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 막은 불통 정부의 ‘검수원복’ 한 길[뒤로 간 1년-시행령 통치]
헌재 “법률 유효” 결정에 아랑곳 안 해
출범 1년을 맞은 윤석열 정부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시행령 통치’다. 시행령(대통령령)은 법률의 하위법령이다. 법률이 구체적으로 범위를 정해 위임한 사항이나, 법률 집행을 위해 필요한 사항을 규정한다. 시행령은 국회의 입법 절차를 밟지 않아도 된다. 이런 행정입법을 통한 국정운영은 국회의 여소야대 구조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부가 야당과 소통·협의를 회피하고 국회를 우회하는 수단으로 시행령을 이용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나아가 시행령의 내용이 법률 조문의 취지와 동떨어진다는 평가까지 받으면서 논란은 증폭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른바 ‘검수원복(검찰수사권 복원)’ 시행령이다. 법무부는 시행령 개정을 통해 검찰이 직접 수사할 수 있는 범위를 대폭 늘렸다. 검찰이 활발히 수사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 그러나 해당 시행령이 법률인 ‘검찰수사권 축소법’(검찰청법 등)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 “정부가 검수원복 등 시행령 통치를 통해 법치주의를 파괴한다”(장유식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사법센터소장)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헌법재판소가 지난 3월 검찰수사권 축소법이 유효하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논란이 정리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법무부가 시행령 유지 입장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원이 형사재판 과정에서 시행령의 위헌·위법 여부를 판단할 수도 있으나, 법원 판단의 효력은 해당 사건에만 미친다. 형사사법체계 전반을 논의하는 국회 특별위원회가 구성돼 있지만 제대로 가동될지를 두고선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검찰이 여러 대형 수사를 벌이고 있는 상황과 맞물려 앞으로도 논란과 혼선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시행령 개정으로 수사 범위 확대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검찰개혁’을 추진하면서 검찰의 직접 수사 범위를 축소하는 내용의 입법을 두 차례 진행했다. 첫 번째는 2020년 1월 검찰청법과 형사소송법 개정이다. 이를 ‘검경수사권 조정’이라 부르기도 한다. 검찰청법에 아예 검찰이 수사를 개시할 수 있는 범죄를 6개로 못 박았다. 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 등이다. 기존에는 제한이 없었다. 항목별로 구체적인 범죄유형은 시행령을 제정해 규정했다. 이 시행령이 현재 논란의 중심에 있는 ‘검사의 수사개시 범죄 범위에 관한 규정’이다. 2021년 1월부터 시행됐다.
두 번째 입법은 2022년 4~5월에 완료됐다. 검찰청법 등을 개정해 검찰의 수사 범위를 더욱 축소해 부패·경제 2개로 국한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 임기 만료 직전에 국무회의를 통과해 공포됐다. 개정 검찰청법 등은 2022년 9월부터 시행될 예정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법무부는 2022년 8월 ‘검사의 수사개시 범죄 범위에 관한 규정’ 개정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개정 검찰청법 시행에 맞춰 시행령도 정비할 필요가 있기는 했다. 문제는 법무부가 내놓은 시행령 개정안이 검찰의 수사 범위를 축소하는 내용이 아니라는 점이다. 부패·경제범죄에 포함되는 범죄유형을 대거 확대했다. 예를 들어 직권남용죄는 앞서 공직자범죄로 분류됐지만, 시행령 개정안은 부패범죄에 넣었다. 기존에 검찰이 수사할 수 없었던 범죄를 추가하기도 했다. 마약유통, 범죄단체조직, 방문판매, 보험사기 등이다. 법무부는 “현행 대통령령은 합리적 기준 없이 과도하게 수사 개시 범위를 제한했기 때문에 합리적으로 정비한 것”이라며 “하나의 범죄가 여러 유형에 해당하는 경우도 있어 기존에는 공직자범죄 등에 포함되더라도 부패·경제범죄에도 해당하는 범죄가 있다”고 밝혔다.
