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뇌에 찬” 성급함···곧 날아들 청구서[뒤로 간 1년-외교]

2023. 5. 5.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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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성과도 실책도 ‘외교’라 지지율 답보
미·일 쏠림 외교로 실리 포기, 운신의 폭 줄여

‘누구나 잘 알지만, 누구도 잘 모른다.’ 분명 모순이지만 국가 대외관계를 통칭하는 ‘외교’에서는 엄연한 현실이다. 사실 기껏해야 ‘귀납적’ 수준으로 설명했던 국제관계가 예측 가능한 이론의 영역으로 인정받은 것은 채 반세기도 지나지 않았다. 여전히 국제관계를 설명하는 분석 중 상당수는 ‘결과론적’이고, ‘환원론적’이다. 한 국가의 대외전략 결정을 과학적인 이론으로 분석하기보다 지도자의 ‘느낌’, ‘편견’으로 결정됐다고 설명하는 것이 현실을 보다 잘 설명한다는 의미다.

미국을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4월 27일(현지시간) 워싱턴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미 상·하원 합동회의 연설에서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 워싱턴 | 연합뉴스



사실상 과학적 검증이 불가능한 영역에서 분명한 판단 잣대가 있기는 더욱 어렵다. 정치지형에 따라 모든 평가가 양극단으로 갈라지는 한국의 현실에서는 더욱 그렇다. 동일 사안을 두고도 한쪽은 ‘건국 이래 최대의 성과’, 또 다른 한쪽은 ‘굴욕적 저자세’로 비판하는 식이다. 실제로 지난 1년, 윤석열 정부의 가장 큰 성과도 외교, 가장 큰 실책도 외교가 꼽히는 ‘촌극’이 빚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국내 정치적으로 이용될 수 있는 여지만 늘린다. 지지율 제고가 아닌 지지율 방어에 시각을 맞춰보면 보다 분명히 이를 확인해볼 수 있다.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린 국내 현안은 어떤 정권에도 부담이다. 특히 지지율이 낮다면 국내 현안에서 선택할 수 있는 범위는 그리 넓지 않다. 외교는 다르다. 국민의 삶에 영향을 미치기까지 시차가 발생한다. 게다가 한국의 선택이 마치 ‘미국이냐, 북한(중국)이냐’의 이념대결이 된 상황에서 외교는 더욱 매력적인 선택지다. 적어도 50%의 국민 지지 혹은 암묵적 동의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세계 정치사에서 ‘내치의 어려움을 외치로 돌파’한 사례는 차고 넘친다. 당장 일본의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대표적이다. 기시다 총리의 추락하던 지지율은 한·일 정상회담 이후 반등에 성공하며 50%를 넘나들고 있다. 검찰 출신 대통령이 집권한 후 한국사회에서 가장 뚜렷하게 변한 것이 ‘외교 전략’이라는 현실도 해당 논리로 이해해볼 수 있다. 윤 대통령 지지율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30% 초·중반대에 머문다. 지지 이유의 상위권에는 ‘외교적 결단’이 있다.

유한한 정권은 임기 내 지지율과 연동해 외교 문제를 결정한다. 문제는 이로 인한 결과를 무한히 감당해야 할 국민이다. 윤석열 정부는 집권 1년 만에 역대 정부가 최대한 미뤄왔던 ‘외교적 결정’들을 빠르게 매듭지었다. 해당 기간 ‘한국의 안보 위협이 종전에 비해 뚜렷이 증가했다’거나 ‘미국과 중국이 전쟁 직전의 대립관계가 됐다’는 징후는 찾아보기 어렵다. 정부와 언론에서 북한 미사일 실험을 두고 아무리 호들갑을 떨어도 여전히 점심 메뉴를 고민하는 것이 한국 국민의 일상이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의 발언, 대통령실의 성과 발표 등을 종합하면 북한과의 대결이 무역, 환율, 노동, 에너지 문제보다 시급한 문제로 인식된다. 이를 위해 경제 등의 영역에서 불이익도 감수하는 모양새다.

이를 통해 지난 1년을 거치며 윤석열식 외교는 두 가지 결과를 남겼다. 하나는 국제사회에서 한국이 ‘자유의 화신’으로 자리 잡았다는 점이다. 세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앞으로 국제사회에 기여도 한다는 방침이다. 한국이 그럴 상황은 맞느냐는 ‘자기 객관화’는 별개 문제다. 또 다른 하나는 1년간 빠르게 결정한 문제들에 대해 앞으로 4년간 청구서가 도착할 것이라는 점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중국 전문가는 ‘한국의 대중국전략’을 묻는 질문에 “딱히 분석할 것도 없고, 어렵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것도 민망하다”며 인터뷰를 사양했다. 실제로 이미 대중국 무역 등에서 종전과는 다른 결과가 나타나고 있지만, 정부는 공급망 재편 과정의 ‘성장통’ 정도로 인식하는 중이다.

