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과 없는 부자 감세···안보 치중도 ‘발목’[뒤로 간 1년-경제]
감세 탓 세수 줄어 경기부양 실탄도 없어
윤석열 정부는 출범 이후 민간이 끌고 정부가 미는 민간·시장 중심 경제를 전면에 내세웠다. 감세와 규제 완화로 기업과 시장이 살아나면 국가와 서민 경제가 활력을 찾으리라고 기대했다. 출범 1년이 지났다. 경제지표로 본 한국 경제는 정부 기대와는 달리 큰 위기에 직면해 있다. 무역적자의 골은 깊어지고 세수 구멍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쌍둥이 적자(재정수지와 경상수지 모두 적자) 우려에 민생이나 경기를 돌볼 여력은 줄어들고 있다. 일각에선 시장과 공정을 앞세운 윤석열 정부가 불공정한 특혜와 반시장적 정책들만 쏟아낸다고 비판한다. 친미 일변도 외교·안보 기조가 대중 무역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악으로 치닫는 수출 전선 한국 무역수지(수출액-수입액)는 지난 4월(-26억2000만달러)까지 14개월째 적자다. 우리 경제를 지탱해온 수출은 7개월째 마이너스다. 최대 수출품인 반도체와 최대 교역국인 중국 등 수출 양대축의 부진이 역성장 요인이다.
반도체 수출은 지난해 8월부터 9개월 연속 하락세다. 4월만 보면 반도체 수출액은 1년 전과 비교해 무려 41.0%나 줄었다. 4월 한국의 전체 수출 감소액인 82억달러의 절반(44억달러)이 반도체에서 줄었다.
반도체 수출 부진은 대중 수출 부진으로 이어졌다. 올 들어 최대 흑자국에서 최대 적자국으로 돌아선 중국과의 무역적자는 지난해 10월 이후 7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4월만 보면 대중 무역적자는 22억7000만달러로 전체 무역수지 적자(26억2000만달러)와 유사한 규모다. 정부는 우리의 주요 수풀품목인 반도체, 배터리, 자동차부품, 디스플레이 등 중간재 품목에 대한 중국의 수입이 줄어들고, 이를 자국산으로 대체하려는 중국의 산업구조 변화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또 중국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 파급 효과가 미미한 것도 한국의 대중 수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본다.
일각에선 안보가 경제를 뒤흔들고 있는 건 아닌지 점검해야 한다고 말한다. 윤석열 정부의 한·미·일 중심의 가치 외교가 중국을 외교·안보·경제적으로 압박하면서 그에 대한 반작용이 대중 무역 감소로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 5월 1일 더불어민주당 경제위기대응센터는 이를 두고 “미·중 간 패권 경쟁의 최전선을 자처한 윤석열 대통령의 ‘뺄셈 외교’로 인해 우리 경제가 막대한 피해를 입고 있다”고 했다. 최근 중국 현지에서 활동하는 한국 기업인 모바일 메신저 단체 대화방에 ‘중국 세관이 한국발 화물 검사를 강화했다‘는 글이 올라오거나, 과거 ‘사드 보복’과 같은 중국의 경제 보복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김완기 산업통상자원부 무역투자실장은 같은 날 ‘4월 수출입 동향 브리핑’에서 이 같은 중국의 보복 가능성에 선을 그었다. 그는 “(중국의) 경제 보복은 아직 아니라는 생각이다. 현재까지 통관 검역이 지연되는 직접적인 사례는 없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고 했다.
지난 4월 한·미 정상회담의 경제 분야 평가도 ‘얻어낸 것이 없다’가 중론이다. 중국과 무역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반도체 기업에 대한 보조금 지급 요건(자료 제출과 초과이익 환수 등)을 제시한 미국의 반도체과학법과 반도체 장비 수출통제 1년 유예조치 종료(10월)를 앞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에 대해 의미 있는 구제책을 만들지 못했다. 대신 미국 측의 “긴밀한 협의를 지속한다”는 원론적인 답만 들었을 뿐이다. 나원준 경북대 교수는 “중국이 그동안 자국산 비중을 늘리고 고위기술 수준이 향상되면서 우리의 대중 무역이 영향을 받은 측면이 있다”면서도 “(또 다른 대중 무역적자 요인은) 친미 일변도의 윤석열 정부의 가치 동맹 외교라 할 수 있다. 과거엔 진보·보수 정부 할 것 없이 미국과는 안보를, 중국과는 경제를 중시하는 실리외교를 펼쳐왔다. 그런데 미국만 바라보는 현 정부는 스스로 종속 관계를 만들면서 미국이 만든 틀 안으로 뛰어들고 있다. (중국과는 거래하지 말고 미국 내에 반도체 공장을 지으라는) 그 틀은 중국의 반감을 살 뿐 아니라 국내 제조업의 기반 자체를 공동화시킬 개연성이 크다”고 말했다.