또 무고 등 ‘사법질서 저해범죄’ 등을 ‘중요 범죄’로 별도로 분류해 수사가 가능토록 했다. 이는 법조문 해석에 따른 것이라고 법무부는 밝혔다. 검찰청법 조문을 살펴보면 검사가 수사를 개시할 수 있는 범죄는 ‘부패범죄, 경제범죄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 범죄’라고 나와 있다. 법무부는 ‘부패범죄, 경제범죄’는 예시를 열거한 것뿐이지 이들 범죄로 한정한다는 의미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 범죄’라는 문구는 ‘중요 범죄’의 구체적인 범위를 시행령에 위임하고 있어서 법무부가 자체적으로 ‘중요 범죄’를 설정할 수 있다고 해석했다. 법무부는 “상위법의 위임 범위 내에서 법체계에 맞게 하위법령을 정비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직접 나서 브리핑을 했다.
검찰수사권 축소법을 입안했던 민주당과 시민사회는 즉각 반발했다. 법무부가 법조문의 취지를 무시하고 왜곡했다는 것이다. 민주당에서는 “시행령 쿠데타”, “한동훈의 기고만장한 폭주” 등 날선 발언까지 나왔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 의원 175명은 “위헌·위법하며 입법이 이뤄지더라도 무효”라는 내용 등이 담긴 의견서도 법무부에 제출했다. 이들은 “한 장관의 주장처럼 해석하면 검찰청법이 중요범죄의 범위를 시행령에 ‘백지위임’했다는 뜻인데 헌법재판소는 백지위임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수차례 판시했다”고도 했다. 백지위임은 헌법상 포괄위임금지의 원칙에 위배된다. 법률이 위임하는 사항과 범위를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고 행정부에 포괄적으로 위임하는 것은 금지된다.
시행령 개정안은 그러나 입법예고와 법제처 심사를 거쳐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2022년 9월부터 개정 검찰청법과 함께 시행됐다.
헌재 “검찰청법 등 유효” 결정했지만 시행령 개정에 앞서 법무부는 2022년 6월 헌법재판소에 검찰 수사권 축소법을 두고 권한쟁의심판 등을 청구했다. 해당 법률이 검찰의 수사권한을 침해했기 때문에 위헌이라는 취지다. 청구인에는 한동훈 장관과 현직 검사 6명이 이름을 올렸다. 헌재는 국민의힘이 2022년 4월 제기한 권한쟁의심판 등 사건도 병합해 심리했다.
헌재가 지난 3월 23일 내린 결론은 검찰수사권 축소법은 유효하다는 것이다. 헌재는 우선 국민의힘이 주장한 권한침해를 일부 인용했지만 무효 확인은 기각했다. 국회의 법안 심사 과정에서 ‘위장 탈당’ 등을 통해 국민의힘 측의 심의·표결권이 침해되긴 했지만, 법률을 무효로 볼 순 없다고 판시했다.
법무부와 검사들이 제기한 사건은 아예 각하 결정했다. 각하는 본안 내용을 판단하지 않고 종결 처리하는 처분이다. 헌재는 한동훈 장관은 심판을 청구할 자격조차 없다고 봤다. 또 검사들은 청구 자격이 있지만 권한이 침해당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쟁점은 검찰의 수사권이 ‘법률상 권한’인지, ‘헌법상 권한’인지 여부였다. 법률에 근거해 주어진 권한은 국회의 입법행위에 따른 결과물이기 때문에 국회의 입법행위로 법률상 권한이 침해됐다는 논리는 성립되지 않는다고 했다. 헌법에 근거한 권한이어야 해당 권한의 침해 가능성을 심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어 헌재는 수사와 소추는 행정부에 주어진 헌법상 권한이라고 전제했다. 그러나 수사권이 검찰 등 정부의 특정한 기관에만 전속적으로 부여됐다고 해석할 근거는 헌법에 없다고 판단했다. 검찰의 수사권은 국회가 개별 법률을 통해 부여한 법률상 권한이지 헌법상 권한은 아니라는 얘기다.
헌재는 검사의 영장신청 권한이 헌법에 명시됐기 때문에 수사권도 헌법상 권한이라는 검찰 측의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는 검찰이 지난해 검찰수사권 축소법의 국회 입법 과정에서 줄곧 강조한 내용이기도 하다.
