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울증? 잘 관리하면 ‘불편’일 뿐…정신병 편견이 더 힘들어”[병을 이겨내는 사람들]

김상훈 기자 2023. 5. 5.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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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성원 한양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조울증 박창현 씨
박 씨 2회 입원 후 적극 치료받아
조울증, 극단 오가는 양극성 장애
약한 우울 증세일 땐 인지 못할 수도
조증 심하면 주변과 다툼 잦아져
임의로 약 끊으면 1년 내 재발 우려
가족-동료의 적극적 지지가 큰 힘
10년 전 조울증 진단을 처음 받은 박창현 씨(왼쪽)는 초기에는 두 차례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지만 이후 7년 동안 위기를 잘 극복하며 병을 이겨내고 있다. 박 씨의 주치의인 노성원 한양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박 씨는 병을 인정하면서도 맞서 싸우는 가장 모범적 사례”라고 말했다. 한양대병원 제공
2013년 9월 박창현 씨(30)는 군에 입대했다. 탄약 다루는 업무를 맡았는데 썩 내키지는 않았다. 의기소침해지더니 우울한 느낌도 들었다. 그러던 중 다른 부대로 파견 갈 일이 생겼다. 군대 홍보 영상을 만드는 일을 했다. 박 씨가 좋아하는 분야였다. 돌파구가 생긴 느낌이었다. 덕분에 우울감도 사라졌다.

3개월 후 부대에 복귀한 후 문제가 생겼다. 예민해졌고 짜증이 늘었다. 혈압도 높아졌다. 감정 통제가 쉽지 않아 부대원들과 자주 다퉜다. 군 병원은 박 씨에게 조울증 진단을 내렸다. 박 씨는 40일 동안 군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다.

박 씨는 퇴원한 후 별다른 문제를 보이지 않았다. 부대원들과도 원만하게 지냈다. 덕분에 2015년 9월 무사히 전역했다. 조울증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일까.

●“조증일 때 입원 치료 필요”

전역하고 한 달이 지나자 군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이 떨어졌다. 박 씨는 이상 증세가 없으니 괜찮으리라 생각했다. 약이 떨어지면 다시 병원에 가라는 의사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2016년 3월 조울증이 재발했다. 횡설수설했다. 환청이 들렸다. 익숙한 풍경이 슬라이드처럼 눈앞에 스쳐 지나가는 환시 증세도 드물게 나타났다. 박 씨는 가족의 손에 이끌려 한양대병원을 찾았다. 노성원 한양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입원 치료를 권했다. 결국 박 씨는 조울증으로 두 번째 입원했다.

조울증은 기분이 들뜨다가 우울해지며 가라앉았다가 흥분하는 양극성 기분장애다. 국내 유병률이 인구의 1.0~2.5% 정도다. 50만~130만 명이 평생에 걸쳐 한 번 정도는 발병할 수 있다는 뜻이다. 삶의 질이 크게 떨어짐은 물론 뇌의 구조적 변화로 인지기능 장애까지 생길 수 있어 반드시 치료를 받아야 한다.

우울증일 때는 축축 처지는 게 특징이다. 박 씨 또한 군 생활 초기에는 식사도 잘 못하고 말수도 적었으며 무기력했다. 다만 우울증 강도가 약할 때는 병을 인지하지 못할 수도 있다.

조증일 때 주변 사람과 불화를 일으키거나 지나치게 흥분하는 식의 문제 행동을 일으킨다. 이 때문에 조증이 심한 환자라면 입원 치료를 많이 한다. 하지만 박 씨가 그랬듯이 환자 대부분은 자신이 조금 예민한 정도라고만 생각한다. 노 교수는 “들뜨거나 의욕이 넘치는 환자도 많지만 그보다는 예민하고, 짜증을 많이 내며, 주변 사람들과 자주 충돌하는 환자가 더 많다”고 말했다.