윤 대통령은 외교적 선택을 “고뇌에 찬 결단”이라고 밝혔다. 대통령 스스로 충분히 고민했다면 이로 인해 파생될 문제와 해법도 제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을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4월 26일 오후(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 국빈 만찬에서 건배하고 있다(왼쪽). 지난 3월 16일 일본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일본 도쿄 총리 관저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한·일 확대정상회담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며 악수하고 있다. / 워싱턴 | 김창길 기자



가치외교가 정말 실익을 가져다줄까 “윤 대통령은 외교를 하는 것이 아닌 전쟁을 하고 있다.”

김준형 전 국립외교원장의 윤석열 정부 1년차 외교에 대한 평가다. 윤 대통령은 각종 외교 무대에서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역설했다. 가장 최근 진행한 미 의회 연설에서는 약 43분간 자유를 46번 외쳤다. 1분당 자유를 한 번씩 외친 셈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이 “자유의 나침반 역할을 하겠다”거나 “인류의 자유를 위해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와 힘을 모아 해야 할 일을 반드시 할 것”이라는 약속까지 남겼다.

자유가 인류가 추구해야 할 궁극적 가치라는 점에는 이론이 없다. 문제는 현실이다. 가치에 대한 정의와 범위가 국가마다 다른 상황에서 윤 대통령이 말한 ‘자유’는 엄밀히 따지면 미국이 정의한 자유다. 그런데 미국이 수행한 각종 전쟁에서 해당 자유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와 거리가 있음이 여러 차례 확인됐다. 미국 내에서도 국제정치 속 이상주의가 실패하는 것은 패권국이 위기 때마다 ‘자유, 민주주의’ 등의 보편적 가치를 준수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따라 ‘자유’라는 장막을 걷어내고 보면, 윤 대통령은 단순히 진영외교 속 미국에 편승하겠다는 말을 돌려 한 셈이다.

그렇다면, 해당 관점에서 윤 대통령이 약속한 “한국이 할 일을 하겠다”는 발언을 재해석해볼 수 있다. 결국 미국적 ‘자유’의 확산에 기여하겠다는 의미가 된다. 궁극적으로는 북한, 중국, 러시아 등에 대한 현상 변경을 수반한다. ‘힘에 의한 현상 변경’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면 결코 단순한 의미가 아니다. 김 전 원장의 “외교가 아닌 전쟁을 하고 있다”는 말의 의미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그동안 한국에 ‘적도 친구도 아니었던’ 국가들이 분명한 ‘적’으로 변했다. 한국도 이들과 군사적·경제적으로 충돌할 수 있다는 뜻이다.

문제는 미국도 한국처럼 가치로 포장한 일방향적 외교만 하느냐는 점이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반도체법 등은 동맹국의 희생을 기반으로 한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한·미 정상회담에서 윤 대통령을 옆에 두고 한국 기업들의 미국 투자를 성과처럼 언급했다. 그러면서 “(반도체법은) 미국에서 상당한 경제성장을 만들어내고 있고, 아무도 상처받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공동선언문에는 IRA, 반도체법 등에 대한 해법이 담기지 않았다.

반면 대통령실이 내세운 성과는 ‘확장억제 강화’다. 결국 돌고 돌아 북한이다. 확장억제 강화가 현시점에서 한국이 얻을 수 있는 가장 시급하고, 최대한의 이익인지는 두 가지 기준으로 따져봐야 한다. ‘집권 2년차 정부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정도로 한국의 안보가 위험한 수준이었느냐’와 ‘확장억제 강화, 이른바 핵협의 그룹(NCG) 창설이 한국의 안보 불안을 어느 정도로 해소하느냐’는 점이다. 이에 대해 김 전 원장은 “한국의 안보 위협이나 편승의 시급함은 인식의 문제일 뿐, 사실로 확인된 것은 없다”며 “우선 미·중 전략경쟁 측면에서 보면 양국이 전쟁 직전의 상황이라거나 미국이 조만간 중국을 완전히 제압하는 상황 정도의 전제가 있어야 하는데 전쟁의 징후는 없고, 경제 등의 분야에서 미·중 협력은 여전하다”고 말했다. 또 “북핵 위협 측면에서 보더라도 한미동맹의 기본이 확장억제인데 이걸 강화했다는 것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며 “결국 북한이 핵 공격을 하면 미국이 개입할지 불안한 보수정부가 그걸 재확인받자고 경제문제 같은 실리를 포기한 셈”이라고 말했다.

