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 핵 개발했다고 북한이 원하는 세상이 올까
북한은 지난해 9월 최고인민회의에서 채택한 '핵무력 정책' 법령에서 다음과 같은 경우에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1.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한 핵무기 또는 기타 대량살육무기 공격이 감행되었거나 임박하였다고 판단되는 경우
2. 국가지도부와 국가 핵무력 지휘기구에 대한 적대세력의 핵 및 비핵공격이 감행되었거나 임박하였다고 판단되는 경우
3. 국가의 중요 전략적 대상들에 대한 치명적인 군사적 공격이 감행되었거나 임박하였다고 판단되는 경우
4. 유사시 전쟁의 확대와 장기화를 막고 전쟁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작전상 필요가 불가피하게 제기되는 경우
5. 기타 국가의 존립과 인민의 생명안전에 파국적인 위기를 초래하는 사태가 발생하여 핵무기로 대응할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상황이 조성되는 경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핵무력 정책에 대하여, 2022년 9월 8일>
공격이 임박했다고 판단되는 경우, 작전상 필요가 제기되는 경우, 불가피한 상황이 조성되는 경우 등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하겠다고 밝힌 상황은 상당히 자의적입니다. 핵 공격이든 비핵 공격이든 북한 스스로 판단해 핵무기를 사용하고 싶은 경우에는 언제든 핵무기를 쓰겠다는 것으로 핵 선제사용 가능성을 노골화한 것입니다.
북한의 공세적 핵 위협과 '워싱턴 선언'
바이든 미 대통령은 직접 '핵 공격 시 북한 정권 종말'을 언급해 미국의 핵 보복 의지를 다시 한번 집약적으로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여기서 주목해 볼 점은 북한의 힘자랑과 한미 대응의 상관관계입니다. 북한이 갖가지 종류의 핵무기를 개발하고 핵 위협의 수위를 높이자, 한미는 그에 대응해 확장억제의 수위를 높였습니다.
NCG(핵협의그룹) 신설을 통해 북핵 군사적 대응에 있어 한국의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했고, 전략핵잠수함이 한국에 올 것이라는 예고도 했습니다. 북한으로서는 핵무기의 공세적 사용 방침을 통해 한반도의 군사적 주도권을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이는 한미의 대응 수위만을 높였을 뿐입니다.
북, 핵 개발로 자위권 확보했나
북한의 핵개발이 그들의 주장대로 자위적인 차원의 것이라면 북한의 목표는 이제 달성됐습니다. 지금 상황에서는 한미일 어느 누구도 북한을 선제공격하기 어렵습니다.
ICBM 탄두의 대기권 재진입 기술이 확인되지 않는 등 북한의 대미 억지력은 아직 불완전한 상태지만, 북한은 한국과 일본을 위협함으로써 미국의 공격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마련했습니다.
북한의 중단거리 미사일 능력이 확보돼 있고 전술핵 장착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한국과 일본은 북한이 선제공격하거나 북한의 선제공격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판단하지 않는 한 전쟁을 미리 개시하기 어렵습니다.
북한의 핵미사일이 한두 개라도 떨어져 발생할 막대한 피해를 고려한다면 전쟁에서 이긴다 한들 큰 의미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핵 개발 전에도 억지력 확보
1994년의 전쟁위기가 이러한 사례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제1차 북핵 위기 당시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영변 핵시설에 대한 공습을 실행에 옮기려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미국의 전쟁을 결사반대한다는 입장을 취했습니다.
당시 위기는 전쟁 개시 단계까지 가기 전에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방북을 통해 해소됐지만, 핵 위기가 더 심화됐더라도 한국 대통령이 결사반대하는 상황에서 미국이 대북공격을 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북한 체제의 위기는 미국 위협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안정식 북한전문기자cs7922@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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