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송역은 국토균형발전 상징인가, 지역이기주의 산물인가[책과 삶]
1989년 고속철도 계획 때 시작된
충북 발전론, 신행정수도 논란 등
수십년 지역 여론·정치 맥락 추적
오송역
전현우 지음 | 이김 | 328쪽 | 2만2000원
‘불만의 여행인가, 전설적 쾌거인가.’ 국토균형발전의 상징이라는 세종청사를 한번이라도 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떠올린 생각이다. 서울역에서 KTX 타고 오송역까지 40분, 오송역에서 BRT 버스를 타고 정부청사 건물 어딘가의 최종 목적지까지 걸어가면 40분. KTX와 버스·도보 이동거리가 똑같이 40분씩 걸린다. 출근했는데 퇴근할 때처럼 지친 상태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늦어서 택시라도 타면 2만~3만원은 기본이다. 세종청사를 향하는 사람만 겪는 일이 아니다. 오송역에서 청주 시내로 들어가기 위해서도 황량한 광장을 지나 버스를 타고 30~40분 가야 한다. 서울과 호남을 오갈 때도 천안에서 직선으로 내려오는 코스 또는 대전역을 거치면 더 많은 역과 만날 수 있었는데 우리는 호남선 분기역으로 오송을 택한 결과를 이렇게 마주하고 있다. 허허벌판 오송역 앞 광장 한쪽에는 오송역 유치에 관한 이야기를 써놓은 비석이 놓여있다. 장문의 글에는 오송역 유치의 전설적 영웅담이 적혀 있다.
<오송역>은 교통·철학 연구자인 전현우 서울시립대 자연과학연구소 연구원이 호남고속철도의 분기점이 되는 역이 어떻게 오송역으로 결정됐는지 그 역사적 배경과 과정, 원인을 비판적으로 좇는 책이다. 저자는 “밖에서 보기엔 굉장히 이상한 의사결정이어서 데이터를 찾아보다가 책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저자는 역사적 사건과 백서, 문서, 언론 보도, 지도 등을 통해 오송역의 출발을 짚는다. 충북의 ‘저발전 신화’에서 시작된 오송역 유치 이야기는 세종시가 계획되기 훨씬 전인 1989년부터 본격화된다. 당시 경부선 고속철도를 주축으로 하는 한국철도계획이 만들어졌다. 초기 계획에 ‘오송’은 없었다. 경부고속선은 천안과 대전을 거의 직선으로, 호남고속선도 그보다 서쪽인 천안에서 공주를 거쳐 익산으로 내려오는 코스였다. 경부선 본선 코스에서 버림받았다는 걸 알게 된 충북은 들고일어났다. 특히 충북 인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청주의 의지가 컸다고 저자는 말한다.
대표적 움직임이 1991년 13대 정종택 당시 민자당 소속 국회의원을 중심으로 논의된 ‘부강터널 및 신탄진~배포 사이 협곡 폭파 협박’ 사건이다. 경부고속철도 본선을 청주 안으로 돌리지 않으면 터널을 폭파시키겠다고 했고, 노태우 정부 당시 당국자들은 철도노선을 다시 검토했다. 폭파를 계획한 이들은 ‘감옥 갈 각오’까지 했다고 한다.
이 사건은 간혹 지역언론에서 ‘충북 공직자들의 영웅담’으로 인용된다. 1995년 호남고속철도 분기점을 본격 논의할 때도 교통개발연구원 등에서 천안아산을 호남선 분기점으로 고려하자 충북은 공청회 무효 주장, 도의회와 청주시의회 의원들 집단 탈당, 건설교통부 항의방문 등 단체행동에 나섰다. 교통개발연구원을 용역에서 배제하라는 요구도 한다.
노무현 정부가 구상한 신행정수도 세종이 헌법재판소 위헌으로 ‘행정복합도시 세종시’로 격하된 일도 ‘오송역’ 지정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지역균형발전을 내세우면서 신행정수도를 사수해야 했던 충청권 입장에서 오송역은 단순히 호남선을 가르는 분기점이 아니었다. 오송역은 행정수도와 연동된 존재로 격상됐다.
저자는 정치적 맥락도 오송이 호남선 분기역으로 지정되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말한다. 경부선 계획을 검토할 때 자민련 출신의 김종필 당시 총리가 역할을 했다. 결정적으로 오송 분기역으로 지정된 건 2004년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의 역할이 컸다고 짚는다.
2004년 총선 결과 충북 1위는 열린우리당이었다. 자민련이 흔들렸던 것이다. 2위를 차지한 한나라당은 충북을 공략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박근혜 당시 대표는 ‘오송역’을 당론으로 정했다. 평가위원은 각 지자체장이 추천하기 때문에 지자체장 입김이 반영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 김태호 경남지사 등 한나라당 소속 지자체장이 60% 이상이었다. 이미 패색이 짙다고 판단한 오송의 경쟁자 ‘충남’ ‘호남’ 지역 평가위원들은 퇴장해버렸다. 이 결과 오송은 19개 항목에서 압도적 1위를 기록하며 최종 승리를 거머쥔 것. 정교한 평가체계는 평가단 구성방식 앞에서 무력했다.
저자는 단순히 오송역 지정 배경만 서술하지 않고, 현재의 문제점과 반성적 논의까지 거론한다. 특히 저자는 충북이 ‘오송역’을 주장하면서 내세운 ‘국토균형발전’과 ‘오송을 가운데로 한 국토 X축 발전’이라는 두 가지 명분을 모두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세종시로 직접 철도를 연결하지 못하면서 수도권 인구가 유입되지 못했고, 강원도와 호남의 연결 수요가 많지 않아 국토 X축 논의도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저자가 주장하는 핵심은 계획과 다른 결과가 나왔다면 반성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오차 수정’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가장 중요한 점은 세종시 접근성을 높이고 수도권 인구를 유입시키기 위해서 철도로 이동성을 높여야 한다는 것. 저자는 미호강과 BRT노선이 교차하는 세종시 북쪽 지역에 KTX역을 신설하고, 세종과 공주 등 충청지역의 소도시를 촘촘하게 이을 철도노선을 추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책은 정책이 결정되는 과정을 ‘문제’ ‘정책’ ‘정치’ 등의 항목으로 나눠가며 냉철하게 짚어내고 해결책도 명쾌하게 제시한다. 그렇기 때문에 반론이 나오기 쉬운 측면도 있다. 일각에서는 세종역을 추가하고 노선을 신설할 때 들어가는 추가 비용과 효과를 고려하면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럼에도 오송역 유치에 앞장선 인물들이 현존하고, 모두가 불만을 느끼지만 개선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독립적 연구로 거침없이 문제를 파헤친 <오송역>은 분명 ‘문제작’이자 ‘화제작’이다.
임지선 기자 visi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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