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임창정 연루된 희대의 사기극이 불러온 ‘패닉’
‘진짜 배후’ 두고 키움·서울가스 회장님들 진실 공방도
(시사저널=이석 기자․조문희 기자)
프랑스계 증권사 '소시에테제네랄(SG)증권발(發)' 폭락 사태 파장이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다. 사태 초반만 해도 반대매매에 따른 단순 시세 급락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통정거래와 대리투자 등 주가조작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검찰과 금융 당국은 현재 주가조작 세력의 주범으로 라덕연 H투자자문 대표 등을 지목해 수사 중이다. 하지만 라 대표는 오히려 주가조작 배후로 김익래 다우키움그룹 회장과 김영민 서울도시가스 회장 등을 지목해 주목된다.
가수 및 배우로 활동 중인 임창정이나 이중명 전 아난티그룹 회장 등도 주가조작 세력에 가담한 게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다. 노홍철이나 솔비 등의 경우 주가조작 세력의 제안을 거절해 화를 면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임씨는 사건의 몸통으로 지목받는 H투자자문의 각종 투자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눈총을 받고 있다. 아난티 역시 "이중명 전 회장의 권유를 받았다"는 일부 투자자의 주장이 나오면서 주가가 급락했다. 그러자 이만규 아난티 대표는 입장문을 통해 "부친은 이번 사건으로 그동안 모았던 자산을 모두 잃고 두문불출하며 울고 계시다"면서 자제를 호소하기도 했다.
3~4거래일 만에 8조원 시가총액 증발
그러는 사이 피해 규모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관련 피해자들의 집단소송 대리를 맡은 한상준 변호사가 추정한 전체 피해 금액은 1조원, 1인당 피해 금액은 평균 10억원 이상이다. 투자금을 맡겼다가 피해를 본 투자자 역시 1500명으로 늘어나고 있다. 이 중에는 윤성태 휴온스그룹 회장 등 재계 인사와 가수 박혜경씨 등 연예인들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진다.
4월24일 시총 1조원 이상 기업들이 줄줄이 하한가를 기록한 게 이번 사태의 발단이었다. 삼천리와 서울가스, 대성홀딩스, 다우데이터, 하림지주, 선광, 다올투자증권, 세방 등 8곳이었다. 이전까지 이들 기업의 주가는 우상향 흐름을 보였다. 하지만 이날 이후 연일 하한가가 이어졌다. 불과 3~4거래일 동안 8개 회사에서 증발한 시가총액만 8조원대에 이른다. 모두 SG증권 창구를 통해 대량 매도 주문이 나왔다. 수사 당국은 주가조작 세력이 개입한 것으로 보고 수사에 착수했다.
공은 이제 검찰의 손에 넘어갔다.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 합동수사단은 당초 금융위 조사가 끝나면 자료를 넘겨받아 수사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예사롭지 않게 흘러가자 합동수사팀을 꾸렸다. 수사팀에는 금융위원회 자본시장조사과 직원과 금융감독원 조사 인력 20여 명이 포함됐다. 수사팀은 이번 사태에 가담한 의혹을 받는 10명을 출국금지한 데 이어, 핵심 관련자들을 자본시장법상 시세조종행위 등 혐의로 입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의혹의 중심엔 라덕연 H투자자문 대표가 있다. H투자자문은 금융 당국에 신고하지 않은 미등록 투자자문 업체로 알려졌다. 수사팀은 라 대표를 비롯한 주가조작 세력이 3년여 전부터 다단계 방식으로 투자자들을 모집한 후, 통정거래를 하며 8종목의 주가를 인위적으로 조종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통정거래란 매수자와 매도자가 미리 짜고 정해진 가격에 주식을 사고파는 거래를 말한다.
라 대표는 자신도 피해자라는 입장이다. 라 대표는 다수의 언론 인터뷰에서 미등록 투자업을 운영하고 대리투자를 한 사실에 대해선 인정했지만, 통정거래 등 시세조종 의혹은 전면 부인했다. 대신 주가조작 세력의 배후로 김익래 다우키움그룹 회장을 지목했다. 자신은 하한가 폭탄 사태로 400억원 규모의 손실을 봤는데, 김 회장은 수천억원 규모의 이익을 봤다는 취지에서다. 라 대표는 김 회장이 공매도로 시세차익을 올렸고 이 과정에서 키움증권이 증거금을 납입받지 않고 거래를 성사시켜준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했다. 라 대표는 이 같은 의혹을 토대로 김 회장을 고소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금감원은 최근 키움증권에 대한 검사에 착수한 상태다.
키움그룹 측은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라 대표에 대해서도 명예훼손 혐의로 맞고소할 예정이다. 김 회장은 다우데이타 폭락 2거래일 전인 4월2일 시간외 대량매매로 140만 주(3.65%)를 주당 4만3245원에 처분해 605억원을 확보했다. 김 회장의 지분율이 26.66%에서 23.01%로 낮아졌지만, 매매 타이밍은 '기막힌 우연'이라는 게 키움그룹 측의 공식 입장이다. 자녀의 증여세 납부를 위한 재원 마련 차원에서 주식을 매각했을 뿐 시세조종은 없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김 회장이 주식을 대거 매입한 시점도 폭등 직전이란 점에서 의구심을 키운다. 서울신문 보도에 따르면 김 회장은 지난해 6월부터 3개월가량 다우데이타 주식 3만4855주를 집중 매입했다. 김 회장이 주식을 집중 매입한 것은 2008년 이후 14년 만이다. 이후 4개월 만에 다우데이타 주가는 4배 가까이 폭등했다. 결국 폭등 직전 주식을 대량 매입하고 폭락 직전 되판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증권사 관계자는 "신내림을 받은 게 아니면 우연이라고 하기엔 타이밍이 지나치게 기막히다"고 평가했다.
김 회장 외에 '형제주'로 통하는 서울도시가스도 의심의 눈초리를 사고 있다. 김영민 서울도시가스 회장은 4월17일 시간외 매매 방식으로 서울가스 주식 10만 주를 팔아 456억9500만원을 현금화한 것으로 파악됐다. 수사팀은 다우데이타와 서울도시가스를 포함해 하한가 폭탄을 맞은 8개 기업의 최대주주가 사전에 주가조작 여부 등을 인지했는지와 공매도 세력 연루 가능성 등을 철저히 조사하겠다는 입장이다.
투자자들은 피해자인가, 피의자인가
이 밖에 1500여 명 규모로 알려진 H투자자문 투자자들이 피해자인지 공범인지 여부를 가르는 것도 쟁점 중 하나다. 임창정, 박혜경 등 유명 연예인과 이중명 전 아난티그룹 회장 등 정·재계 인사들이 이번 사태에 투자한 이들로 알려졌다. 이들 모두는 현재 자신을 '피해자'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들이 시세조종을 사전에 인지하고 묵인 또는 방조했다면 피해자가 아닌 피의자가 될 수 있다는 게 증권가 관계자들의 공통된 해석이다. 시세조종 행위를 금지하는 자본시장법 제176조는 '자기가 매도·매수하는 것과 같은 시기에 그와 같은 가격 또는 약정 수치로 타인이 그 증권 등을 매수·매도할 것을 사전에 그 자와 서로 짠 후 매도하는 행위(통정거래)'를 금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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