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 그들이 돌아온다
살기위해 달리는 빈 디젤
텐트폴(tentpole)은 텐트를 받쳐주는 지지대를 뜻하지만, 영화계에서 '텐트폴 무비'는 한 해 농사 결과를 결정짓는 대작 영화를 의미한다. 특급 흥행 감독에 초호화 캐스팅, 탄탄한 자본력까지 갖춘 텐트폴 영화의 대박과 쪽박에 투자사, 제작사, 배급사 등 영화 산업의 명운이 달려 있다.
"1만5000원을 주고 볼 영화가 없다" "기다렸다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로 보면 된다"는 비판과 조소가 요즘 극장가 주변을 배회하지만, 올여름부턴 얘기가 좀 달라진다. 극장용 영화가 2~3주 간격으로 줄줄이 개봉하기 때문이다. 한국과 해외 텐트폴 영화가 개봉 일자를 속속 공개하기 시작하면서 극장가가 꿈틀댈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 애니메이션에 연거푸 자리를 내주며 그야말로 빈사 상태에 빠졌던 한국 영화가 올여름엔 소생에 성공할까. 국내외 텐트폴 영화를 한자리에 모았다.
올여름 극장가에 나오는 한국 텐트폴 영화 중 첫 번째 주자는 이달 31일 개봉하는 '범죄도시3'다. 베트남 납치 살해범 강해상을 검거한 마석도 형사가 이번에는 인천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로 발령받는다. 3편에서 마 형사의 '불싸다귀'를 때려 맞을 악역은 일본 야쿠자다. 마약 사건 배후이자 야쿠자 최종 보스 주성철 역에는 배우 이준혁이 나선다. 주성철 역할은 '범죄도시3'의 린치핀이 아닐 수 없다. 1편의 장첸(윤계상)과 2편의 강해상(손석구)이 선보인 지독하고 악랄한 연기는 영화 전체를 움켜쥐었고 지금도 회자된다. 이준혁 배우가 얼마나 잔혹한 악역을 담당하는지에 이 영화의 성패가 갈릴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갑질 의혹'을 말끔히 벗은 배우 이범수는 마 형사의 상사인 광수대 반장 역을 맡았다.
'베를린' '베테랑' '모가디슈'를 연출한 충무로 전설 류승완 감독의 영화 '밀수'는 7월 26일 개봉을 확정했다. 이름만 들어도 가슴 설레는 감독에 주연 배우들 조합까지 상상을 뛰어넘는다. '김혜수+염정아+조인성+박정민'. 바다에 던져진 밀수품을 건지며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 앞에 일생일대 '큰 판'이 벌어지는 활극을 그린 케이퍼 무비로 알려졌다. '밀수' 예고편을 보면 밀봉된 박스 수십 개가 바다 밑바닥에 떨어져 있다. 김혜수와 염정아가 각각 해녀 조춘자와 엄진숙으로 등장하고, 조인성은 전국구 밀수왕 권필삼, 박정민은 해녀를 돕는 청년으로 나온다.
이병헌, 박서준, 박보영 주연의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아직 공식 발표하지는 않았지만 여름에 개봉할 것으로 전해진다. 여름에 개봉하면 '밀수'와 함께 '쌍톱'으로 여름 극장가를 평정할 것으로 보인다. 대지진으로 서울이 폐허가 되고 유일하게 무너지지 않은 황궁아파트로 생존자들이 몰려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이병헌은 황궁아파트를 이끄는 임시 주민대표 영탁, 박서준은 공무원 출신의 조력자 민성, 박보영은 간호사 출신이자 민성의 아내 명화 역을 맡았다.
개봉 일자를 확정 짓지 못했지만, 팬들이 서둘러 개봉해주길 기도하는 한국 영화도 창고에 쌓여 있다. 황정민, 정우성, 이성민, 박해준, 김성균 주연의 '서울의 봄'도 최대 기대작이다. 1979년 한국 사회가 몸으로 경험한 바로 그 '서울의 봄'을 그렸다. 국방안보사령관 전두광(황정민)이 군사 반란을 일으키자 수도방위사령관 이태신(정우성)이 맞선다.
배우 정우성은 그사이 영화를 한 편 더 남겼다. 영화 '보호자'다. 연출·주연을 동시에 맡아 호평받았던 이정재의 '헌트'처럼 '보호자'는 정우성이 연출한 첫 번째 장편 영화로 그의 감독 데뷔작이다. 김남길, 김준한, 박성웅 배우가 함께한다. 보스를 대신해 징역 10년을 선고받은 수혁이 출소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수혁의 딸이 킬러에게 인질로 잡히고, 수혁은 복수를 결심한다.
