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라 쓰고 ‘관치’라 읽다[뒤로 간 1년-시장개입]
금융지주 관치 논란에 김병준 전경련행 ‘시끌’
윤석열 정부는 시장경제, 민간주도 경제체제를 표방하며 출범했다. 전임 정부의 소득주도성장과 차별화된 ‘친시장 경제’를 조성하겠다고 나섰다. 당시 안철수 인수위원장은 “대한민국이라는 커다란 수레가 있다고 할 때 정부의 역할은 뒤에서 밀어주는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1년 정부는 규제 완화와 세제 개편 등 기업을 밀어주는 정책을 강하게 추진했다. 한편으로는 민간기업인 KT 대표이사 선출에 노골적으로 개입했다. 정부가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을 명분삼아 낙하산 인사를 내려보내 경영에 개입하려 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이석준 NH농협금융지주회장, 임종룡 우리금융회장 선임으로 관치금융 논란에도 휩싸였다. 경제단체인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에 김병준 전 윤석열 대통령 후보 선대위원장이 회장직무대행으로 추대된 것도 우려를 낳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자유’와 ‘시장’을 강조했지만, 한 편에서는 ‘관치’를 노골화하는 이중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KT 경영 공백과 관치금융
현재 KT는 차기 대표이사 후보와 이사진의 잇따른 사퇴로 경영진 공백 사태에 놓여 있다. 배경에는 정부의 외압이 있다. 지난해 12월 KT 이사회는 구현모 대표의 연임을 결정하고 차기 대표이사 최종 후보로 추천하기로 의결했다. 구 대표는 디지털 플랫폼 기업의 비전을 제시하고 꾸준한 매출 상승을 기록하는 등 경영성과를 인정받아왔다. 반면 비자금 조성 및 국회의원 쪼개기 후원 의혹을 받는 등 연임에 대한 비판 여론도 나왔다. 특히 KT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은 소유분산 기업(특정 대주주가 없는 기업이나 금융지주)의 지배구조 문제를 거론하면서 구 대표의 연임을 문제삼았다. 대통령의 메시지도 나왔다. 지난 1월 30일 윤석열 대통령은 금융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주인이 없는, 소유가 분산된 기업들은 공익에 기여했던 기업들인 만큼 정부의 경영 관여가 적절하지 않으나, 공정하고 투명한 거버넌스를 만들 수 있도록 우리 모두 함께 고민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국민연금이 지배구조를 문제삼아 구 대표 연임에 제동을 건 것과 같은 맥락이다.
결국 지난 2월 9일 KT는 대표이사 선출을 공개경쟁 방식으로 전환했다. 다시 진행된 대표이사 공모에 윤진식 전 산업자원부 장관, 권은희·김성태·김종훈 전 의원 등 여권 인사들이 다수 지원했다. 구현모 전 대표가 지원을 철회했고, 2월 28일 이사회는 윤경림 KT그룹 트랜스포메이션부문장 등 4명을 최종 후보자로 압축했다. 윤진식 전 장관 등 여권 인사들이 모두 탈락했다. 정부·여당에서 또다시 비판이 쏟아졌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지난 3월 2일 기자회견을 열어 “구현모 대표는 자신의 ‘아바타’ 윤경림 후보를 세웠다는 소문이 무성한데, 이는 내부 특정인들의 이해관계 속에서 서로 밀어주고 당겨주며 ‘이권 카르텔’을 유지하려는 전형적인 수법”이라고 비판했다. 같은 날 대통령실 관계자는 브리핑에서 KT를 겨냥해 “(공정하고 투명한 거버넌스가 아니라면) 조직 내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가 일어난다. 그 손해는 우리 국민이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잇따른 정치권의 공격에 윤경림 후보와 사외이사들이 사임하면서 초유의 경영 공백 사태가 발생했다.
경제개혁연대는 지난 5월 2일 발표한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KT 거버넌스 개선과제’ 보고서를 통해 “KT 이사회가 와해된 원인은 사실상 정부와 정치권 압력에 기인한 바 크다”라며 “이른바 ‘주인 없는 기업’ KT가 정권 낙하산을 수용하지 않은 대가를 여실히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창민 한양대 교수(경제개혁연대 부소장)는 “정부가 기업의 인사권에 개입한 케이스다. 친시장과는 거리가 멀다. 시장에서 개입을 하지 말아야 할 부분, 정부의 개입에 근거나 정당성이 전혀 없는 부분에 개입을 한 것이다”라며 “정부는 분산소유 구조나 셀프 연임 등을 지적했지만, 논리가 없었고 지배구조 개선 방향이나 어떠한 비전도 제시하지 못했다. 결국 나중에 정치권에서 후보들이 나오지 않았나. 낙하산 인사를 하려는 의도밖에 없었다”라고 말했다.
