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여년 지나도 반복되는 ‘허망한 전쟁 놀음’[책과 삶]

김종목 기자 2023. 5. 5.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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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종군기자·미국 CIA 요원
베트남 댄서 삼각관계 축으로
1950년대 인도차이나 전쟁 속
어린아기 등 무고한 희생양 양산하는
기만적 인간과 전쟁 참혹상 그려
<조용한 미국인>은 두 차례 영화화됐다. 2002년 필립 노이스 감독 영화는 사이공 폭탄 테러로 희생된 아기를 모자를 가리려는 엄마의 모습을 묘사했다. 영화화면 갈무리

조용한 미국인

그레이엄 그린 지음·안정효 옮김 | 민음사 | 448쪽 | 1만9000원

1955년 처음 출간된 그레이엄 그린의 <조용한 미국인>은 타임 선정 ‘100대 영어 소설’, BBC 선정 ‘우리 세상을 만들어낸 100대 소설’로 ‘현대의 고전’으로 꼽힌다. “고전을 칭송하지만, 정작 읽은 사람은 드물다”(마크 트웨인)는 점에서도 고전이다. 한국에선 1991년과 1995년 두 차례 번역 출간됐다가 절판됐다.

그린과 <조용한 미국인>이 한국에서 다시 언급된 건 2019년 2월이다. 도널드 트럼프와 김정은의 2차 정상회담 장소가 베트남 메트로폴 하노이 호텔이라는 게 알려진 뒤 관련 기사 속 한두 줄로 처리됐다. 그린은 이 호텔에서 <조용한 미국인>을 썼다.

50대 영국인 종군기자 토마스 파울러와 30대 미국인 CIA 요원 올든 파일, 20대 베트남인 댄서 후엉의 삼각관계를 축으로 1950년대 초반 급하게 전개되던 인도차이나 안팎의 국제 정세를 녹였다. 삶과 죽음, 종교에 관한 회의와 철학도 담았다.

70여년이 흐른 지금도 인간의 잔인함과 전쟁의 참혹함에 관한 작가의 성찰을 확인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나 세계 곳곳의 테러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우선 눈에 들어오는 건 전쟁, 전투, 테러에 관한 묘사와 서술이다. 소설은 민간인 희생을 여러 차례 다룬다.

“한 여자가 찢긴 아기 시신의 남은 토막을 무릎에 얹어 놓고 땅바닥에 앉아 있었는데, 그나마 예의를 갖추려는 듯 농부의 밀짚모자로 어린 시신을 가렸다. 여자는 꼼짝하지 않은 채 작은 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파울러가 사이공 한복판 광장에서 벌어진 폭탄테러를 묘사한 구절이다. 이 여자가 무참히 변을 당한 아기를 계속 모자로 가리던 장면은 파울러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미국 CIA가 프랑스 쪽도 베트민 쪽도 아닌 “식민 통치의 오점과 공산주의로부터 자유로운 제3의 세력”으로 여겼으나 “돈이나 복수를 위해 온갖 더러운 일을 도맡는 비밀 무장 단체”의 하나로 확인된 부대와 진행한 테러다. 다른 군사 부대의 시가행진을 노린 테러였다. “백 킬로그램짜리 폭탄은 사람을 가려 가면서 터지지 않는다.”

프랑스군은 베트민 영향 아래 놓인 북부 팟지엠에서 작전을 수행하면서 무고한 민간인도 사살한다. “아이의 시체 밑으로 한입 물어뜯었지만 미처 먹지 못한 빵 한 조각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생각했다. ‘난 전쟁이 정말 싫어.’”

파울러는 취재 과정에서 소형 폭격기인 B-26에도 탑승한다. 조종사는 파울러를 향해 잠깐 미소를 지은 뒤 물에 뜬 ‘집 배’를 조준해 ‘급강하 총격’을 가한다.

