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이 ‘노조 혐오’한 노동절, 전태일의 비극은 재현됐다
“소수만이 기득권을 누린다면 그것은 자유가 아닌 특권이다. 진정한 노동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노사법치주의를 확립하고, 우리 헌법 정신에 위배되는 기득권의 고용세습은 확실히 뿌리 뽑을 것이다. 더 많은 양질의 일자리가 창출되도록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노동을 유연화하고 노동시장의 이중 구조를 타파할 것이다.” ㅡ5월1일 윤석열 대통령 페이스북
5월1일은 전세계 노동자들이 단결하고 연대하는 ‘노동절’이다. 1886년 5월1일 미국 시카고 공장 노동자들이 8시간 노동 법제화를 요구한 투쟁이 시초가 됐다. 한국 사회도 이날을 노동절로 지킨다. 비록 ‘노동’ 단어를 죄악시하는 냉전의 잔재로 ‘근로자의 날’이라는 명칭을 달았지만, 별도 법에 휴일로 지정해 “노동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근로자의 노고를 위로하는” 날로 한다.
대통령 상상 속 ‘가짜 약자’ ‘진짜 약자’
그러나 노동조합과 노동자를 기득권과 비기득권, ‘가짜 약자’와 ‘진짜 약자’로 이분화하는 윤석열 대통령의 화법은 노동절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윤 대통령이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기득권 노조’를 에둘러 비판한 그날,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의 한 간부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건설사에 조합원 채용을 요구했다가 업무방해 혐의를 받은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 지대장 양아무개(50)씨다.
양씨는 그날 오후 3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앞두고 아침 9시35분께 춘천지법 강릉지원 앞에서 몸에 휘발성물질을 끼얹고 분신했다. “정당한 조합활동을 했는데 업무방해와 공갈이라고 한다. 제 자존심이 허락되지 않는다.” 그가 유서에 남긴 마지막 말이다.
윤 대통령이 노동조합을 기득권에, 비조합원을 약자에 빗대어 발언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윤 대통령은 “민주노총 산하 철도노조는 조직화되지 못한 산업현장의 진정한 약자들보다 소득과 근로 여건이 더 낫다”(2022년 11월29일 국무회의)거나 “대기업 중심의 조직화된 노조와 조직화되지 못한 영세기업 노동자들의 현실에서 노-노 간 착취 구조가 비롯됐다”(2022년 12월 수석비서관회의)며 노조를 기득권으로 호명하곤 했다. 윤 대통령은 5월1일에도 “소수만이 기득권(일할 권리)을 누린다면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특권”이라며 노조만이 일할 권리를 독점한 양 비판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의 상상 속 철저히 분리된 두 세계는 현실에선 쉬이 만난다. 예를 들어 대다수가 일용직인 건설노동자는 짧게 1~2주, 길면 수개월의 계약을 마치고 실직한다. 1년에 대여섯 차례 재취업할 때마다 중간소개업자인 이른바 ‘오야지’에게 소개비를 몇 푼씩 쥐여줘야 하고 그마저도 하청업체가 직고용을 꺼려 2차, 3차 하청업체로 불법 취업하는 일이 만연하다.
이런 현실에서 민주노총 건설노조의 조합원 채용 요구는 중간 소개료를 없애고 일감을 고정적으로 유지하는 최소한의 장치다. 건설노조는 2021년 하청업체 협회 쪽과 단체협약을 맺고 △유급휴일수당 인상 △토요일 오후 3시 퇴근 △노동자 신체에 맞는 안전보호구 지급 등을 명문화하기도 했다.
분신한 강원건설지부 간부 양씨가 맡은 일도 조합원 채용 요구였다. 검찰은 그를 비롯한 노조 간부 3명의 활동을 조합원 채용 강요 행위(업무방해)로, 조합원 임금인상분 등 8천만원은 폭력으로 뜯어낸 ‘공갈’로 봐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은 이를 모두 기각했다.
정흥준 서울과학기술대 교수(경영학)는 “대통령의 인식 속 노조는 ‘독과점 지위’뿐이고 이해관계자 대변이나 노동 처우 개선, 부의 재분배 기능 등은 무시된다. 이렇게 계속 가면 노조를 배제한 채 노동정책을 추진할 수밖에 없고 임기 내내 갈등과 대립, 희생을 안고 갈 위험이 크다”고 지적했다.
