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쪽은 일 없습네까?” [이충우의 소소한 관심]

이충우 기자(crony@mk.co.kr) 2023. 5. 5.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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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4~5년전 이곳에 세계인의 관심이 집중됐습니다.

5년전 남과 북의 정상이 만나고, 4년전 미국과 북한의 정상이 손을 잡았던 곳.

그떄는 한반도에 평화의 봄이 곧 찾아올 것만 같았습니다.

지금 돌아보니 모두 봄날의 한바탕 꿈 같은 이야기였습니다.

공식 명칭은 군사정전위원회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영어로는 ‘Military Armistice Commission Joint Security Area , Pan Mun Jom으로불립니다. 통상적으로 공동경비구역(JSA, Joint Security Area)이라고 부르고 일반 사람들은 그냥 판문점이라고 합니다.

오랜만에 판문점을 찾았습니다.

머리 속에 4년전 뜨거웠던 장면에 대한 기억이 선명해서인지 한산한 판문점의 풍경이 싸늘하게만 느껴졌습니다.

남과 북의 정상이 손을 잡고 넘나들던 나지막한 남과북의 군사분계선 북측에는 벌써 잡초들이 무성하게 자리기 시작했습니다. 남북 관계가 얼어붙으면서 이곳에도 사람의 발길과 손길이 닿지 않고 있음을 그 풀들이 이야기해주는 것만 같습니다.

100여 미터 앞 판문각에 있는 북측 병사들은 두꺼운 커튼 틈 사이로 사진을 찍고 있는 나를 주시합니다.

북쪽을 향해 셔터를 눌어대니 북의 병사들이 어느새 밖으로 우르르 몰려나와 카메라와 망원경으로 나를 살피기 시작했습니다.

서로 기 싸움 하듯 나는 셔텨를 누르고 그들은 열심히 나를 주시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로 겨누고 있는 것이 총이 아니라 카메라이고 서로가 나누는 것이 적어도 서로에 대한 관심이니까요.

남북 관계는 날이 갈수록 얼어붙고 있지만 나를 뚫어 져라 처다 봐준 병사들이 반가운 마음에 사진을 찍었고, 카메라를 접으며 “그쪽은 일 없습네까?” 마음속으로 인사를 전했습니다.

돌아서는데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의 대사가 떠올랐습니다.

“지금 한반도는 겨울 숲이라고 할 수 있지. 불씨 하나에도 몽땅 타버리는 겨울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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