비상 걸린 곳간과 재정의 역할 윤석열 정부는 출범 직후 코로나19 이후 침체된 민생경제를 살리겠다고 공언했다. 방미를 마친 후엔 여당을 중심으로 이제는 ‘민생 살리기’가 최우선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민생이 고달플 때 재정의 역할은 특히 더 강조된다. 문제는 정부의 곳간에 이미 비상이 걸린 상태라는 점이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올 들어 3월까지 누계 국세수입은 87조1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4조원 줄었다. 세수 진도율은 21.7%다. 이는 지난해 3월(28.1%)은 물론이고, 최근 5년 평균 3월 진도율(26.4%)을 크게 밑돈다. 민생을 살리고 경기를 부양시키려면 재정을 써야 하는데 실탄이 없는 셈이다. 결국 지출을 줄이든 빚을 내야 한다. 감세를 일관되게 추진하는 현 정부하에서 재정지출을 줄인다는 것은 서민 복지가 줄어들 수 있다는 의미다. 마찬가지로 국가채무를 늘리는 문제도 쉽지 않다. 대통령이 나서서 재정준칙 도입을 강조하는 등 줄곧 재정건전성을 강조한 정부 원칙과 배치된다.
세수가 줄어든 이유는 정부 분석대로 부동산시장 하락과 내수 침체 등 여러 원인이 있을 수 있지만, 정부의 감세 정책과 연관이 있다. 지난해 말 국회를 통과한 세법개정안은 대기업에 대한 법인세 최고세율을 25%에서 24%(정부안 25→22%)로 내리고, 금융투자소득과 가상자산 과세의 시행을 2025년으로 2년씩 미뤘다. 종합부동산세(종부세)는 1가구 1주택자 과세 기준을 현행 11억원에서 12억원으로, 다주택자도 6억원에서 9억원으로 각각 완화했다.
윤 대통령이 지난해 말 세액공제 추가 상향을 지시한 반도체, 이차전지 등 국가전략기술 투자세액 공제율의 경우 대기업과 중견기업은 현행 8%에서 15% 확대됐다. 여기에 투자 증가분의 10%를 추가 공제하는 임시투자 세액공제도 도입되면서 대기업은 최대 25%까지 세액공제를 받게 된다. 가업상속공제 대상 기업 기준도 현행 4000억원 미만에서 5000억원 미만으로, 최대 공제한도는 현행 500억원에서 600억원으로 확대됐다. 정부안은 각각 1조원 미만, 1000억원까지 확대하는 내용이었으나 민주당이 제동을 걸면서 확대폭이 축소됐다.
4·16연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참여연대 등 13개 단체는 지난 5월 3일 ‘윤석열 정부 취임 1년 평가 대토론회’에서 현 정부의 경제정책을 ‘재벌 특혜’와 ‘부자 감세’로 규정했다. 조세형평성 제고와 향후 늘어날 재정지출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담세능력이 있는 재벌·대기업과 고소득, 고자산가에게 세금을 더 걷어야 하는데, 오히려 감세를 추진함에 따라 세수 부족 사태를 야기했다는 지적이다.
지난 1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국회 예산정책처(예정처)에 의뢰해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국회를 통과한 세법개정안의 5년간 세수감소 효과는 64조4000억원에 이른다. 세목별로는 법인세 세수 감소폭이 27조4000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소득세가 19조4000억원, 증권거래세가 10조9000억원, 종부세가 5조7000억원으로 뒤를 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은 현 정부의 감세 기조가 지금의 경제위기를 초래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민주연구원은 지난 4월 12일 주최한 ‘윤석열 정부 1년 평가 연속토론회’에서 법인세 인하, 주식 양도세 비과세 기준 상향(10억→100억원), 종부세 완화 등을 ‘트리플 부자 감세’로 규정했다. 정부 국세 수입이 올해 6조원, 내년에 17조원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정부는 하반기에 경기가 회복되면서 세수도 회복 국면에 접어들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이러한 ‘상저하고’ 전망도 지금으로선 불투명한 상황이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 위원들의 4월 11일 통화정책 방향 결정회의를 보면 한 위원은 “주요국 통화 긴축 효과는 올 하반기에 더 클 것이고 화학·철강·기계 쪽 업황도 특별히 좋지 않다. 뚜렷한 상저하고 움직임을 보일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권오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제정책국장은 “윤석열 정부는 줄곧 ‘공정’과 ‘민생 회복’을 강조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재벌과 대기업, 다주택자 등 고소득자들에게 혜택이 집중된 정책을 펼쳐왔다. 재벌 특혜와 규제 완화, 부자 감세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진다면 양극화는 더욱 심화될 것이다. 지금이라도 재벌 특혜와 부자 감세 기조를 버리고 공정경제와 조세정의, 민생경제 기조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원준 교수는 조세재정 정책의 재검토를 강조하면서 “문제는 부자 감세와 재벌 감세에 따른 세수 결손이다. 자산 과세의 무력화로 노동소득보다 불로소득이 더 보호되면서 조세 정의는 땅에 떨어졌다. 정부는 국민을 속이고 부자들의 보유세 부담을 낮췄으며 금융소득 과세와 상속 세제까지 완화해 부의 대물림을 조장하고 있다”고 했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윤석열 정부의 지난 1년 재정정책을 보면 갈피를 잡기 힘든 수준이다. 대통령까지 나서 재정준칙 도입과 같은 재정건전성을 강조하면서 다른 한쪽에선 대규모 감세를 한다. 또는 시장을 중시한다면서 (정부가 개입해) 특정 산업을 콕 집어 막대한 세제지원을 한다. 이런 식이면 시장이 정부 정책에 신뢰를 갖기 힘들어진다. 정부 정책에 대한 시장의 예측가능성 저하는 돌발 상황에 대한 시장의 대응 능력 저하와 같은 의미”라고 말했다.
