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 아이돌 생태계에서 '팬'과 '아이돌'은 어디에 있나
[이동준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방문연구원(micsdj2@naver.com)]
신인 그룹 피프티피프티는 미국 빌보드 메인 차트에서 <큐피드>로 6주 연속 1위를 차지하고 핫 100 차트에서 41위를 기록하는 등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특히 맴버 시오는 연습생 시절을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의 구절을 곱씹으며 견뎠다고 한다. 다재다능하고 실력까지 있는데다가 인성도 뛰어난 아이돌의 이미지는 단순한 상업주의의 비판을 넘어서는 감동을 자아내기도 한다. 지난 26일 tvN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한 태양은 성실함을 자신을 가수로 만든 초심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연습생 시스템에 대한 많은 논란과 비난이 있지만, 자신의 꿈을 향한 노력은 쉽게 비난받아서는 안 된다. 문제의 개선을 위해서는 문화산업적 특성과 구조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최근에는 자연스럽게 아티스트라고 일컬어지는 아이돌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항상 너그러웠던 것은 아니다. 박진영은 1994년 모 방송국 국장이 의상을 지적하면서 "연세대를 졸업한 가수니 ‘딴따라’처럼 옷을 입지 말라"고 하자 보란 듯이 자신의 2집 제목을 '딴따라'로 지었다고 한다. '딴따라'는 하층 서커스 단원을 지칭하는 영어에서 유래해 무대에서 공연하는 연예인을 경멸적으로 지칭하는 용어였다. 아이돌의 등장은 보수적인 대중음악계에 충격이었다. 탄탄한 팬층을 기반으로 신화를 만들어 세간의 인식을 바꾸어 놓았다. 이수만이 1999년 HOT를 두고 라이브도 못하는 게 가수냐는 언론의 비판에 엔터테이너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그 이후 아이돌은 만능 엔터테이너로 불리며 가수 이상의 재능과 끼가 존재함을 증명했다. 2010년대 집중된 해외 팬덤의 증가는 서구 언론의 비판으로 이어졌다. 연습생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재능 계발을 장려하며 브랜드와 스타 이미지를 강조하는 동시에 아이돌의 사생활을 엄격하게 통제해 효율적인 운영을 도모하는 아이돌 시스템은 지나친 아이돌의 상품화, 음악적 장르의 획일화를 조장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대중음악의 장르와 스타일에 다양성이 부족하고 획일화된다는 비판은 1940년대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대표적 학자인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가 '문화산업(culture industry)'이라는 개념을 처음 언급하면서 등장한 논리다. 미학적, 장르적 차원의 음악에 치중한 유럽 중심적 사고는 다양한 취향을 바탕으로 능동적 소비를 하는 현대 대중의 등장과 함께 비판받았다. 경제성장을 위한 문화정책 용어로서의 문화산업(cultural industries)이라는 변경된 의미에서 볼 수 있듯 예술과 문화의 상품화는 더는 부정적 은유가 아니다. 유네스코의 창의 경제 보고서도 상품화 과정이 반드시 문화적 표현의 퇴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역설적으로 유럽 및 아시아의 다양한 국가에서 K-pop 성공의 문화 산업적 특성을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자국 산업을 부흥시키기 위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또 하나의 대표적인 비판인 아이돌은 예술성과 창의성이 부족하다는 인식 역시 2010년대부터 등장한 빅뱅과 BTS 등 개성과 예술가적 자아가 강한 아이돌의 등장으로 다소 누그러들었다. 과거 아이돌의 의견이나 개성과 무관하게 기획사의 강제적인 하향식(Top-down) 브랜딩 방식에서 벗어나 최근에는 기획사들이 개인 정체성에 기반을 둔 진정성 중심 브랜딩 전략으로 전환하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특히 빅히트 시절의 방시혁은 BTS의 데뷔과정과 연습생 시절 프로듀서 피독과 함께 각 맴버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키워 자신의 예술적 정체성을 형성할 수 있도록 장려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MBC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한 (여자)아이들 리더 소연이 다음 앨범의 콘셉트를 설명하는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하는 모습이나 스트레이 키즈의 프로듀싱팀 3RACHA가 앨범 전체의 작사와 작곡에 참여한 사례는 변화한 아이돌의 예술적 창작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최근 SM의 인수전에서 드러난 산업계의 변화는 많은 우려를 제기하게 한다. SM 3.0의 핵심전략인 IP 다각화는 앨범, 음원, 공연, 출연 등 아티스트 비즈니스 중심의 1차 IP 비즈니스 모델에서 굿즈, IP 라이선싱, 영상, 팬 플랫폼 등 2차 IP 비즈니스 모델로 전환하고 집중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다. MD(merchandise)상품은 이미 오래전부터 진행되어온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수익전략이다. 그러나 SM의 새 전략에서 원천IP인 아티스트의 관리를 개선하겠다는 언급 수준은 매우 빈약하다. IP는 지적재산(Intellectual Property)이라는 뜻으로 원래는 특허나 상표권 또는 저작권의 보호를 위한 법률용어다. 마블 스튜디오가 어벤저스와 같은 만화 캐릭터의 개발과 수익화를 설명하며 이 용어를 쓰자 이후 국내 미디어 업계도 사용하고 있다. 두드러지게는 트랜스 미디어 스토리텔링 전략을 위한 용어로 등장했다. 그런데 아이돌과 캐릭터는 다르다. IP로서의 아이돌의 캐스팅, 데뷔, 그리고 관리는 수익성에 기반을 둔 주주이익 중심 의사결정에 의존하며 너무 강한 개인의 개성은 다양한 상품화를 위해 지양된다.
