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루의 기초는 어디에 있을까? [이강웅의 수원화성이야기]
화성에는 장안문, 팔달문, 창룡문, 화서문 등 네 곳의 문이 있다. 방위로 보면 북문, 남문, 동문, 서문이다. 네 곳의 문은 규모에 차이가 있을 뿐 제도나 구조는 모두 같다. 문의 제도는 크게 육축, 문루, 옹성으로 나눌 수 있다. 문루는 육축 위에 놓여 있다.
육축은 등변 사다리꼴 형태로 매끈하고 큰 돌로 쌓은 부분을 말한다. 한가운데를 뚫어 성 안팎을 드나드는 통로로 사용한다. 좌우 경사진 부분에는 돌계단이 놓여 있다. 속은 잡석으로 채워 놓았다. 문루란 육축 위에 지은 집을 말한다. 장안문과 팔달문은 2층 중층 문루고 창룡문과 화서문은 1층 단층 문루다. 중층 문루는 보기만 해도 그 규모가 압도적이다. 특히 팔달문 문루는 육축 위에서 220년을 버텨온 것이다.
이런 대규모 크기와 무게의 건축물이 원지반이 아닌 8m 높이로 만든 인공지반인 육축 위에서 아무 이상 없이 유지된 것은 기적에 가깝다. 그래서 문루의 건물 기초가 궁금해진다. 문루 기초는 인공지반 육축 위에 있을까? 아니면 원지반 육축 아래 바닥에 있을까?
답은 “육축 아래 원지반에 있다”다. 답을 듣자마자 여러분은 바로 답이 틀렸다고 할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문에 올라가 보면 문루 기초석이 육축 위 기둥 밑에 분명히 보이기 때문이다. 장안문과 팔달문은 대원주석 18개씩, 창룡문과 화서문은 중원주석 10개씩 설치돼 있다.
육축 구조를 좀 더 살펴보자. 팔달문의 경우다. 물이 나는 터라서 14척 깊이로 땅을 파서 진흙, 모래, 회 다짐으로 지반을 강화했다. 그 위에 안팎으로 매끈하게 다듬은 무사석을 쌓고 그사이에 잡석을 채우며 다져 만든 것이 육축이다. 한마디로 육축은 사람이 만든 인공지반이다. 잡석은 30cm씩 한 층 한 층 층다짐을 했다. 모두 인력과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것이지만 충실하게 다짐을 했을 것이다. 이렇게 만든 인공지반 위에 문루를 세웠다. 문루는 2층 나무구조로 거대한 지붕과 함께 무게가 큰 구조물이다.
무거운 목조 문루와 인공지반의 특성으로 보면 문루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연적으로 침하, 이완, 파괴가 발생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실제 전쟁에 의한 파괴만 있었고 자연적 파괴는 발생하지 않았다. 당시의 시공 품질이 매우 뛰어났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과연 시공을 잘해서 문제가 없던 것일까? 이 또한 “아니요”다. 여기에는 공사 외에 정조의 비법이 숨겨져 있다. 어떤 비법일까?
의궤 권6 실입에 그 비법이 보인다. 다름 아닌 ‘은주석’의 존재다. 실입이란 실제 사용된 자재나 인력을 상세히 기록한 것이다. 은주석이 장안문에 271덩이, 팔달문에 272덩이, 창룡문에 109덩이, 화서문에 108덩이가 사용됐다고 기록돼 있다. 은주석은 ‘마루 밑 또는 방 밑 등 보이지 않는 곳에 사용하는 석재’로 설명하고 있다. 크기는 면 크기 사방 3척(93cm), 높이 1척2촌(37cm)이다.
은주석이 문루 기초와 무슨 관련이 있을까? 필자는 육축 아래 원지반부터 육축 위 기둥 기초 밑까지 은주석이 놓여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육축 속에 묻혀 있어 어느 문에서도 실물을 확인할 수 없으니 확정하기에 난감하다. 2013년 팔달문 해체보수 후 발간된 준공 자료집에도 기둥 기초석과 주변 잡석만 보인다. 이제부터 보이지 않는 밑 부분을 찾아 하나씩 범위를 좁혀 보자. 1단계로 ‘사용한 시설물’로 좁혀 보자. 화성 시설물 전체를 확인해 보니 은주석을 사용한 곳은 문 네 곳뿐이다. 따라서 은 주석은 ‘문루에 필요한 것’이라고 확정했다.
2단계로 ‘사용한 부재’로 좁혀 보자. 팔달문이 272덩이, 창룡문이 109덩이를 사용했다. 용어 사전에 사용처가 ‘마루 밑’이라 했는데 문루 마루 밑은 기둥이 전혀 필요 없는 구조이므로 사용 범위에서 제외할 수 있다. 그렇다면 문루 기둥 밑이다. 간단히 검증을 해보자. 만일 은주석이 기둥 밑에 사용되는 것이라면 기둥 개수와 육축 높이가 은주석 사용량과 상관관계가 있다. 팔달문과 창룡문을 비교해 보자. 창룡문은 기둥 개수가 팔달문의 55%이고 육축 높이는 팔달문의 80%로 종합하면 44%에 해당한다. 은주석 사용량은 40%다. 따라서 은주석은 ‘문루 기둥에 필요한 것’이라고 확정할 수 있다.
3단계로 ‘사용된 위치’를 확정해 보자. 은주석 1개 높이는 1척2촌이다. 팔달문에 272덩이가 사용됐으므로 사용한 은주석 총 길이는 326척4촌이 된다. 문루 기둥이 18개이므로 기둥 1개당 은주석 사용 길이는 18척이 된다. 육축 높이가 22척으로 약 4척의 차이가 발생한다. 같은 계산으로 창룡문도 4척 차이가 생겼다. 차이 4척은 육축 위 원주석 높이(두께)다. 따라서 은주석이 사용된 위치는 문루 기둥 밑이란 것이 밝혀졌다. 결론은 ‘육축 아래 원지반부터 육축 위 기둥 밑까지’ 은주석을 사용한 것이다. 은주석을 연속해 쌓은 것이다.
눈에 보이는 기초는 육축 위 기둥 밑에 있으나 사실상 기초는 육축 아래 원지반에 있다. 실제 기초와 보이는 기초 사이에 ‘보이지 않게 묻혀 있는 은주석’이 문루 하중 전체를 땅으로 전달하고 있다. 이것이 인공지반 위에서 팔달문 문루가 버텨온 비밀병기였다. 육축 속에 보이지 않게 심어 놓은 은주석에서 정조의 품질경영을 엿보았다. 이강웅 고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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