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의 철학자’ 안도 다다오와 이우환을 만나는 시간
절제의 미학, 부자의 취향, 여든을 넘긴 거장 그리고 무엇보다 푸른 영혼의 소유자. ‘넘사벽’의 교집합을 지닌 작가, 안도 다다오와 이우환의 전시가 서로 다른 공간에서 열리고 있다.
"인생은 한 방이 아니니, 도전 게을리 말길"
안도 다다오 '청춘'
여러 드라마에서 선보인 덕분에 재벌가 대저택의 아이콘이 됐지만 뮤지엄 산은 일본 출신 세계적 건축가 안도 다다오(82)가 "세계 어디에도 없는 최고의 미술관을 만들어달라"는 고(故)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의 의뢰를 받고 8년에 걸쳐 완성한 전원 미술관이다. 물과 바람, 자연광까지 건축 요소로 끌어들여 경건하며 자못 영적인 분위기까지 풍긴다. 서울에서 자동차로 2시간 거리에 위치하는 데도 연간 20만 명이 찾는 명소로 자리매김했다. 바로 이 뮤지엄 산에서 4월 1일부터 7월 30일까지 그의 건축 여정을 담은 개인전 '안도 다다오-청춘’이 개최된다.
안도의 삶은 한 편의 소설 같다. 1941년 오사카에서 태어난 안도는 고등학교 졸업 후 트럭 기사, 권투선수로 활동하다 헌책방에서 우연히 르코르뷔지에의 책을 보고 매료돼 뒤늦게 독학으로 건축을 공부했다. 1969년 건축사무소를 열었으나 초기에는 아무도 일을 주지 않아 공공기관에 건축디자인을 제안했다가 퇴짜 맞기도 하고, 가상으로 설계를 하기도 했다고. 연립주택의 가운데 집을 헐고 콘크리트 박스형 주택으로 재건축한 '스미요시 주택’으로 1979년 일본건축학회상을 수상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우리나라에서는 뮤지엄 산 외에도, 노현정 전 아나운서의 시어머니로도 잘 알려진 현대가 이행자 여사의 제주도 본태박물관, 유민미술관(구 지니어스 로사이), 지난해 개관한 LG아트센터 서울 등을 설계했다.
그의 작업은 자연을 끌어안은 조경, 명과 암을 극명하게 나누는 빛의 활용 그리고 노출콘크리트를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1969년부터 1990년대 중반에 이르는 안도의 전반기 건축 작품부터 30년에 걸쳐 완성한 나오시마 프로젝트, 1990년대 중반 이후 세계 공공장소의 건축 작품들과 2020년 준공한 '부르스 드 코메르스’ 리노베이션 프로젝트까지 안도의 건축 세계를 망라하는 대표작 250점이 소개된다.
전시에선 여러 건축물에 얽힌 재밌는 일화도 만날 수 있다. 안도에겐 첫 주택 설계물인 스미요시는 매우 부단한 노력의 결과였으나 "안뜰과 창문에서 바람이 들어오고 비가 들이닥친다"는 불평이 있었다. 이에 건축주가 "추우면 어떡하냐"고 묻자 안도는 "옷을 한 겹 더 껴입으라"고 했다. "더 추워지면 어떡하냐"는 질문에 안도의 대답은 "포기하세요. 인생에서는 포기하는 것도 중요합니다"였다고. 거실에서 안뜰을 거쳐야만 주방으로 이어지고, 침실로 가려면 2층 계단을 타고 밖으로 나가야 하는 스미요시 주택의 독특한 구조는 주거를 자연의 일부로 담아냈지만 가능적으로 불편했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자연과 사람이 조우하는 장소를 만들어가는 안도의 건축적 시각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일본 미술 컬렉터 후쿠다케 테츠히코와 함께 황폐한 섬을 예술 명소로 재탄생시킨 나오시마 프로젝트는 건축주의 열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후쿠다케 회장은) 신칸센을 타고 전철을 타고 또 배를 타야 겨우 닿을 수 있는 황폐한 섬에 푸른 숲을 조성한 뒤 세계인이 찾아오는 미술관을 만들자고 하더군요. 