뾰족한 수 없는 민생대책 윤석열 정부 경제 분야에 대한 국민 평가는 박하다. 한국갤럽이 지난 4월 25~27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한국갤럽 홈페이지 참조)를 보면, 분야별 ‘부정’ 평가에서 공직자 인사(63%) 다음으로 경제(61%)가 많았다. 고물가와 고금리로 인해 국민 고통이 큰 상황에서 정부가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물가가 오르면 주머니 사정은 더욱 궁핍해진다. 통계청에 따르면 물가를 반영한 실질소득은 지난해 3분기(7~9월)에 전년 동기 대비 2.8% 감소했고, 4분기(10~12월)에도 1.1% 감소했다. 가파르게 오른 기준금리 탓에 4분기 이자 비용 지출은 전년 동기 대비 28.9% 급증하며 2006년 이래 최대 증가폭을 보였다. 김회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월 22일 통계청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1월 경제고통지수(실업률과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더한 값)는 8.8로 집계돼 1999년 6월 이후 가장 높았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7월 6.3%로 정점을 찍은 후 꺾이는 흐름이다. 4월 소비자물가는 전년 같은 달보다 3.7% 올라 지난해 2월(3.7%) 이후 처음 3%대로 내려앉았다. 석유류 가격이 1년 전보다 16.4% 내리며 전체 물가 상승세를 눌렀다.
지표상으로는 최근 들어 물가가 잡히는 모양새지만, 실제 시민들이 쉽게 체감하는 물가는 여전히 고공행진 중이다. 우선 근원물가(농산물 및 석유류 제외 지수)가 여전히 4%대 중반(4.6%)이다. 특히 지난해 치솟았던 국제곡물 등 국제 원자재 가격이 시차를 두고 외식 등 개인서비스에 전가되고 있다. 외식은 7.6% 올라 전월(7.4%)보다 상승 폭을 키웠고, 품목별로 햄버거(17.1%), 피자(12.2%), 치킨(6.8%) 등이 주로 큰 폭으로 올랐다. 서비스 품목은 한번 오르면 물가가 잡히더라도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그간 서민 부담을 줄이기 위해 묶어둔 전기·가스 요금 등 공공요금 인상도 예고돼 있다. 물가상승 압박이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최근 1달러당 1340원 안팎까지 오른 환율도 물가 압박 요인이다. 환율 상승(원화 약세)은 수입물가를 끌어올리고 이는 소비자물가 상승에도 영향을 준다.
고금리 여파는 이제부터 본격화할 것이란 우울한 전망이 나온다. 한국은행은 2021년 8월 이후 올 1월까지 기준금리를 인상하면서 지난 2월과 4월에 금리를 연 3.50%로 동결한 바 있다. 지난해 4분기 말 현재 자영업자의 대출(가계대출+개인사업자대출)은 1019조8000억원이다. 특히 자영업 대출자 중 56.4%(173만명)는 가계대출을 받은 금융기관 수와 개인사업자대출 상품 수의 합이 3개 이상인 다중채무자, 즉 한계차주였다. 한은이 대출금리 상승에 따른 자영업 대출자들의 이자 부담 증가분을 추산(지난해 4분기 말 변동금리 비중 추정값 72.7% 바탕)한 값에 따르면 대출금리가 0.25%포인트 높아지면 전체 이자액은 1조9000억원, 1인당 평균 연이자는 60만원 불어났다.
김남주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실행위원(변호사)은 “월급 빼곤 모든 게 올랐다. 고물가·고금리에 힘든 서민들과 소상공인 등 경제 주체들이 위기상황에서 큰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정부가 재정을 적극 투입해야 하는데, 현 정부는 재벌과 대기업에 집중된 감세와 규제 완화로 세수 부족 사태를 야기하고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안광호 기자 ahn7874@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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