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서 발견한 서동 전설..日 최고 정원 겐로쿠엔 [함영훈의 멋·맛·쉼]

2023. 5. 5.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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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알펜루트 여행의 시작점
이시카와현 가나자와市 탐방기

[헤럴드경제, 가나자와=함영훈 기자] 일본 주부(中部:중부)지방 북쪽, 도야마현 쿠로베 알펜루트를 중심으로 포진한 이시카와-기후-도야마-나가노현은 ‘일본의 지붕’, ‘일본 알프스’로 불린다.

위도는 한국의 태백-울진-영덕과 비슷하지만 고산지대이기 때문에, 백두대간 분기점인 강원남부 태백이 고위도 함경 북부 청진 기온과 비슷하듯, 쿠로베 기온도 아오모리 북부-삿포로 남부와 비슷하다. 중부지방인 평창과 나가노가 동계올림픽을 충분히 열 수 있었던 이치와도 맥락이 통한다.

수륙 양용 다리를 가진 석등은 겐로쿠엔의 상징물이다.
서동의 금마 마 캐기-금덩이 발견 스토리를 닮은 일본 전설의 진원지는 겐로쿠엔 표주박연못으로 알려진다. 황금연못 도시 답게 황금 아이스크림을 판다.
정원내 에도시대 고택. 교토 외에 가나자와에 드물게 남아있다. 문화유산 보존이 잘 된 히가시차야-겐로쿠엔 등을 가진 가나자와는 ‘리틀 교토’라고 불린다.

이들 고산 지대 바로 아래 평지엔 어떤 문화가 숨쉴까. 한국 백두대간 중간지점엔 정선의 문화예술, 영주의 선비문화, 동해-삼척의 계곡-바다 버라이어티 관광자원이 있는데, 일본의 고산지대 아랫고을 역시 다채로운 문화가 꽃피고 육해공 풍부한 물산이 산출되는 관광도시의 면모를 보인다.

5일 일본 알펜루트 전세기 패키지를 운영중인 모두투어에 따르면, 주부지방 지도 상 왼쪽(서쪽)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하얀 신들의 산 하쿠산(白山:2702m) 아래에 있는 이시카와현, 알펜루트의 서편인 기후현과 도야마현, 동편인 나가노현이 차례로 이어지며 하나의 관광벨트를 형성한다.

▶이시카와현 겐로쿠엔의 서동 같은 전설= 오늘은 알펜루트의 출발지점, 이시카와현 가나자와(金澤)시에 있는 일본 최고의 정원, 겐로쿠엔(兼六園) 얘기를 전한다.

6개의 장점을 겸하고 있는 정원이라는 뜻의 겐로쿠엔은 금이 나오는 연못이라는 뜻의 가나자와 중심부에 있다. 원래는 연못이 아닌 산지였고, 연못은 마에다 영주 가문의 과학적 수로기술로 생긴 인공호수이다. 겐로쿠엔은 6개 매력을 겸하는 정원이라는 뜻으로, 전국에 36곳 밖에 되지 않는 특별명승이다.

다른 지역보다 평균기온이 낮은 지역이어서 그런지, 연분홍 만첩매가 4월 하순에도 여전히 피어있었다.

나름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곳임에도 한국관광100선에 들지 못하는 명소와 명승이 수백곳 있는데, 남한의 3.7배인 일본에서 36선에 들었다는 것은 대단한 가치를 지닌 명승이자 문화유산이다.

‘황금 연못’ 가나자와의 전설은 백제의 서동-선화 이야기를 닮아, 한국여행자들에게 와락 친근감이 돋는다.

옛날 이 고을엔 마를 캐서 생계를 이어가는 건실한 청년이 살았다고 한다. 그런데 한 부자가 꿈에 ‘딸을 이 청년과 결혼시키면 부귀 영화를 누릴 것’이라는 계시를 받고 멀리서 이 청년을 찾아와 자기 딸과 결혼해줄 것을 청했다. 청년이 수락하자, 부자는 딸이 어려움 없이 살아가도록 금덩이를 두고 돌아갔다.

