 우려 때문에 아이들이 꺼린다. 비밀을 완벽하게 보장하는 상담 창구를 만들어야 한다. ‘우울증 갤러리’를 양성화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아이들이 쉽게 찾을 수 있는 사이버 공간에서 전문가들을 활동하게 하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개인의 선택이라며 자살을 정당화하는데.
“동의할 수 없다. 자살은 관련된 모든 사람에게 씻을 수 없는 충격과 상처를 남기는데, 어떻게 나쁜 일이 아니라고 할 수 있나. 다만, 의학적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은 분들이 극심한 육체적 고통에 시달리다 죽음만이라도 편안하게 맞고 싶다는 바람에 대해서는 나도 잘 판단이 안 선다. 그렇지만 정신적 고통, 마음의 상처로 자살을 고민하는 분들은 적절한 상담만 받으면 반드시 나아질 수 있다. 경제적 문제도 마찬가지다. 사회에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자살하려는 사람은 신호를 보낸다
정 센터장은 직업군인이었다. 2008년 어느 여름날이 그의 인생을 바꿨다. “부대 정문에서 한 어머니가 통곡을 하며 실신하는 장면을 봤어요. 뜨거운 아스팔트 바닥에서 발버둥치며 ‘○○아, 엄마 왔다’ ‘내 아들 살려내라’ 외치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해요.” 그 당시 육군에서 자살로 사망하는 장병이 1년에 70명 정도 됐다. “군 간부로서 미안한 마음이 컸어요. 자살하는 장병이 대개 이병, 일병, 초급 간부거든요. 그때부터 자살 예방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24년간의 군 생활을 마무리하고 2011년 전역했다. 전문 상담사가 된 뒤 다시 군으로 돌아왔다. 국방부 병영생활전문상담관으로 1년간 일했다.
-잊지 못하는 장병이 있나.
“내가 끝내 살리지 못한 장병, 스물한 살 G일병이다. 어릴 때 부모님이 이혼하고 혼자 외롭게 큰 G일병은 비관적인 청년이었다. 학창 시절 친구와 어울리지 못했고, 군에서도 적응을 못 했다. 상담할 때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죽을 수 있다’면서 흉기를 꺼내 보여주기도 했다. G일병과 거의 매일 상담했다. 많이 좋아졌다고 느꼈는데, 어느날 안 좋은 일이 터졌다. G일병이 속한 부대가 철책선 GOP 근무를 해야 했는데, 지휘관이 G일병이 자살고위험군이란 이유로 그를 데려가지 않고 타 부대로 전출시켜 버린 것이다. 당시에 그 지휘관에게 ‘G일병도 같이 철책선에 가고 싶어한다. 전문가 의견이니 꼭 데리고 가달라’고 했는데도…. G일병은 결국 자살했다. 너무 원망스러웠다. 나한테 전화 한 통만 걸지, 그랬다면 내가 도와줬을 텐데…. 그림 솜씨가 좋은 청년이었다. ‘너의 고통을 그림으로 승화시키면, 우리나라 최고 화가가 될 수 있다’고 희망을 줬는데…. 다 살려놓은 아이를 놓친 것 같아, 지금도 가슴이 아프다.”
-자살하려는 사람들이 보이는 징후가 있나.
“자살자의 93%가 사전 징후를 보였고, 81%의 가족과 지인은 몰랐다는 보고가 있다. ‘죽고 싶다’ ‘쉬고 싶다’ ‘멀리 떠나고 싶다’ ‘그동안 고마웠다’ 같은 언어적 징후, 잠을 자지 못하거나 하지 않던 지각·결석을 하는 등의 행동적 징후가 있다. 이혼이나 파산, 질병 등 최근 발생한 안 좋은 사건에 이런 신호들이 더해지면 자살 기도를 의심해봐야 한다.”
-신호를 포착하면 주변에서 어떻게 해야 하나.
“조금이라도 이상한 예감이 들거나, ‘설마’ ‘뭔가 있다’란 생각이 들면 반드시 직접적으로 물어봐야 한다. ‘혹시 자살을 생각하고 있니?’ ‘최근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니?’라고. 이 질문이 너무나 중요하다. 자살을 생각한 사람에게 이 질문 하나가 치유의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 센터장은 “자살은 순간”이라고 했다. 순간의 결정으로 살 수도,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자살하는 사람이 우리 가족이 될 수도, 친구가 될 수도 있어요. 조금의 관심, 전화 한 통, ‘괜찮아요?’란 말 한마디가 비극을 막을 수 있습니다.”
◇자살은 절대 답이 될 수 없다
정 센터장은 ‘흙수저’ 출신이다. 8남매 중 일곱째인 그는 태어나지 못할 뻔했다. “집은 가난한데 식구는 많으니, 어머니가 나를 낳고 싶어하지 않았어요. 임신중절도 고민하고, 유산시키려 몸을 혹사시키기도 하셨대요. 하지만 생명은 끈질겨요. 나는 결국 태어났고, 지금은 다른 이들을 살리는 일을 하고 있네요.”
-유년 시절은 어땠나.
“다섯 살 때부터 아버지를 도와 농사일을 했을 정도로 가난했다. 키도 작고 몸도 약해 친구들한테 놀림도 많이 받았고…. 그런데 우리 어머니는 ‘택수야, 너는 꼭 성공할 거야’ ‘너는 꼭 출세할 거야’란 말을 늘 하셨다. 그 말이 내 자존감의 원천이 된 것 같다. 공업고등학교를 나왔는데, 공부를 하고 싶어서 스무 살에 무작정 상경했다. 신문 배달, 과일 장사를 하며 야간대학을 다녔고, 안정적인 직장을 찾아 군에 입대했다.”
-혹시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나.
“한 번도 없다. 힘들다고 해서 모두가 자살을 생각하진 않는다. 어려움을 버텨낸 경험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가 크다고 생각한다.”
-날마다 죽겠다는 사람들과 대화하는 게 괴롭지는 않나.
“힘들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그래도 보람이 굉장히 크다. 스트레스는 매일 저녁 운동으로 푼다.”
-자살 예방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어떻게 평가하나.
“정부가 심각함을 제대로 인지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하루에 36명이 죽어나가는데…. 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원회가 자살위기극복특위를 출범시킨 것은 늦었지만 잘한 일이다. 국민 생명이 모든 정책의 최우선순위가 돼야 한다. 자살예방 예산을 증액해 현장 중심으로 뿌리는 것도 필요하다.”
-언론의 잘못은 없을까.
“과거 자살 수법 등을 일일이 보도하던 시절에 비하면 많이 개선됐다. ‘극단적 선택’이란 표현은 지양했으면 좋겠다. 자살이 선택으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냥 자살이라고 하는 게 낫다.”
-우울증을 예방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솔직해져야 한다. 괜찮은 척, 안 아픈 척, 행복한 척하지 말라. 남 눈치를 보지 말고, 마음가짐을 ‘타인 중심’에서 ‘나 중심’으로 가져와야 한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두고, 오늘 쌓인 스트레스는 오늘 풀자. 햇빛 보고 운동하는 것을 추천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자살로 잃은 이들에게 조언한다면.
“울고 싶으면 마음껏 울어라. 그의 자살은 당신 잘못이 아니다.”
지금 자살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고 묻자, 정 센터장은 한참을 고민했다. “죽고 싶은 이유를 나와 분리시켜서, 객관화시켜서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주변에 자신의 상황을 알리고 SOS를 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말도 하고 싶고요. 무엇보다 지금 풀지 못하는 그 답답한 문제의 답이 결코 자살은 아니라는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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