생각은 자유니까 얼마든지 마음대로 할 수 있겠지만 나는 '안 된다’고 했어요. 그런데 결국은 해냈죠. 평생을 미술에 걸었던 후쿠다케 씨의 열정이 이 섬에 담겨 있습니다. 이제 이 작은 섬에 연간 70만 명이나 되는 사람이 미술과 자연, 바다를 체험하러 오는데 후쿠다케 씨의 열정 덕분이 아닐까요. 저는 따르기를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생활을 위한 소심성을 초월하는 용기 / 안이함에의 집착을 초월하는 모험심 / 청춘이란 그 탁월한 정신력을 뜻하나니 / 때로는 스무 살의 청년보다 / 예순의 노인이 더 청춘일 수 있네 - 사무엘 울만의 시 '청춘’ 중에서
전시 제목 '청춘’은 안도 다다오가 좋아하는 사무엘 울만의 시에서 따왔다. '인생 한 방’ 대신 또박또박 성실하게 건축가의 길을 걸어온 고졸 권투선수 출신 안도의 매일매일 더 나은 설계를 하겠다는 신념, 인생의 태도를 의미한다.
장소 강원도 원주시 지정면 오크밸리2길 260 뮤지엄 산
입장료 1만4000~2만2000원
"관계, 오직 그것이 리얼리티"
이우환
서울 삼청동 국제갤러리 1관(K1)에 전시된 이우환(87)의 신작 'Relatum-The Kiss’의 모습이다. 1986년 작품 'Relatum-Lover’는 2개의 돌이 그들을 받치고 있는 철판에 의한 경계를 극복하려는 듯이 서로를 향하고 염원하는 형국을 표현했다면, 이번 작품의 주인공(돌)들에선 좀 더 로맨틱한 오라가 풍긴다. 4월 4일부터 5월 28일까지 열리는 국제갤리리 'Lee Ufan’전에서는 'Relatum-The Kiss’를 비롯해 이우환의 1980년대 작품부터 근작까지를 아우르는 조각 6점과 드로잉 4점을 선보인다. 2009년 이후 국제갤러리에서 열리는 두 번째 전시이자, 부산시립미술관의 '이우환 공간’ 설립(2015)을 제외하면 국내 관람객이 12년 만에 보게 되는 작가의 개인전이다.
국내 미술시장 최고 인기 작가. 이우환을 설명할 때 이 수식어를 빼놓을 수 없다. 2011년 뉴욕 구겐하임미술관, 2014년 파리 베르사유궁전, 2019년 프랑스 메츠 퐁피두센터에서 개인전을 열어 세계인을 매료시킨 이우환은 2021년 8월 서울옥션 경매에서 국내 생존 작가 중 처음으로 경매가 30억 원을 넘겼다. 1984년 그림 '동풍(East winds)’을 통해서다.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가 펴낸 '2022년 국내 미술품 경매시장 연말결산’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이우환 작품의 낙찰 총액은 255억 원으로, 구사마 야요이(277억 원)에 이은 2위다. 2020년 방탄소년단 RM이 부산시립미술관 별관 이우환 공간을 찾은 사실과 함께 이우환의 팬임을 고백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우환 작가의 전시관은 부산 외에 일본 나오시마와 프랑스 남부 도시 아를에도 있는데, 나오시마 전시관은 안도 다다오가 설계했다.
작가는 한국과 일본, 프랑스를 오가며 작품 활동을 하고 있으며, 올해 프랑스 쇼몽성, 베를린, 도쿄 등에서 전시가 예정돼 있다.
장소 서울시 종로구 삼청로 54 국제갤러리 K1, K2 2층, K2 정원
입장료 무료(사전 예약 필수)
#안도다다오 #이우환 #여성동아
사진제공 국제갤러리 뮤지엄 산
김명희 기자 mayh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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