헌법재판과 9명 가운데 5명이 이런 의견을 냈다. 반면 4명은 법무부 장관과 검사의 권한 침해를 인정했다. 그러면서 검찰수사권 축소법은 취소해야 한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이들은 ‘검찰청법상 검사’는 ‘헌법상 검사’에 해당한다며, 검사가 헌법에 따라 영장을 신청하는 것도 ‘헌법상 수사권’ 행사에 해당한다고 봤다.
법원, 시행령 위법 여부 판단 가능성 헌재의 결정이 나오면 검찰수사권 축소법과 시행령을 둘러싼 논란이 어느 정도 수습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대립은 계속됐다. 헌재가 해당 법률이 유효하고 검사의 권한 침해를 배척한 만큼 법무부가 시행령을 법률의 취지에 맞게 재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한동훈 장관은 이를 일축했다. 한 장관은 국회에 출석하거나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헌재 결정을 존중한다”면서도 “문제가 많은 결정”이라고 했다.
시행령 논란을 가라앉히는 위해 법원이 시행령의 위헌·위법 여부를 판단하는 방법도 있다. 시행령에 근거해 검찰의 직접 수사를 받아 기소된 피고인이 재판 과정에서 ‘위법한 시행령에 근거해 수사를 받아 기소됐다’며 공소기각을 주장할 수 있다. 헌법에 따르면 법원은 명령·규칙 등이 헌법이나 법률에 위반되는지를 심사할 수 있다. 다만 사건이 대법원까지 올라가면 길게는 수년이 걸릴 수 있다.
또 법원이 시행령의 위법성을 인정하더라도 해당 시행령 자체가 무효나 취소되는 효력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라는 게 판례다. 해당 재판 사건에 국한해 시행령의 적용을 배제하게 된다. 공소기각 판결은 일사부재리(한번 재판이 확정되면 다시 다루지 않음) 원칙이 적용되지도 않는다. 즉 경찰 등 다른 수사기관이 다시 수사를 진행한 뒤 검찰이 기소해 또 재판이 진행될 수도 있는 것이다. 피고인 입장에선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국회 ‘형사사법체계개혁 특별위원회’를 재가동해 형사사법체계 전반을 손보는 과정에서 시행령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다. 특위 구성은 2022년 4월 국회의 검찰수사권 축소법안 논의 과정에서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합의한 중재안에 포함된 내용이다. 하지만 국민의힘이 중재안에 반대하면서 그해 5월 민주당이 단독으로 통과시켰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그해 7월 위원 구성을 여야 동수로 하고, 안건을 여야 합의를 통해 처리한다는 데 의견이 일치해 출범했다. 한 달 뒤 첫 전체회의에서 여야 간사를 선임했지만 이후 휴업 상태다.
헌재 결정 이후인 지난 4월 4일 민주당 위원들만 참석해 회의를 개최했다. 민주당 소속 정성호 위원장은 “여당에서는 헌재 선고 이후 특위를 개의해 안건을 논의하기로 여러 차례 구두로 약속했지만 합의가 안 됐다”라며 유감을 표했다. 국민의힘이 앞으로도 특위 논의에 참여할지는 미지수다. 국민의힘은 헌재 결정에 반발하는 분위기다. 헌재가 민주당의 ‘위장 탈당’ 등이 위헌·위법이라고 판단한 점을 내세우고 있다.
법무부가 인사검증 담당 2022년 6월 법무부에 신설한 ‘인사정보관리단’도 논란의 대상이 됐다. 과거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맡았던 인사검증의 기능을 담당하는 부서다. 인사정보관리단은 공직 후보자의 범죄, 학력, 금융, 납세 등의 정보를 이용해 1차 검증을 맡게 됐다. 법무부는 이를 추진하면서 법률이 아닌 시행령을 개정했다. 정부조직법상 법무부의 사무에는 공직자의 인사 관련 사안이 없다. 지난 2월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에 정순신 전 검사(변호사)가 임명됐지만, 아들의 학교폭력 논란이 불거져 임명이 취소되자 법무부를 향한 거센 비판이 일기도 했다.
정희완 기자 ros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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