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코 인사이드] 프로농구 대표 장수 외국 선수, 로드 벤슨 (1)
KBL은 외국 선수의 활약을 빼놓을 수 없는 리그다. 시대를 관통하는 외국 선수들도 많았다. 프로농구 초창기에 조니 맥도웰을 필두로, 얼마 전까지 뛰었던 애런 헤인즈와 로드 벤슨도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맥도웰과 헤인즈에 비할 바는 아니나, 벤슨은 2010~2011시즌부터 2017~2018시즌까지 무려 7시즌 동안 뛰었다. 한국 무대에서 2번의 우승을 차지했으며, 원주를 대표하는 외국 선수로 아직 남아 있다.
KBL 진출 이전
벤슨은 캘리포니아주 샌디에고에서 유명한 선수였다. 고교 시절 큰 키와 돋보이는 신체 조건을 매개로, 농구와 배구에서 두루 두각을 보였다. 고교 졸업반 시절에는 배구 선수로 나서 모교의 우승을 직접 견인하기도 했다.
농구로도 돋보였다. 고교 마지막 시즌에 평균 14점 8.5리바운드 3.8블록슛을 기록했다. 돋보이는 활약에 힘입어, 지역 내 퍼스트 팀에 선정됐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벤슨은 명문인 UC 버클리에 진학했다. NCAA 캘리포니아 골든베어스 소속으로 네 시즌을 보냈다. 특히, 1~2학년 때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보였다. 그러나 졸업을 앞두고 부상을 피하지 못했다. 물론, 대학교에 계속 머문 만큼, NBA 진출과 가깝진 않았다. 하지만 가능성을 타진해야 하는 시기에 다쳤던 만큼, 부상은 여러모로 뼈아팠다. 설상가상으로 무릎과 발 부상이었기에, 벤슨의 가치는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UC 버클리에는 훗날 NBA로 진출했던 리언 포우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포우가 무릎 수술을 받게 되면서, 벤슨이 기회를 얻었다. 3학년인 2004~2005시즌부터 본격적인 주전 센터로 두각을 보였다. 평균 13.3점 6.5리바운드. 그러나 벤슨이 팀에서 가장 많은 평균 득점과 평균 리바운드를 책임졌음에도, UC 버클리는 한계를 보였다. 컨퍼런스 토너먼트에 나서지 못했다.
졸업반이던 4학년 때, 포우가 돌아왔다. 벤슨은 다시 벤치로 밀려났다(하지만 포우와 함께 뛴 UC 버클리는 NCAA 토너먼트에 다시 진출했다. 2003년 이후 오랜만에 컨퍼런스 토너먼트로 올라섰다).
졸업을 한 벤슨은 2006 NBA 신인 드래프트에 나섰다. 그러나 예상대로 지명을 받지 못했다. 새크라멘토 킹스 소속으로 NBA 서머리그에 나섰다. 여러 구단으로부터 관심을 받기도 했으나, 정작 계약을 따내지 못했다. 이후 NBDL(현 NBA G-리그) 어스틴 토로스(현 샌안토니오 스퍼스 산하 어스틴 스퍼스)로 향했다. 그러나 주축으로 뛰지 못했기에 한계가 있었다. 시즌 평균 2.4점을 올리는데 그쳤고, 시즌 중 방출을 피하지 못했다.
방출당한 벤슨은 다코다 위저즈(현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산하 산터크루즈 워리어스)에 둥지를 틀었다. 시즌 평균 10.8점. 한 경기에서 17분 동안 17점을 기록하고, 개인 최다 27점을 넣는 등 어스틴 시절보다 나은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2007년 여름에는 뉴저지 네츠(현 브루클린 네츠) 소속으로 서머리그에 나섰다. 그렇지만 인상적인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다코다와 재계약을 체결했다. 당시 기록은 경기당 13.6점 12.1리바운드였다.
2008년 여름에 프랑스리그로 향했다. 그러나 시즌 중 구단과 결별했고, 방출된 후 다코다와 또 한 번 인연을 맺었다. 그러나 다코다는 시즌 막판에 벤슨을 리노 빅혼스(현 새크라멘토 킹스 산하 스탁턴 킹스)로 트레이드했다.
벤슨은 2010년에도 서머리그에 명함을 내밀었다. 유타 재즈 소속으로 올랜도 서머리그를 소화한 후에, LA 클리퍼스 소속으로 라스베이거스 서머리그에 나섰다. 그러나 서머리그 이후 NBA는 물론, D-리그(현 G-리그)에도 나서지 못했다.
원주에서
원주 동부(현 원주 DB)는 2009~2010시즌 득점력 좋은 마퀸 챈들러를 1옵션으로 삼았다. 그러나 외국 선수 출전 제한이 더 강해졌고, 챈들러가 뛸 때 김주성(현 원주 DB 감독대행)이 안는 부담이 많아졌다. 무엇보다, 챈들러가 자신의 기분에 따라 들쑥날쑥한 경기력을 보였다. 구단 분위기에 악영향을 미쳤다. 동부는 결국 2009~2010시즌 종료 후 챈들러와 재계약을 하지 않았다.
동부는 1라운드 8순위로 벤슨을 불러들였다. 푸에르토리코에서 선수 생활을 하고 있던 벤슨은 2010년 KBL 외국 선수 트라이아웃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센터임에도 뛰어난 기동력과 넓은 수비 범위를 지녔기 때문. 국내 선수가 탄탄한 팀이 벤슨을 데려간다면, 벤슨의 위력이 강할 것으로 예상됐다.
벤슨의 가세로 동부는 높이를 보강했다. 수비력까지 단숨에 상승했다. 김주성과 윤호영이라는 정상급 높이를 구축하고 있던 동부는 벤슨의 가세로 원주산성을 완공했다.
