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집중][기억과기록] "경찰 수사 결과 '죄명 : 변사'라고.. 왜 사망자한테 뒤집어씌우나"

MBC라디오 2023. 5. 5.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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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신 씨 (10.29 참사 희생자 故 김정훈 아버지)>
- 할머니가 아들 매일 찾는데.. 아직 사고 소식 못 알려
- KF-21 전투기 선임연구원으로 근무.. 보안 때문에 죽은 뒤에 알아
- 과묵했지만 술 한 잔으로 통하는 사이.. 집안 기둥이 날아가버려
- 아이 엄마와 딸아이는 요즘도 우울증약 먹으면서 버텨
- 평택 옮겨지기 전까지는 신원 확인됐는데.. 평택에서는 '무명 40번'
- 경찰 수사 결과 '죄명 : 변사'로.. 사후 마약수사 때문인가?
- 與 당사 앞에서 24시간 촛불집회.. 특별법 통과 촉구
- 참사 이후, 마음 놓고 어디든 다닐 수 있는 나라 됐으면


■ 방송 : MBC 라디오 표준FM 95.9MHz <김종배의 시선집중>(07:05~08:30)

■ 진행 : 김종배 시사평론가

■ 대담 : 김순신 씨 (10.29 참사 희생자 故 김정훈 아버지)


☏ 진행자 > [기억과 기록] 오늘 만나볼 분은 희생자 故 김정훈 씨의 아버지 김순신 씨인데요. 바로 전화로 만나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버님 나와 계시죠?


☏ 김순신 > 예, 안녕하세요.


☏ 진행자 > 아버님 그동안 어떻게 보내셨어요?


☏ 김순신 > 그냥 잘 뭐라 그럴까. 그냥 내 일하면서 그쪽에 또 유가족협의회 그쪽 일해가면서 보내고 있습니다.


☏ 진행자 > 일상생활은 제대로 꾸려가고 계신 거예요?


☏ 김순신 > 그렇게 하려고 노력을 많이 하고 있죠.


☏ 진행자 > 아드님의 소식을 할머님한테 아직 알리지 못했다고 들었는데 맞습니까? 아버님.


☏ 김순신 > 예, 아직 사고 소식을 전하지 못했어요. 지금도 못 전하고.


☏ 진행자 > 할머님은 지금 전혀 모르시는 거예요? 손주가 어떻게 됐는지.


☏ 김순신 > 네, 아직 아직도 모르고 계십니다.


☏ 진행자 > 손주 안 찾아요? 할머니께서.


☏ 김순신 > 매일 하루에 한 번씩 전화를 통화하는데 꼭 안부를 물어봐가지고 회사에서 외국에 보내줘가지고 외국 나가 있다고 그러고 있거든요.


☏ 진행자 > 아이고 참, 언제까지 얘기 안 하시려고요.


☏ 김순신 > 지금 얘기를 전하긴 해야 하는데 우리 가족이나 형님들이나 친척분들이 너무 연로하신데 충격받으면 너무 뭐하다 해가지고 연락을 아직도 못하고 있습니다.


☏ 진행자 > 그러시군요. 아이고 참, 아버님 아드님께서 생전에 전투기 개발 업무를 맡았다고 하던데 맞습니까?


☏ 김순신 > 예, 예.


☏ 진행자 >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셨던 거예요?


☏ 김순신 > 연구원으로, 나는 연구원인 줄도 모르고 KF-21 국산화 사업에 선임연구원으로 사고당하기 전까지는 참여하고 있었거든요. 장례를 치르고 사천에 있는 숙소 가서 유품을 정리하다 보니까 융으로 된 접는 거기에 임명장이라고 써 있길래 펼쳐보니까 선임연구원으로 임명한다고 있고 보안에 대한 각서가 있고 이렇더라고요. 그때 연구원인 줄 알았죠. 이제.


☏ 진행자 > 아드님 살아생전에 계속 사천에 머물고 있었던 거고.


☏ 김순신 > 처음에 취직했을 때는 대한항공 연구소에 가서 한 6개월 동안 있었어요. 그러다가 전투기 사업이 시작되면서 사천으로 내려가게 됐죠.


☏ 진행자 > 그날 이태원에 어떻게 가게 됐다는 얘기는 혹시 나중에라도 들으셨어요?


☏ 김순신 > 금요일 날 저녁이면 올라오니까요. 항시. 친구하고 같이 갔었는가 봐요. 거기를.


☏ 진행자 > 그럼 같이 갔던 친구는 어떻게 됐어요?


☏ 김순신 > 친구는 지금 살아서 생활하고 있는 걔도 트라우마가 있어 가지고 지금 힘들게 지내고 있는 것 같아요.


☏ 진행자 > 우리 아버님하고 아드님은 평소 사이가 어떠셨어요?