지난 2월에는 우리금융그룹 회장에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이 선임되면서 관치금융 논란이 불거졌다. 당초 연임에 나섰던 손태승 전 우리금융그룹 회장은 라임펀드 사태로 금융감독 당국으로부터 제재를 받은 바 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 등 금융당국은 손 전 회장이 연임에 나서선 안 된다는 압박을 가해왔다. 관치 논란은 우리금융그룹만의 일이 아니다. 지난해 12월에는 박근혜 정부에서 국무조정실장을 지낸 이석준 전 실장이 NH농협금융지주 차기 회장으로 선임되기도 했다. 관치금융 논란에 윤석열 대통령은 “은행이 공공재의 측면이 있기 때문에 공정하고 투명하게 거버넌스를 구성하는 데 정부가 관심을 보이는 것은 관치의 문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시민사회 및 노동계에서는 당국이 은행지주사 회장 인선에 개입하려는 것은 관료 출신 낙하산 인사를 인선하려는 의도라고 지적했다. 박홍배 금융노조 위원장은 지난 3월 10일 주간경향과의 인터뷰에서 “‘공공재’라는 프레임을 씌워놓고 지배구조 개편과 낙하산 인사 등을 통해 경영에 개입하려 한다”며 “윤 대통령은 취임 이후 줄곧 ‘시장’과 ‘자유’를 강조해왔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주인 있는 기업들에만 자유를 보장하고, 주인 없는 기업들에는 간섭하고 개입하는 이중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권오인 경실련 정책사무국장은 “관치금융 논란의 시발점은 현 정부의 경제 관련 요직에 한덕수 총리, 추경호 장관 등 모피아 출신들이 대거 포진하면서 시작됐다. 또 금융감독원에는 검찰 출신 이복현 원장을 임명하면서 시장에 개입하려는 엄포를 놨다”라며 “시장에까지 인사 개입을 하고 있다. 문제가 있다면 정책이나 제도를 통해 개선하면 된다. 과거의 관치 방식 그대로다”라고 지적했다.
전경련으로 간 김병준 전 선대위원장
금융지주사 회장뿐만이 아니라 경제단체 회장에도 대통령 측근이 선출됐다. 지난 2월 김병준 전 윤석열 후보 캠프 상임선대위원장이 전경련 회장직무대행으로 추대됐다. 대통령과 상당히 가까운 사이로 알려진 그의 전경련행에 ‘정경유착’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김 회장은 전경련 측의 요청이 있어서 회장직을 수락했을 뿐, 대통령과 관계없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김 회장의 취임 이후, 전경련은 대통령 해외 순방 등 굵직한 행사에서 재계의 주도권을 되찾아가는 모양새다. 2016년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태 이후, 삼성·현대차·SK·LG 등 4대 그룹이 전경련을 탈퇴하며 전경련의 위상은 급속히 위축됐다. 문재인 정부에 이어 윤석열 정부 취임 이후에도 정부 공식행사에서 배제되는 분위기였다. 김 회장이 취임하면서 분위기는 반전됐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윤석열 대통령의 첫 해외 순방인 중동 경제사절단은 대한상의가 꾸렸지만, 지난 4월 방미 행사는 전경련이 맡았다. 그보다 앞서 대통령 방일 때는 일본경제단체연합회(게이단렌)와 ‘한·일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 행사도 주관했다. 이 자리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참석했다. 정부가 전경련을 통로로 재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재계는 “명분 없는 재가입은 없다”고 선을 긋고 있지만, 정부가 전경련 재가입을 압박하지 않겠느냐는 얘기가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상태다.
정경유착이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권오인 국장은 “전경련은 늘 ‘정경유착’의 중심에 있었다. 현 정부가 추진하는 친재벌 정책의 상당 부분도 전경련 측에서 주장한 내용이 많다”라며 “과거 정경유착 사례를 보면 정부는 기업의 입맛에 맞는 정책을 추진하고, 기업은 정부 출신 인사들을 기용하는 등 이익을 나눠왔다”라고 지적했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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