“기관포가 한 줄기 예광탄을 뿜자 쪽배는 불꽃의 소나기처럼 사방으로 터져 나갔다. 우리는 공격받은 희생자들이 살려고 발버둥 치는 모습을 확인하고자 구태여 기다리지 않고 곧장 하늘로 솟아오른 뒤 기지로 향했다. 나는 팟지엠에서 죽은 아이를 보았을 때처럼 ‘전쟁이 싫다’라고 다시금 생각했다… 우리는 우연히 지나가는 길에 한바탕 쏘아 갈기면 그만이었고, 반격을 가해 오는 적은 아무도 없었으며, 우리는 태연히 자취를 감추면서 세상의 사망자 통계 수치에 우리의 작은 할당량을 추가했을 따름이었다.” 이 폭격기는 이어 “석회암에 쏟아지는 석양”의 장관을 보려고 우회 비행한다.

“그 집 배가 무슨 적대 행위라도 하려고 그랬나요”라는 파울러의 질문에 장교는 “그야 모를 일이죠. 우린 그곳 강 유역에서는 눈에 띄는 건 모조리 사격하라는 명령을 받았어요”라고 답한다. 그린은 이 군인의 입을 빌려 ‘권력자들의 허망한 전쟁 놀음’을 비판한다.

“난 차라리 군사 재판을 받고 싶어요. 우린 당신들의 모든 전쟁을 대신 싸워 주는데 당신들은 우리에게 죄의식만 남겨 준다고, 그들에게 말해 주고 싶군요.” 파울러는 이 군인이 “(기자 등) 민간인 집단이란 살인죄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월급봉투를 미끼 삼아 살인을 맡기려고 자신들을 고용한 존재라고만 여겨지는 모양”이라고 생각한다.

베트민을 피해 사이공 외곽 망루로 갔을 때 파울러는 “우리는 그냥 범세계적 전략에 동원된 부대에 속한 군번 23987의 졸병들에 불과합니다”라고 했다.

파울러는 선한 인간도 악한 인간도 아니다. 그의 윤리는 모순적이고, 이율배반적이다. 모든 일에 회의하며 거리를 둔다. 자신을 “당신 나라(프랑스)가 벌이는 전쟁을 취재하러 온 특파원”일 뿐이라고 여겼고, 만사를 ‘사이공에서 살해당한 미국 관리’ 같은 기사 제목처럼 간결하게 생각한다. “내가 본 사실들을 그저 글로 적어 보내기만 한다. 나는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견해 또한 일종의 행동이므로.” 종교도 회의했다. 하느님은 “순진하고 선량한 자들에 대한 부담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존재”로 간주했다. “죽음은 신의 존재보다 훨씬 확실한 개념”이라고 판단했다.

민간인 희생 앞에서 거리 두기와 회의가 무너진다. 파울러는 개별 인간의 희생과 고통엔 무심한 이념과 신념을 적대시한다. 파일이 이런 이념과 신념으로 무장한 인물이다. 파일은 “아메리카 합중국이 세계를 위해 하는 일”에 관해 확고한 관점들을 지녔다. “민주주의가 처한 진퇴양난의 과제와 서양의 책임이라는 주제에 몰입”하며 “국가를 위해서, 대륙을 위해서, 세계를 위해서 좋은 일을 하고야 말겠다는 각오가 대단”했던 인물이다. “자신이 남들에게 가져다주는 고통을 감지할 능력”이 없었다. 파일은 전쟁 희생을 부수적 피해로 여긴다. “시체를 보더라도 상처를 볼 줄조차” 몰랐다. “빨갱이들의 위협,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는 전사라는 개념밖에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파울러와 파일은 여러 차례 전쟁과 종교에 관해 토론을 벌인다.

“그들(베트남 사람들)은 총에 맞아 죽기를 바라지 않아요. 하루하루 무사히 지내기만을 원한다고요. 그들은 우리 하얀 피부의 인간들이 몰려와서 얼쩡거리며 이곳 사람들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제멋대로 설정하고는 굳이 납득시키려고 덤비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파울러)

“안타까운 일이지만 항상 목표물만 명중하기는 어렵잖아요? 어쨌든 그들은 의로운 대의를 위해서 죽은 거예요.” “어떤 면에서 그들은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고 할 수 있어요.”(파일)

이 대사들에서 그린이 소설 맨 앞장에 왜 두 영국 시인의 말을 적었는지 이해할 수 있다.