☏ 김순신 > 과목해서 말은 별로 안 했어도 서로 말 같은 것도 안 해도 그냥 통하는 게 있고 술 한 잔 할 수도 있고 그래 가면서 이런 얘기 저런 얘기도, 또 생각해보니까 이런 얘기 저런 얘기 많은 얘기 못 했어요. 생각해보면 지금 생각해보면. 집안의 하나에 기둥이 날아가 버려 가지고 착잡하기만 하고 지금 인터뷰하는 것도 지금 자꾸 눈물이 나서.


☏ 진행자 > 그럼요.


☏ 김순신 > 그래서 조금 그렇습니다. 아직도.


☏ 진행자 > 아드님을 먼저 보내고 나면 지나온 모든 날들이 다 후회스럽다 이런 얘기를 많이 하던데 가장 아쉬운 게 뭐예요?


☏ 김순신 > 많은 시간을 같이 못해 가지고 진짜 같이 이렇게 해서 좀 시간을 많이 보냈으면 하는 그런 아쉬움이 많이 남아요.


☏ 진행자 > 평소에 좀 더 살뜰하게 대하고 대화도 많이 하고 했으면 하는 이런 아쉬움이시네요.


☏ 김순신 > 그렇죠. 걔도 과묵하고 나도 과묵하고 하다 보니까는 걔는 술을 좋아해가지고 술을 자주 하는데 나는 또 술을 잘 못 해가지고 술 한 잔 같이 하려고 하면 아예 아빠하고는 안 된다고 딱 그러거든요. 상대가 안 되니까.


☏ 진행자 > 그렇죠.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보는 아빠와 아들의 장면이네요.


☏ 김순신 > 네. 그래서 많은 시간을 못 보내고 그래서 조금 더 지금 아쉬움이 남기는 많이 남아요.


☏ 진행자 > 아드님 위에 누님이 한 분 계시다면서요.


☏ 김순신 > 예.


☏ 진행자 > 그 누님은 어떻게 지내고 계세요?


☏ 김순신 > 요즘 우울증약 계속 먹어가면서 저기 하고 있어요.


☏ 진행자 > 어머님은요.


☏ 김순신 > 어머니도 같이요. 애엄마도 같이.


☏ 진행자 > 아드님 소식은 언제 처음 들으셨어요?


☏ 김순신 > 그게 10월 30일 날 5시 30분쯤에 누나한테 문자를 받았어요. 정훈이가 연락이 안 된다고 이태원을 갔는데. 그래서 연락이 안 된다고 그래서 나는 전화를 계속했죠. 계속 했더니 6시 조금 넘으니까는 용산경찰서라고 경찰관에 전화를 받아요. 그래서 조금 나는 병원이나 어디 가서 있겠지 생각하고 그냥 연락 오겠지 연락 오겠지 해가면서 기다리다 보니까는 연락도 안 오고 안절부절하고 있고 또 누나하고 계속 통화하면서 서울에 있는 정훈이 친구들이 걔 찾는다고 했다고 6명이서 지금 찾고 있다고 그렇게 연락이 와가지고 나는 어디 가지도 못하고 가만히 앉아서 연락만 오기만 기다리고 있었죠.


☏ 진행자 > 아드님이 평택의 장례식장으로 옮겨졌다고 하던데 맞아요?


☏ 김순신 > 예, 예.


☏ 진행자 > 이거 어떻게 된 얘기예요. 얘기가.


☏ 김순신 > 이태원에서 다목적회관 거기로 옮겨졌다가 거기서 평택 장례식장으로 간 거죠. 그런데 다목적회관에 거기 있을 때는 신원 확인이 돼 있는데 또 다목적회관에서 평택장례식장으로 갔을 때는 무명 40번으로 해가지고 갔어요. 거기에. 신원이 확인돼가지고 왜 연락을 못 해줬는지 우리한테, 그래서 그런 것 때문에, 진상규명을 위해서 하고 있고 그렇기는 해요.


☏ 진행자 > 나중에 경찰로부터 수사 결과가 정리된 서류를 받으셨는데 서류 내용에 ‘죄명 변사’ 이렇게 적혀 있었다고 하던데 이거 맞는 얘기입니까?


☏ 김순신 > 예, 변사라고 적혀 있어요.


☏ 진행자 > 아니, 죄명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었어요?


☏ 김순신 > 예, ‘죄명, 변사’라고. 지금 얘기 들어보면 그렇게 해야 이 사람들이 마약 수사를 할 수 있고 시신도 자기 마음대로 검안할 수 있고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 진행자 > 어떻게 죄명이라는 말을 단어를 쓸 수가 있어요. 서류에다가.