신랑이 된 청년은 결혼한지 얼마되지 않아, 장인이 두고간 금덩이를 버렸다고 한다. 신부가 당황해하며 이유를 묻자, 청년은 “내가 마를 캐는 곳에 가면 이런 노란 돌이 엄청 많아서, 장인께서 두고 가신 것을 버렸다오”라고 말하는게 아닌가.

신부는 신랑에게 그 노란 돌이 매우 진귀한 것임을 알려줬고, 부부는 다시 그곳(설화상 지점은 겐로쿠엔 내 표주박 연못 일대로 비정됨)으로 가서 사방에 널린 금을 캐다가 큰 부자가 되어 성공을 했다고 한다.

이는 사가에 있던 시절 마를 캐서 생계를 유지하던 백제 무왕(서동)의 금마(金馬) 이야기와 매우 흡사하다. 세력싸움에서 밀린 왕족, 무왕은 마를 캐다가 발견한 금덩이들을 중앙 정계 진출의 정치자금으로 활용해 성공을 거두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겐로쿠엔 가는 길

서동의 아들 의자왕이 신라에 패배한 뒤, 서동의 손자 부여풍을 중심으로 한 백제부흥세력이 동맹국 일본에서 재기를 노리며 터잡았음은 역사적 사실이다. 혹시 그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회자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시카와와 가까운 교토·나라 일대에 거점을 잡아 세력을 키운 뒤 고국에 다시 진출한 백제부흥세력의 계승자들은 훗날 완산주(전주·완주)를 중심으로 후백제를 세웠다.

어쨌든, 가나자와의 대표 아이콘, 겐로쿠엔에는 황금전설 때문에 황금 아이스크림도 판다. 특제는 2만원, 일반 황금아이스크림은 1만원이다. 조금 비싸도 추억이라 여행자들이 줄을 선다.

겐로쿠엔 주변 상가 황금아이스크림 가격표

▶여섯가지 정원의 덕목을 모두 갖춘 곳= 1774년 만들어진 겐로쿠엔의 여섯가지 강점 중 하나는 면적이 11만6000㎡로 매우 넓다는 점이다. 정원들이 많은 히로시마나 오카야마의 정원은 그리 넓지 않다. 사람들의 섬세한 손길속에 예쁘게 만든 점, 물이 풍부하고 곡선의 물흐름이 수려하다는 점이 각각 두, 세번째 장점이다.

호젓한 자연의 특성을 그대로 갖고 있고, 고색창연한 정취를 품고 있으며, 약간 높은데 있어서 고을을 굽어보는 조망이 좋다. 이 여섯 가지가 정원의 조건인데, 겐로쿠엔이 다 가졌다고 당대 동아시아 최고 전문가가 평했다고 한다. 이곳은 오카야마현의 고라쿠엔, 미토현 가이라쿠엔과 함께 일본 3대 정원 중 하나로 꼽힌다.

고을의 중심부가 높은 곳에 있어 강우량 많은 지역임에도 겐로쿠엔 일대에 물이 없자, 성주였던 마에다 2세가 1630년 무렵, 물을 끌어오는 수로공사를 했다. 정원 만들기라는 거창한 플랜이 아니었다가, 정원으로서의 공사를 본격화한 것은 1676년이었다. 정원 조성은 170년에 걸친 보완작업 끝에 오늘날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왜 거기서나와= 축구장 14개의 크기에 수많은 나무와 연못, 작은 섬, 물길, 폭포, 분수가 있고, 아주 오래된 찻집도 있다.

한 다리는 연못 속에, 또 다른 다리는 땅 위에 둔 석등이 이 정원의 대표적인 명물이다. 다리 길이는 다르지만 평형을 유지하며 석등을 떠받치는 모습이 장하고 지혜로워 보인다.

다른 지역보다 평균기온이 낮은 곳이어서 그런지, 연분홍 만첩매가 4월 하순에도 여전히 피어있었다.