아티스트와 유통사가 개별 계약을 처리하는 구조에서 회사는 아티스트로부터 IP 다각화에 대한 전반적인 허락을 구해야 하고 매번 새로운 계약으로 저작권을 연장하고 그에 따르는 비용을 지급해야 한다. 그러나 전속계약과 360도 계약의 특성상 아이돌은 협상력을 갖지 못한다. IP 다각화와 수익화 전략에 따라 기획사가 1차 IP 사업(음반/음원/공연/출연)인 아티스트 중심 비즈니스 모델에서 2차 IP 사업(MD, IP라이선스, 영상, 팬 플랫폼)으로 전환과 집중을 한다면 분명 수익은 커질 것이다. IP 다각화는 회사의 아이돌에 대한 통제와 지배력을 강화할 수밖에 없다. 하이브와 SM의 플랫폼 제휴 역시 산업계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최근 SM 아티스트의 위버스 입점이 성사되었고, 하이브는 위버스에 프라이빗 채팅 기능을 추가한다고 발표했다. 두 회사의 전략적 제휴는 기능적 플랫폼 통합이나 지분 교환을 통한 합병에 따라 지배력의 양적 증가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플랫폼 비즈니스의 특성상 선도 기업은 초기에는 확장성에 몰입하고 후기에는 폐쇄성, 상업화의 전략을 취한다. 팬덤은 다양한 형태의 편의와 즐거움을 누리겠지만, 플랫폼 중심의 팬덤 커뮤니케이션은 자발적이고 자유로운 연대나 창조적 재생산의 주체로서 본연의 지위를 잃고 그 결과 K-pop 팬덤의 사회적 기능 제한으로 이어질 수 있다.
2000년대 음반산업(recording industry)으로 불리던 음악시장(music industries)이 디지털화하면서 실물 앨범 판매량이 감소했고, 그 결과 많은 음반사가 폐업했다. 엔터테인먼트 회사들은 스타 중심의 시장 구조로 전환하여 소장품으로서 실물 음반의 가치를 유지하는 전략을 취했다. 음악 중심에서 스타 중심의 시장구조로의 전환에 성공한 K-pop 산업은 글로벌 음악 시장이 구독제 스트리밍 서비스로 재편되었음에도 앨범 중심 음악 제작과 실물 음반의 구매 소장품으로서의 가치를 유지할 수 있었다. 팬으로서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굿즈를 소유하거나 좋아하는 아이돌을 지원하기 위해서 또는 이벤트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서 굿즈를 구매하는 행위 자체는 새로운 구매 경험을 제공한다. 음반이 소장품으로서 가치를 여전히 지켜간다는 점도 K-pop 산업의 양적 성장에 주요한 역할을 했다. 반면, 과도한 구매를 자극하는 노골적인 마케팅이나 품질에 맞지 않는 굿즈의 가격 책정 등 부작용을 낳는 것도 현실이다. 일부 연예기획사가 친환경 소재와 디지털 포토카드와 같은 대체재를 제품에 도입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다.
최근 K-pop의 지속 가능 성장 논의가 불거지고 있다. 그러나 지속 가능 경영이 무엇인지는 뒷전으로 보인다. 지속 가능 경영이란 '조직과 이해관계자와의 의사소통을 증진'하고 '경제적, 사회적, 환경적 지속 가능성을 추구함'을 의미한다. 적절한 성장과 유지는 지속 가능성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여기서 우리가 아이돌을 아티스트로 부르지만 어떻게 인지하고 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반대로 팬의 의미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 K-pop 산업은 주주 중심 자본주의의 전략적 위험, 아이돌의 자기 정체성 문제, 팬덤의 역할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함으로써 보다 포용적이고 지속 가능한 K-pop 생태계를 위한 고민을 해야 할 것이다, 아이돌의 브랜드와 이미지 관리가 주주 가치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를 마냥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없다. 엔터테인먼트사의 IP 전략과 플랫폼화는 아이돌에 대한 통제와 지배력을 강화한다, 엔터테인먼트 기업은 상장기업으로 주주 중심의 자본주의에서 벗어날 수 없지만, 팬들은 엔터테인먼트 기업을 넘어 문화산업 생태계를 공유하고 있다. 그런데 엔터테인먼트 기업의 플랫폼화된 커뮤니티는 팬들의 유입과 이탈을 더욱 어렵게 만들면서 아티스트와 팬 모두 수동적인 역할에 머무르도록 강제한다. 너무 이상적인 기대일지 모르지만, 진정한 K-pop의 지속가능성장은 내수 기반의 중소 생태계로의 분산화와 팬덤의 자생적 커뮤니티에 기반을 둔 탈구조화로 성취될 수 있을 것이다.
[이동준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방문연구원(micsdj2@naver.com)]
Copyright © 프레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윤 대통령 '한미정상회담' 효과? 지지율 3%p 상승
- 이재명 "대통령이 야당 대표 빼고 원내대표 만나도 괘념치 않아"
- [단독] '단역배우 자매 사망사건' 가해자, MBC <연인>에 업무복귀
- 국민의힘, 태영호 중징계론 대두…'윤심'은 태영호 잘라내기?
- 간호법 '尹 대선공약' 논란되자 대통령실 "공식 약속 안했다"
- "윤 정부의 살인적 만행으로 얼마나 더 불에 탈 지 모른다"
- 용혜인, 국회서 '위드 키즈' 기자회견 … "노 키즈 존 없애야"
- "尹 정부 1년은 '퇴행과 폭주의 시간'…책임 있는 공직자 교체해야"
- 기독교 행사는 '공익'? 퀴어퍼레이드 '불허'한 서울시, 콘서트는 '허가'
- 이재명, 돈봉투 사건 질문에 "태영호는?" 반문…당내에서도 비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