●“약 끊으면 1년 내 재발 많아”

조울증은 발병하면 일단 첫 1년 동안은 약물을 투입하면서 환자 상태를 살핀다. 결과가 좋다면 투입 약물의 개수나 용량을 줄인다. 일반적으로 약을 완전히 끊지는 않는다. 그랬다가는 재발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노 교수는 “박 씨 재발 사례는 조울증 환자에게 나타나는 전형적인 패턴”이라고 진단했다. 스스로 증세가 개선됐다고 판단한 뒤 약을 먹지 않으며, 그 결과 1년 이내에 재발한다는 것이다. 이 경우 증세는 더욱 심해진다. 환청이 가장 흔하고 환시, 환각 증세까지 나타날 수 있다.

재발하면 완전히 2,3일 만에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물론 당사자는 증세가 악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 가족이나 친구가 지적하면 다툼으로 번진다. 스스로 병원에 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박 씨도 그랬다. 박 씨의 부모가 목적지를 속이고는 승용차를 몰고 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노 교수는 “이 또한 전형적인 패턴”이라고 했다. 자발적으로 치료하지 않기에 대부분은 병원 응급실을 거쳐 입원한다는 것이다.

박 씨는 의료진에게 폭력적 행동을 취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노 교수에 따르면 적잖은 환자들이 의료진에게 화를 내거나 위협적으로 행동한다. 특히 조증 환자들은 치료 과정에서도 대화의 맥락을 잡지 못하거나 산만하며 집중도가 떨어진다. 노 교수는 “환자 대부분은 목소리 톤이 높고, 하나를 묻는데 대여섯 개를 대답한다”고 말했다. 박 씨는 “돌이켜보면 나 또한 의료진의 질문에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빙빙 겉돌거나 검사에 집중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입원 치료를 하면서 이런 점들을 고친다. 그러기 위해서는 외부인의 출입이 제한된 폐쇄 병동에 주로 입원한다. 박 씨가 입원한 곳 또한 폐쇄 병동이다.

노성원 한양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조울증은 약만 먹고 잘 관리하면 일상 생활에 큰 지장이 없는 질병”이라며 “당사자의 노력과 주변 사람들의 적극적인 지지가 모두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양대병원 제공

●적응 훈련 마치고 35일 만에 퇴원

폐쇄 병동에서는 조울증 환자를 어떻게 치료할까. 노 교수는 박 씨에게 항정신병약물, 항불안제, 기분안정제를 투입했다. 이런 약물 치료와 함께 지속적으로 상담하면서 행동 변화를 관찰했다.

환자들은 대체로 처음에는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 상태가 호전된 후에야 과거의 자신이 보인다. 박 씨 또한 “입원 치료를 하고 증세가 개선되니 나 자신을 돌이켜볼 수 있었다”며 “그제야 내가 심했었고 문제가 많았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됐다”고 말했다.

입원 후 박 씨의 정서는 안정적으로 변화했다. 이에 따라 노 교수는 박 씨에게 병원 내부에서 의료진과 동반해 산책할 것을 처방했다. 외부 자극에 대한 일종의 ‘적응 훈련’인 셈이다. 다음 과정은 병원 밖으로 산책 나가는 ‘외출’이다. 환청도 사라지고 조증 증세도 거의 없어지자 박 씨는 이 과정을 건너뛰고 귀가한 뒤 하루 후에 돌아오는 ‘외박’ 과정으로 이행했다. 노 교수는 “약을 잘 먹고 있으며, 기분 상태가 안정적이고, 나중에도 외래 진료를 빠뜨리지 않을지를 평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모든 평가에서 적합 판정을 받았다. 박 씨는 35일 만에 퇴원했다. 박 씨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박 씨는 “퇴원할 무렵 정말로 내가 좋아졌다는 생각을 스스로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감정이 크게 흔들리는 일이 거의 사라졌다”고 말했다.