☏ 김순신 > 그러니까요. 우리 유가족분들이 거기에 대해서 지금 이의를 제기해서 하니까는 또 압사로 해가지고 보내줘요. 서류 하나를. 나는 그 서류가 경찰서에 있는 컴퓨터 안에 다 그게 정리가 돼야지 그 서류 하나만 또 글자만 변경 시켜 가지고 보내주면 아무 의미 없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거죠.


☏ 진행자 > 아드님이 무슨 범죄 저지른 게 없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죄명이라는 단어를 쓸 수가 있어요? 서류에다가. 사인이면 모르겠는데 죄명이 말이 안 되는 거잖아요.


☏ 김순신 > 그러니까요. 그것 때문에 우리 유가족들도 사실은 국가가 죄인이거든요. 국가에서 안전을 관리 안 해주고 모든 것을 사망자 애들한테 다 뒤집어씌우고 자기들은 다 거기서 다 빠져나가고 있잖아요.


☏ 진행자 > 일부러 이렇게 했겠습니까만 너무 무신경하네요 정말로. 무신경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서류처리를 이렇게 할 수가 있어요.


☏ 김순신 > 그래서 죄명이 이것 때문에 내가 왜 죄명이 변사냐고 따져서 민변이나 이런 분들이 거기에 대한 거에 대해서 아마 할 거예요. 400가지가 넘는 의심점에 대해서 그런 걸 하고 있으니까는 그런 것에 대해서 뭔가 풀리겠죠. 이제.


☏ 진행자 > 아니 하나하나 세심하게 살펴도 부족할 판에 도대체 무슨 일이랍니까.


☏ 김순신 > 정부가 다 무능한 탓이에요. 자기들 무능을 감추기 위해서 그렇게 한 거죠.


☏ 진행자 > 다음 주 월요일에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24시간 촛불집회가 열립니까? 아버님.


☏ 김순신 > 예.


☏ 진행자 > 어떤 내용이에요?


☏ 김순신 > 이태원참사특별법 제정이 국민의힘 의원들은 야권 총선 특별법이라고 막 치부하고 깎아내리고 수많은 국민과 국회의원 여러분들이 동참해서 이태원참사특별법이 발의가 됐는데 국민의힘 의원들은 청문회부터 지금까지 막말로 우리 유가족들을 우롱하면서 2차 가해 하고 있고 국민의힘 당사 앞이나 국회 앞에서 정부여당과 국민의힘의 추악한 행태를 국민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 진행자 > 알겠습니다. 제가 매주 한 번씩 유족 분 인터뷰에서 꼭 드리는 질문인데요. 역사에 이번 참사가 어떻게 기록되어야 한다고 생각을 하세요? 아버님.


☏ 김순신 > 참사에 159분의 별들이 분들이 초석이 되어서 안전한 나라, 마음 놓고 어디든 갈 수 있는 나라, 행복한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고 영원히 잊혀지지 않고 영원히 추모할 수 있는 그런 게 됐으면 좋겠습니다.


☏ 진행자 > 아드님한테 꼭 전하고 싶은 말씀 있으세요? 이 자리를 빌려서 한번 해주세요.


☏ 김순신 > 전하고 싶은 말이요. 그래도 아빠와 아들로서 만나서 함께 했던 시간이 참 고맙고 내가 삶을 다하는 날까지는 함께 하고 싶고 잊지 않고 가슴 속에 묻어두고 싶습니다.


☏ 진행자 > 아드님 생각나실 때마다 어떻게 하세요? 아버님은.


☏ 김순신 > 차를 타고 가나 저녁 때 땅거미 질 때 이럴 때 보면 자꾸 눈물이 나고 그러긴 해요. 내가 일을 시작해서 많이 신경을 많이 쓰고 있거든요. 잊으려고. 그때는 또 조금 저기했는데 그 시간이 지나고 나면 많이 뭐하고 그래서 시간 나는 대로 서울광장에 분향소에 가서 있기도 하고.


☏ 진행자 > 아까 말씀하시면서 어머님하고 따님, 고인의 누님 되시죠. 우울증 약 드신다고 말씀해 주셨는데 아버님이라도 굳건하게 버티셔야 남아 있는 가족들이 또 함께 버틸 수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아버님.


☏ 김순신 > 그렇죠. 그래서 저도 내색도 안 하고 누나한테 전화해서 자꾸 마음 다독여주고 그러고 하고 있거든요.


☏ 진행자 > 용기 잃지 마세요. 아버님.


☏ 김순신 > 감사합니다.


☏ 진행자 > 오늘 인터뷰 잘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 김순신 > 감사합니다.


☏ 진행자 > 지금까지 희생자 故 김정훈 씨의 아버님 김순신 씨와 함께했습니다.


[내용 인용 시 MBC <김종배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 내용임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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