벤슨이 가져온 효과는 실로 컸다. 벤슨은 당시 공격에서도 나름의 두각을 보였다. 안쪽에서의 공격력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고, 강한 몸싸움으로 동부의 골밑을 끈끈하게 사수했다. 이로 인해, 동부의 전력은 예상보다 강력해졌다.
특히, 수비가 돋보였다. 대인방어와 지역방어를 잘 혼용한 동부는 막강한 뒷선 수비와 높이에서의 이점을 십분 활용했다. 윤호영이 스몰포워드로 나선 것만 보더라도, 동부의 높이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다.
수비력을 갖춘 윤호영은 공격에서의 미스매치도 잘 활용했다. 여기에 김주성도 늘어난 슈팅 거리로 상대를 공략했다. 동부가 갖는 공격 효율이 배가 됐다. 또, 많은 리바운드가 많은 공격 기회를 만드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벤슨은 2010~2011시즌 평균 27분 22초 동안 17.4점 9.7리바운드 1.3블록슛을 기록했다. 벤슨의 기여도는 기록 이상이었다. 적극적인 몸싸움으로 상대를 불편하게 한 것까지 고려하면, 벤슨의 기여도는 더욱 높았다. 이에 힘입어, 동부는 31승 24패로 정규리그 4위를 기록했다.
동부는 6강 플레이오프에서 창원 LG를 만났다. 예상대로 낙승을 거뒀다. 4강 플레이오프에서도 웃었다. 당시 리그 1위인 부산 KT(현 수원 KT)를 상대로 3승 1패를 기록했다. 2007~2008시즌 이후 3년 만에 챔피언 결정전으로 나섰다.
그러나 동부는 챔프전에서 전주 KCC에 무릎을 꿇었다. 첫 네 경기에서 2승씩 주고받았으나. 마지막 두 경기를 잡지 못했다. 5차전을 68-69로 내줬고, 6차전에서도 2점 차로 패했다. 그렇기 때문에, 동부의 아쉬움은 더 진했다.
동부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자랑했다. 벤슨과의 재계약이 예상됐다. KBL 2011~2012시즌부터 외국 선수 제도를 ‘1인 보유-1인 출전’으로 바꿨음에도, 동부는 벤슨을 택했다.
더군다나 드래프트가 아닌 자유계약으로, 외국 선수의 수준이 높아질 수 있었다. 벤슨보다 빼어난 기량을 자랑하는 선수들이 합류할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부는 기존 선수와 좋은 호흡을 보였던 벤슨을 택했다. 팀에 잘 안착한 벤슨을 높이 평가했다.
벤슨이 지닌 위력은 여전히 대단했다. 또, 한 시즌 동안 다져진 호흡은 더욱 잘 맞았다. 김주성과 윤호영이 동시에 있었기에, 벤슨을 안배하는 것도 용이했다. 세 명의 빅맨이 승부처에 동시 출격할 때의 안정감은 실로 대단했다.
동부의 연승 행진은 꾸준히 지속됐다. 동부는 44승 10패로 정규리그 1위를 차지했다. KBL 역대 정규리그 최다승 타이 기록(SK가 2012~2013시즌 정규리그 44승을 기록했다). 당시 2위인 안양 KGC인삼공사보다 무려 8경기나 앞섰기에, 동부가 얼마나 압도적인 팀인지 알 수 있었다.
리그 1위를 차지하며 우승 전선에 가까워진 동부는 플레이오프도 무난하게 통과했다. 4강 플레이오프에서 울산 모비스(현 울산 현대모비스)를 상대로 1차전을 내줬지만, 벤슨이 모비스의 함지훈을 막았다. 동부의 전략이 주효했고, 동부는 2차전부터 4차전까지 모비스의 공격을 50점대로 묶었다. 3승 1패로 4강 플레이오프를 마쳤다.
동부는 2년 연속 챔피언 결정전에 진출했다. 상대는 KT를 꺾고 올라온 KGC인삼공사였다. 당시 KGC인삼공사에는 김태술(은퇴), 박찬희(현 원주 DB), 이정현(현 서울 삼성), 양희종, 오세근이 자리하고 있었고, 강도 높은 재건 작업으로 팀을 잘 정돈했다. 여기에 크리스 다니엘스까지 가세해, 강한 전력을 꾸리고 있었다.
벤슨은 1차전부터 26점 18리바운드로 펄펄 날았다. 다니엘스의 파울 트러블을 놓치지 않았다. 윤호영도 양희종과의 매치업에서 근소한 우위를 보였다. 동부가 80-75로 1차전을 잡았다.
그러나 4차전까지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펼쳤다. 시리즈 첫 네 경기 모두 초박빙으로 전개된 가운데, 벤슨의 판정을 향한 불만이 변수로 작용했다. 동부가 패한 경기의 마지막을 버티지 못했던 이유.
4차전까지 2승 2패를 기록한 동부는 5차전을 허무하게 내줬다. 전의를 다졌다. 6차전 3쿼터 중반까지 무려 17점이나 앞섰다. 많은 사람들이 7차전을 예측했다. 게다가 7차전은 원주에서 열리기에, 동부가 더 유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너무 큰 점수 차 때문에, 다음을 생각한 탓이었을까? 동부는 4쿼터에 급격하게 흔들렸다. 마지막 5분 여 동안 동부는 2점을 더하는데 그쳤다. 그 사이, KGC인삼공사에 13점을 내줬다. 동부가 64-66으로 4번째 패배를 당했다. 동부와 벤슨 모두 2년 연속 준우승에 머물렀다.
사진_ KBL
바스켓코리아 / 이재승 기자 considerate2@basketkorea.com
Copyright © 바스켓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