'거룩한 밤: 데몬 헌터스'는 마동석, 서현, 이다윗, 경수진, 정지소가 출연하는 오컬트 영화(악령과 사후 세계를 다룬 영화)다. 코믹과 액션 연기에 능한 마동석이 오컬티즘과 만나 어떤 색채를 만들어낼지 궁금해진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악마의 숭배자'를 해결사 바우(마동석)가 맨주먹으로 때려잡는다. 조진웅의 마약 연기와 소름 끼치는 반전이 돋보였던 영화 '독전'도 2편 개봉을 앞뒀다. 조진웅, 차승원 투톱 라인업에 배우 한효주가 가세한다. 단 '독전2'는 극장 개봉작은 아니며 넷플릭스에서 공개된다.
한국 대작 영화들은 올여름 극장가로 해일처럼 들이닥칠 해외 텐트폴 영화의 파고를 넘어야 한다.
'분노의 질주: 라이드 오어 다이'는 해외 텐트폴 영화의 첫 주자다. 2001년 시작된 '분노의 질주' 시리즈의 10번째 작품으로 대미를 장식할 트릴로지의 두 번째 편이다. 부제가 말하듯 "달리느냐, 죽느냐"를 구현했다. 주인공은 역시 도미닉(빈 디젤)으로, 도미닉의 패밀리 앞에 적 단테가 나타나고 마지막 질주를 벌인다.
5월 '분노의 질주'에 이어 6월엔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이 개봉한다. 시리즈의 5번째 작품이자 마지막 작품이다. 1942년생으로 올해 81세인 해리슨 포드가 직접 출연하는데, 예고편만 봐도 가슴이 웅장해진다. 정년 퇴임을 앞둔 고고학자 존스에게 대녀 헬레나가 찾아와 "운명을 바꿀 다이얼을 찾으셨다고 들었다"고 말한다. 다이얼(dial)은 전화기의 숫자 회전 장치를 주로 뜻하지만, 예고편을 보면 일종의 회전 장치로 시공간을 뒤틀 수 있는 위력을 지닌 손바닥만 한 가상 기계로 이해된다. 전설적 모험가 존스는 1960년대로 돌아가 말한다. "이걸로 다 바로잡을 수 있어." 디에이징 기술로 젊어진 해리슨 포드의 여정은 세대를 불문하고 공감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7월 14일엔 톰 크루즈 주연의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파트1'이 개봉한다. 작년 '탑건: 매버릭' 방한 때 약속한 대로 톰 크루즈는 '미션 임파서블' 7편인 이 영화 홍보를 위해 한국을 찾을 가능성이 높다. 데드 레코닝(dead reckoning)은 항해 용어 중 '추측 항법'을 뜻한다고 한다. 다른 시스템에 의존하지 않고 최근 기록된 자신의 위치를 기준점으로 삼은 뒤 경로와 속도로 현재 자신의 위치를 추정하는 방식이다. 톰 크루즈의 영원한 배역 이단 헌트는 IMF(Impossible Missions Force) 소속인데, 이번 예고편을 보면 IMF 자체가 선악이 모호한 악역으로 나올 가능성이 유력하다. 예고편을 보면 톰 크루즈가 오토바이를 타고 절벽 아래로 질주하는 장면이 충격적이다. '제발 톰 크루즈의 자연사를 바란다'(위험한 액션 장면을 너무 찍어서 사고사하지 않길 바라는 톰 크루즈 팬들의 표현)는 팬심이 증폭될 만한 장면이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오펜하이머'도 7월 21일 개봉한다. 세계 최고 수준의 티켓 파워를 지닌 명장이 또 한 번 걸작을 내놓는다. 놀런 감독은 '인셉션'(공간), '테넷'(시간), '다크나이트'(선악)로 이미 전설이다. 이번 '오펜하이머'에는 거대한 우주를 다룬 '인터스텔라'의 대척점에서 작은 원자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핵무기 개발을 위해 진행된 비밀 프로젝트 '맨해튼 프로젝트'를 주도한 미국 핵물리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에 관한 영화다. 극단적으로 사실적인 장면을 추구하다 보니 컴퓨터그래픽(CG)을 지양하는 놀런 감독의 집요한 성격 때문에 "놀런 감독이 설마 진짜로 핵무기를 터뜨린 건 아니겠지?"라는 우스갯소리가 돌기도 했다. '다크나이트'에서 정신병원장 스케어크로를 맡았던 킬리언 머피가 주연 오펜하이머 역할이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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