겐로쿠엔의 석안정 찻집과 표주박연못, 그리고 폭포

겐로쿠엔은 중심부의 안개 연못, 정원의 초기 조성지인 표주박 연못 히사고이케(瓢池), 비취 폭포 미도리타키(翠滝), 다리를 건너면 장수한다는 기러기 컨셉트의 안행교 간코바시(雁行橋), 폭포 옆 바다돌탑 가이세키토(海石塔) 등 자연을 닮은 조형물로도 유명하다. 이 돌탑은 가나자와성의 정원에 있던 13층 돌탑의 일부를 이전했다는 설과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알펜루트 일대를 관할하던 성주 마에다 도시이에게 선물했다는 설이 있다. 다만 나가노 쪽은 이승엽선수와 한솥밥을 먹고 일본야구 감독에 오른 오가사와라 가문 관할지역이다.

연못 가에는 아주 오래된 찻집 석안정(夕顔亭)이 멋들어지게 착상해 있다. 석안정 보다 더 먼저 생긴 150년 된 찻집 내교정(内橋亭)도 있다. 이곳 창가에서 차를 마시면, 날이 좋아서, 날이 적당해서, 비가 와도, 언제든 멋진 정취를 흡입하며, 물멍, 숲멍할 수 있다.

유키즈리로 보호된 카라사키 소나무

▶유키즈리, 네아가리마쓰, 최초의 분수= 눈이 많이 내려 쌓이면 나뭇가지가 부러질까봐, 카라사키 소나무에 우산대 모양으로 촘촘하게 줄(유키즈리)을 묶어둔 것은 당시 설계자들의 지혜와 세심함을 엿보는 대목이다.

마에다 가문은 도시의 구릉지대인 이곳에 물을 끌어온다. 그리고 상층부 저수지를 형성한뒤, 아래로 물을 빠르게 흘려보내 수로를 좁힌 다음, 하층부에 관을 연결해 위로 꺾는 방식으로 일본 최초의 분수도 설치했다. 물은 3.5m 까지 치솟는다. 단조로운 구조이지만, 300여년 전 기준으론 기발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일본 최초의 분수

나무 뿌리의 자태 까지 감상하기 위해, 나무를 봉분 닮은 흙더미 위에 심은 뒤, 자라면서 뿌리를 잘 내리면 흙더미를 조금씩 떼어내는 조경 소나무 네아가리 마쓰(根上松)도 이 정원의 명물이다. 입이 네개라는 뜻이 아니라, 네는 뿌리, 아가리는 높인다는 의미다. 크고 작은 40여 개의 뿌리가 지상 2m까지 벌떡 일어선 듯이 나와 있다.

네아가리

겐로쿠엔에는 마에다 가문의 열두번째 종부(宗婦)가 가꾼 후기 에도시대 전형적인 고택 세이손가쿠(성익각)도 있다. 문화예술공간으로도 활용된다고 한다. 가문의 맏며느리는 만발한 꽃과 엘레강스 디자인의 조화로 이 고택을 지었다. 에도시대 고택으로는 교토와 함께 드물게 남아있는 문화유산이다.

정원 곳곳에는 연로한 자원봉사자들이 곳곳을 순찰하면서 여행자의 길잡이 노릇을 해주고 있었다.

납으로 지어 흰색인 가나자와성
겐로쿠엔 밖을 나서자마자 있는 가나자와성

겐로쿠엔에 붙어있는 가나자와성 역시 역사유적을 겸한 시민공원이다. 17세기 권력투쟁에서 밀려난 마에다 가문이 실권자의 눈 밖에 나지 않으려고 소박하게 짓다보니 천수각을 올리지 않은채 납작하게 지었다.

이 성의 기와를 납으로 만든 이유는 일본내 다른 호족이 침공해왔을 때 즉시 녹여 조총 총탄의 원료로 쓰기 위함이었다는 설이 전해진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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