“온갖 지고한 목적들이 창궐하여 영혼을 살리겠다며 육신을 죽이는 특권을 부여받은 시대가 도래했다네.”(조지 고든 바이런·1788~1824)

“의무감에 쫓기는 인간은 쉽게 흔들리기 마련이고, 흥분한 소신과 행동은 위험하기 그지없으니 마음의 농간과 부당한 절차 그리고 허울뿐인 명분에 감동하고 전율하기를 나는 거부하노라.”(아서 휴 클러프·1819~1861)

그린은 소설 중 파울러의 입을 빌려 “거리에서 차를 몰고 가며 난 아무 걱정도 없어/ 사람들이 노려보며 내가 누구인지 묻는다 한들/ 어쩌다 미천한 인간 하나 치었다 해도/ 얼마이건 손해 배상을 해 주면 그만이지/ 돈이 많으니 그래서 좋다, 야!/ 부자는 그래서 좋다”는 클러프의 미완성 장편 풍자 시극 ‘앙숙의 대화’ 구절도 인용한다.

소설에선 ‘글쓰기’에 관한 철학도 볼 수 있다. 육하원칙 확인 없이 자신들만의 신념과 이념, 권력을 위한 왜곡과 과장, 확증편향의 글이 넘쳐나는 시대에 참고할 만하다.

파울러는 “총사령관의 일장 연설을 듣고는 홍보 본부에서 하룻밤 묵으며 인도차이나 최고의 술 시중꾼이라고 소문이 난 종업원의 친절한 대접”을 받고 기사를 쓰는 다른 종군기자들과 달랐다. 그는 프랑스 당국의 검열 때문에 기사를 전송하진 못했지만, 혼자 전투 현장을 찾아다니곤 했다. “나는 사실을 취재할 뿐인 기자일 따름이고, 신은 사실을 소신대로 해석하는 논설위원들을 위해서나 존재한다.” 그에게 “불가해한 대상”도 “계시나 기적 따위”도 없었다.

그레이엄 그린. 출처: 위키피디아

그린은 확인한 사실과 객관적 상황을 쓰던 기자 출신의 작가였다. 제이디 스미스는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작가란 글을 쓰는 노동자를 의미했다. 그들(그린 등)이 생각하는 작가란 세상 한가운데서 살아가며 세상 이야기를 하고, 비평가가 아니라 독자를 위해서 글을 쓰고, 잘난 체를 하지 않고 꾸밈이 없으며, 날마다 신문 기자만큼 많은 어휘를 써내는 사람이었다.”

‘삼각관계’도 주요 축이다. 소설을 번역한 안정효는 ‘작품 해설 회색 그린의 정체’에서 이렇게 풀었다. “파울러와 파일이 조우하는 시점에 파울러의 나라는 세계 대전을 거치며 사실상 식민 제국의 위상을 잃어 가고 있었지만, 파일의 나라는 식민지 지위에서 독립하여 경제 대공황을 극복하고 세계 최대의 강국으로 비약하는 중이었다. 1953년 11월 디 엔비 엔푸 전투로 프랑스의 식민 통치가 끝나자 영국은 프랑스로부터 베트남을 넘겨받을 엄두조차 내지 못한 반면에, 미국은 진영 확대를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그런 상황을 상징하는 구도가 파울러-파일-후엉의 삼각관계다.” 후엉은 “제국주의 줄다리기를 벌이는 열강의 두 세력 사이에 끼어 시달리는 베트남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2002년 동명의 영화 중 파울러-파일-후엉(왼쪽부터) 만남을 그린 장면. 영화화면 갈무리

☞ [책과 삶]지적 오만과 권력욕이 부른 ‘최악의 전쟁’
     https://www.khan.co.kr/culture/book/article/201401242008575

소설은 1965년 미국의 베트남전 참전을 예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종전이나 평화협상 가능성을 다룬 외신 보도를 보면서 소설 중 프랑스군 장교의 항변이 떠오른다. 무고한 희생을 멈추는 결과가 나와도 허망함은 가시지 않을 것 같다. “우리는 직업 군인이어서 정치가들이 그만하라는 지시를 내릴 때까지 계속 싸워야만 합니다. 아마도 그들은 애초에 양측이 만나서 맺었을 법한 수준의 평화 협정에 동의할 테고, 그러면 지금의 이 모든 세월은 헛짓거리가 되겠죠.”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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