심지어 한·미 양국은 핵 공유에 대해서도 인식 차를 보인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의 “사실상의 핵 공유처럼 느끼게 될 것”이라는 설명에 미국 백악관은 “핵 공유는 아니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조태용 국가안보실장은 다시 “핵 통제 동맹, 핵 억제 동맹 이렇게 다른 말로 하는 게 정확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실 발표대로 핵을 통제할 수 있다면 그 수단이 분명해야 한다. 한·미 정상회담은 핵 억제에 필요한 3가지 수단인 핵 공유, 전술핵 배치, 핵 자체개발 중 어느 하나도 결과로 도출하지 못했다. 단순히 핵 관련 정보 공유로 날아오는 핵 공격을 어떻게 막는다는 것인지 설명이 없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3월 20일(현지시간) 크렘린궁에서 국빈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담소를 하고 있다. / UPI|연합뉴스



남은 것은 청구서 “우크라이나 전쟁과 미·중 전략 경쟁으로 진영 갈등이 확연한 상황에서 중국, 러시아와 전략적 소통을 어떻게 이어나갈지 고민해야 한다.”

노인규 한국국방연구원(KIDA) 선임연구원이 제시한 윤석열 정부가 남은 4년 동안 고민해야 할 과제다. 노 연구원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지원, 대만 문제 등부터 북핵 문제까지 유엔 안보리(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중국, 러시아와는 계속해서 마주할 수밖에 없다”며 “동맹과 전략적 소통을 하면서도 국익을 우선하려는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난 1년간 내린 빠른 결정들은 앞으로 4년간 다양한 형태의 청구서로 날아올 전망이다. 당장 중국은 지난 한·미 정상회담 결과 도출된 ‘워싱턴 선언’을 두고 “잘못되고 위험한 길로 나가지 말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를 두고 윤 대통령은 지난 5월 2일 “(북한이) 안보리 결의를 위반한 것에 대한 제재에 전혀 동참을 안 하면서 우리보고 어떻게 하라는 얘기인가. 우리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중국이 우리한테 적대행위만 안 하면, 서로 계약을 정확히 지키고 예측 가능하게 하고 상호존중하면 얼마든지 경제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중국과의 불편한 관계가 어쩔 수 없다고 하면서도 경제는 협력할 수 있다는 식이다. 실제로 이러한 방식의 외교를 하는 국가들이 있다. 미국, 인도, 프랑스 등이 대표적이다. 갈등과 별개로 필요한 부분에서 협력하는 이른바 ‘전략적 자율성’을 최대한 활용하는 국가들이다. 문제는 이들이 누리는 전략적 자율성의 공간을 윤 대통령 스스로 이미 없애버렸다는 지적이 나온다는 점이다.

윤 대통령의 외교 행보는 모두 미국, 일본에 맞춰져 있다. 미국에 대한 안보 의존도가 올라가는 상황은 동시에 한국의 협상력을 감소시킨다. 쉽게 말해, 적어도 윤석열 정부는 미국에 반대하기 어려운 구조를 만들었다. 이는 향후 한국을 상대하는 국가들은 미국을 움직여 한국을 압박하는 것이 최선의 전략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일본과의 강제동원 문제 해결 과정에 미국이 있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유사한 상황은 언제든지 반복될 수 있다. 미국과 협상하면 되지 않느냐는 반론도 있다. 문제는 한국의 미·일 일변도 외교가 북·중·러의 결속을 불러온다는 점이다. ‘힘을 통한 평화’는 반드시 ‘힘을 통한 경쟁’ 시대를 거쳐야 실현 가능하다. 일단 안보 딜레마 상황에 놓이면 중간에 내리기는 어렵다. 안보 의존도는 커지면 커졌지 줄어들지는 않는다는 의미다. 미국을 통한 안보위협 감소가 한국의 협상력 감소를 부르고, 이를 탈피하려면 “안보 문제가 심각하다”는 대통령 발언을 스스로 뒤집어야 하는 순환구조에 놓였다.

이러한 외교적 결정을 두고 윤 대통령은 “어쩔 수 없는 선택”, “고뇌에 찬 결단”이라고 했다. 해당 발언이 앞으로 발생 가능한 변수들에 대한 정부의 고려까지 담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확실한 것은 외교적 결단에 대한 후속 조치가 없으면 반드시 위기를 맞게 된다는 점이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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