박창현 씨는 굳이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질병을 숨기지 않는다. 그는 위기가 닥칠 때도 있지만 그때마다 잘 극복하고 있으며 주변 사람들과도 원만하게 지내고 있다. 한양대병원 제공

●평생 관리하면 일상 생활 지장 없어

퇴원은 일상 생활에 임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반드시 완치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노 교수는 “이 병은 평생 다스려야 한다. 중단하는 순간 상태가 나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박 씨는 퇴원한 후로도 한 달 동안은 매주 노 교수를 만났다. 이후 진료 간격을 2주, 4주, 6주로 서서히 늘려나갔다. 현재는 치료 방침에서 최대 기간으로 정한 2개월마다 진료를 받는다. 노 교수는 “7년째 꾸준히 치료를 이어가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성과”라고 말했다.

조울증이 생기는 원인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입시, 연애, 군 복무 등 여러 분야에서 생기는 스트레스가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 같은 위기가 닥치면 재발의 위기를 맞닥뜨리게 된다.

박 씨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한 뒤 프리랜서 PD 생활을 잠시 했다. 이후 대학원에 진학했다. 이 기간 동안 수많은 난관이 그를 힘들게 했다. 강박증, 불안증이 엄습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방치하지 않았다. 노 교수를 찾아가 상담을 자처했다. 비상약을 처방 받아놓고 증세가 심해지면 먹었다. 이런 노력 덕분에 위기를 극복하고 일상 생활을 누릴 수 있었다. 박 씨는 올해 석사 학위를 받고 박사과정을 시작했다. 동시에 대학 실습 조교 업무도 맡았다. 물론 동료들과도 잘 지낸다.

노 교수는 “조울증은 약을 먹으면서 관리만 하면 평생 큰 탈 없이 잘 살 수 있는 병”이라며 “문제는 정신 질환이라는 편견 때문에 약 복용을 중단하는 환자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심지어 배우자에게도 자신의 투병 사실을 숨기는 환자가 있다는 것이다.

반면 박 씨는 주변에 자신의 병을 숨기지 않는다. 그는 “굳이 그래야 할 이유도 없고, 주변 사람들이 내 병을 알면 더 이해해주는 측면도 있다”며 웃었다. 노 교수 또한 “스스로 병을 인정하고 적극 투병하는 것, 주변 사람들이 적극 지지하는 것이 이 병을 이기는 큰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노 교수는 “박 씨야말로 조울증의 가장 모범적인 투병 사례이며 앞으로도 잘 이겨낼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양극성 장애 자가진단
최근에 다음과 같은 증세가 같은 시기에 나타났고, 이로 인해 문제가 생겼다면 양극성 장애일 가능성이 있다. 13개 문항 중 7개 이상이 해당된다면 의사와 상담하는 게 좋다.

1. 기분이 너무 좋거나 들떠 다른 사람들이 평소의 당신 모습이 아니라고 한 적이 있다.
2. 지나치게 흥분해 사람들에게 소리를 지르고 싸우거나 말다툼을 한 적이 있다.
3. 평소보다 더욱 자신감에 찬 적이 있다.
4. 평소보다 잠을 덜 잤거나 잠잘 필요를 느끼지 않은 적이 있다.
5. 평소보다 말이 더 많았거나 말이 매우 빨라졌던 적이 있다.
6. 생각이 머리속을 빨리 돌아가는 것처럼 느꼈거나 마음을 차분하게 하지 못한 적이 있다.
7. 주위에서 벌어지는 일로 쉽게 방해받아 일에 집중하기 어렵거나 중단한 적이 있다.
8. 평소보다 더 에너지가 넘쳐흘렀다.
9. 평소보다 더 활동적이거나 더 많은 일을 했다.
10. 평소보다 사교적이거나 늦은 밤에 친구에게 전화하는 등 적극적으로 행동했다.
11. 평소보다 더욱 성행위에 관심이 갔다.
12. 남들이 생각하기에 지나치거나 바보 같거나 위험해 보이는 행동을 한 적이 있다.
13. 돈 쓰는 문제로 자신이나 가족을 곤경에 빠뜨린 적이 있다.

※자료 : 노성원 한양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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