불분명한 고용세습 부각, 노동탄압 외면
윤 대통령은 노동절 메시지에서 “기득권의 고용세습을 뿌리 뽑겠다”며 단체협약의 자녀 채용 조항도 재차 문제 삼았다. 그는 2023년 1월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오찬에서도 “고용세습은 현대판 음서제로 노동시장 불공정의 상징이자 불법적인 채용 비리”라며 고용세습이 실제 이뤄지는 것처럼 발언했다.
그러나 고용세습 논란의 실체는 불분명하다. 2018년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이 단체협약에 ‘정년 퇴직자·25년 장기근속 조합원 자녀의 우선 채용’ 조항을 둔 사실이 하태경 당시 바른미래당 의원의 문제제기로 처음 드러났다. 당시 현대차 노조는 “실제로 해당 조항이 적용된 적은 없다”고 해명한 뒤 조항을 삭제하기로 했다. 노동부는 2022년 7월 관련 조항을 남겨둔 63개 기업을 찾아내기도 했으나, 해당 조항을 실제로 활용해 자녀를 채용한 사례는 아직도 나오지 않았다.
“노동계와 국민 사이에 거리감이 있는 것은 사실이고 노동운동 내부의 자성도 필요하다. 그러나 정부가 계속 노동계의 약점을 부각하고 갈등하는 것이 과연 노동개혁에 도움이 될까 하는 의문점도 남는다. 노동개혁이란 기본적으로 노사 이해관계자의 동의와 국회의 법 통과가 있어야 하는데 노조와 갈등하고 야당과 전혀 소통하지 않으면서 진정 노동개혁을 할 의사가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박태주 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상임위원의 지적이다.
반면 그 실체가 비교적 구체적으로 드러난 기업들의 노동탄압 행위에 대해 윤 대통령은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고용세습 논란이 인 2018년에는 검찰 수사로 삼성그룹의 전사적 노조 와해 전략이 드러났다. 삼성그룹은 2023년에도 노동조합을 건너뛰고 노사협의회와 교섭하는 등 노조를 무력화하고 있다. 비슷한 시기인 2017년에는 에스피씨(SPC)그룹 ’파리바게뜨’ 제빵기사의 불법파견 논란이 불거졌다. 이를 해결하고자 설립된 자회사 ’피비파트너즈’에서도 2021년 간부들에게 현금을 줘가며 제빵기사들의 민주노총 탈퇴를 유도한 사실이 적발됐다.
“노조 때리기로 4년 갈 순 없어”
윤 대통령은 “노동을 유연화하고 노동시장의 이중 구조를 타파할 것”이라며 ‘노동개혁’도 재차 강조했다. 그는 2022년 12월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노-노 착취 구조 타파가 시급하다”며 정규직 노조를 노동시장 양극화의 주범으로 지목한 바 있다.
최영기 한림대 객원교수(전 한국노동연구원장)는 “아이엠에프(IMF) 위기 이후 비정규직이 해고당할 때 투쟁력 있는 대기업 노조가 도와주지 않아 비판받은 것은 맞다. 그러나 지금 투쟁력 있는 노조는 학교 비정규직이나 건설노조, 플랫폼 배달기사 노조, 택배노조 등 비정규직 하청 노조들이며 이들의 투쟁 요구를 어떻게 받아들일지가 화두다. 대기업 노조 얘길 지금도 반복하는 것은 상황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법치주의’ 이상의 노동 의제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대통령으로서 맞이하는 첫 메이데이인데 여태껏 하던 얘기의 반복에 불과했다. 법치주의라는 의제만으로 4년을 더 지낼 수는 없다. 노-정 갈등에서 대화 국면으로 넘어가며 새롭게 노동 의제를 모색해야 할 때다.”
윤 대통령은 1년 전까지만 해도 “노동의 가치가 충분히 존중받고 노동자 권익이 실현되는 사회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취임 전인 2022년 5월 1일 메이데이 때 페이스북 메시지를 올려 “대한민국 경제가 오늘의 번영을 이룩한 데는 근로자의 땀과 노력이 결정적이었다”며 노동의 가치를 추켜세웠고 “인간의 땀과 노력은 그 자체로 숭고한 가치를 갖고 있다.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고 노동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는 더 이상 지속 가능한 발전을 도모하기 어렵다”고도 말했다. 그러나 취임 1년 만에 대통령의 구호는‘노동의 가치 존중’에서‘기득권 타파’로 바뀌었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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