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대로 한다" 한기정 공정위원장의 신념
[편집자주] 윤석열정부가 오는 5월10일 출범 1년을 맞는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미국과 중국의 갈등, 공급망 재편 등으로 대한민국이 복합위기로 휩싸인 1년이었다. 윤 대통령과 각 부처 장관들은 이 위기를 돌파하며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한 1년이었다고 자평한다. 머니투데이가 쉼없이 달려온 장관들의 365일을 되돌아보며 윤석열 정부 1년을 정리했다.
"나는 시장주의자도 규제주의자도 아니다. 원칙대로 법을 집행한다"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이 평소 조직 안팎에 내비쳤다는 신념이다. 공정위 직원들은 한 위원장을 두고 '원칙주의자'를 떠올린다.
지난해 9월 취임사에서 '원칙'과 '명예'를 소중히 여겨달라고 당부한 한 위원장은 지난해 12월 2일 금요일 긴급 브리핑을 가졌다. 예정되지 않았던 브리핑에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이하 화물연대)의 현장조사 거부를 두고 "고발 등 법과 원칙에 따라 대응하겠다"고 예고했다.
'원칙 중시' 신념은 그대로다. 지난 3월 '공정거래의 날' 기념행사에서 "원칙이 바로 선 공정한 시장경제를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책 경험이 적다며 한 위원장의 전문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없지 않았지만 원칙주의자의 단호함은 걱정을 지웠다.
윤석열 정부의 '120대 국정과제' 자료에서 명시된 부분이다. 한 위원장은 윤 정부의 이 원칙을 지켜나가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공정위는 화물연대, 건설노조의 불법 행위를 조사 또는 제재해왔다. 윤석열 정부 핵심 과제인 '노조 불법행위 근절'의 일환이다.
한 위원장이 노조 불법 행위와 관련 처음 입장을 보인 때는 지난해 12월이다. 당시 공정위는 화물연대의 집단운송거부 등 행위를 벌인 것에 대한 현장조사에 착수했지만 화물연대 측 저지로 무산됐다. '독점 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상 사업자단체 금지 행위 위반 여부를 검토하겠다는 명분의 조사였다.
한 위원장은 긴급브리핑을 열고 화물연대의 조사방해 혐의에 대해 "고발 등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 위원장은 올해 초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공정위는 현행법 해석상 화물연대나 건설노조 소속 구성원을 사업자로 보고 계속 조사해왔다"며 "현행법 아래에서는 화물연대, 건설노조 등을 사업자단체로 보고 공정거래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12월 민주노총 전국건설노조 부산건설기계지부(부산지부)가 한국노총 소속원을 건설 현장에서 배제하도록 건설사에 압력을 행사한 사실을 적발해 과징금 1억원을 부과했다.
화물연대의 사업자단체 금지행위 관련해서도 결론을 내릴 때가 다가온다. 조사에 착수한 지 반년이 지났다.
공정위는 지난 1월 화물연대의 조사 방해 혐의에 대해서만 검찰 고발을 결정했다. 당시 화물연대의 조사방해 건 관련 브리핑에서 공정위 관계자는 "조사가 진행돼 본안(화물연대의 사업자단체 금지행위)을 다루게 될 때 화물연대의 사업자단체 여부에 대한 최종 판단이 내려질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 공정위 한 직원은 조직개편에 대한 성과를 묻자 자신감을 내보였다.
조직개편은 지난해와 올해 공정위 안팎을 뜨겁게 달군 이슈다. 그동안 조사·정책 업무를 함께 수행했던 사무처를 조사(조사관리관·1급)·정책(사무처장·1급)으로 분리하는 것이 골자였다.
윤 대통령 지시에 따라 사건의 책임성과 전문성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한 위원장은 지난 3월 '공정거래의 날' 기념식에서 "조사와 정책 기능을 분리하는 약 40년 만의 대대적인 조직개편을 통해 법 집행의 예측 가능성과 효율성, 전문성을 제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만 조직 안팎의 우려는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다. 어떤 이들은 정책-조사부서 간 칸막이, 인사이동 문제 등을 지적했다. 1급 직위 신설에도 불구하고 국·과장급 자리가 줄어드는 것도 조직 차원에선 우려되는 지점이다.
한 위원장은 지난 2월 공정거래실천모임·서울대 경쟁법센터·고려대 ICR센터·서강대 ICT법경제연구소가 공동으로 주관한 조찬 간담회에서 공정위의 외부인 접촉 관리 규정과 관련된 질문을 받았다.
그는 "실무적으로 대외 관련 접촉이 제한된 측면이 있는데 정책 부서는 외부 의견 수렴을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드는 것을 검토하려 한다"고 답했다. 공정위 조직개편을 계기로 공정위 직원의 '외부인 접촉 관리 규정'도 일부 개선되는 셈이다. 외부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자는 게 그의 생각이다.
해당 규정은 사건 처리의 공정성 및 투명성 확보 차원에서 문재인 정부 김상조 위원장 시절인 지난 2018년 1월부터 시행됐다. 외부인의 사건 로비 가능성을 막기 위해 외부와의 접촉을 신고토록 하는 규정이다. 법무법인 소속 변호사와 회계사, 공정위 관련 업무를 맡은 대기업 임직원, 법무법인과 대기업에 취업한 공정위 퇴직자 등이 신고 대상이다.
이런 규정은 공정위 안팎에서도 오랜 기간 불만을 샀다. '시장의 파수꾼 역할'을 하는 공정위가 오히려 민간과의 소통을 꺼리게 된다는 지적이다.
올해 초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이 공정위로부터 받은 외부인 접촉 보고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공정위 직원들의 외부인 접촉 보고는 2796건으로 전년(3356건)보다 16.7% 감소했다.
코로나19(COVID-19) 회복 이후 관가는 일상을 되찾았지만 번거로운 외부인 접촉 신고 절차 탓에 공정위의 업무 소통은 여전히 위축됐다는 우려가 나온다.
세종=유재희 기자 ryuj@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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