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특집〉 여성동아 90년 역사의 신호탄 ‘신가정’ 표지 작가 청전 이상범

안현배 예술사학자 2023. 5. 5.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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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작 ‘효천귀로’. 광복을 기념해 완성한 작품이다.
동아일보사가 1933년 1월 '신가정’ 이라는 이름으로 창간하고 2023년 5월 713호로 이어지는 '여성동아’는 그 자체가 역사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시상식의 일장기 말소 사건을 이유로 폐간된 후 1967년이 돼서야 '여성동아’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발간되었다는 우여곡절도 그렇고, 오랜 기간 한국 여성들에게 뉴스를 전하는 교양의 전달자 역할을 해왔던 시간의 의미로 봐도 그렇다.
1957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심사위원에 위촉된 청전이 심사위원 자격으로 국전에 출품한 작품 ‘영막묘연’.
여기에 또 하나, 창간 당시부터 이어온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는 초상화 표지를 빼놓을 수 없다. 이쾌대, 문학진, 천경자 등 당대 한국 미술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유명 화가들이 여성동아 표지화 작업에 참여했다. 이 표지들은 자연스럽게 한국 미술사의 중요한 자료이자 작품이 된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1981년 4월호 이후 '여성동아’의 표지는 사진으로 대체됐지만 '신가정’과 '여성동아’의 표지로 격변하는 역사 속에서 우리 여성들의 얼굴과 화가들의 개성을 동시에 만나볼 수 있다.

손기정의 메달을 지운 청전

1933년 1월 발간된 신가정 창간호 표지.
1933년 1월에 발간된 '신가정’ 창간호 표지에는 어머니와 아들의 다정한 모습이 담겨 있다. 이 그림을 그린 작가는 놀랍게도 일제 강점기 어두운 시절 한국화를 대표하는 청전 이상범이다. 당시 그는 한국화 전통을 이어받은 대표 작가로 유명세를 떨쳤는데, 그의 작품들 대부분이 수묵화로 그려진 것을 감안하면 이 표지는 상당히 낯선 작품임에 틀림없다.

1897년 생으로 일찍부터 그림을 배웠던 이상범의 스승은 또 다른 대가 안중식이다. 고종과 순종의 어진을 그렸고, 마지막 궁정화가 세대였던 안중식에게 사사했던 이상범은 당연하게도 한국화를 계승했다. 1925년부터 10회 연속으로 조선 미술 전람회에서 특선을 차지할 정도로 특별한 재능을 인정받기도 했다.
그는 1927년부터 1937년까지 11년간 동아일보 미술 기자로 활동했던 이력을 가지고 있다. 정적인 한국화가의 삶이 아니라 격변에 뛰어들고, 적극적으로 경험을 쌓고자 했던 선택인 셈이다. '신가정’ 표지를 그린 뒤 얼마 지나지 않아 1936년 일어났던 일장기 말소 사건의 주동자로 체포돼 감옥에 갇히는 등 고초를 겪었던 일은 널리 알려져 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손기정의 메달은 또 다른 기자 이길용의 제안으로 이상범의 손에 의해 지워졌다. 이에 따라 동아일보는 무기 정간 당했고 송진우 사장을 비롯한 임원들은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한국화의 거장으로서 유려하고 담담하게 작품을 그려냈던 그의 화풍을 생각해보면 상당히 이질감이 느껴질 정도로 다이내믹한 사건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청전 이상범이 한국화 부문에서 이룬 성과는 자칫 빈자리로 남을 수 있었던 일제 강점기 시기를 빈틈없이 지탱해줬다. 청전은 특히 수묵 산수화에서 빛을 발하는데, 그의 그림은 주로 담채의 방식을 택해 색감이 미묘하고 화려한 변화를 추구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청전의 작품들은 동시대에 역시 활동한 작가 소정 변관식의 그림과 자주 비교된다. 변관식은 또 다른 한국화의 기둥으로 불린다. 변관식이 마치 문인화의 전통을 지키면서 상당히 강하고 힘 있는 기법으로 표현한 것에 비해 리듬감 있고 작은 면에 칠해지는 붓으로 경쾌하고 가볍게 묘사한다는 점이 차이가 있다고 하겠다.

이런 특징은 서양화가가 대거 유입되던 근대 시절 한국화 1세대 화가들이 어떻게 서양 문화와 새로운 예술을 소화하고 그 절충안을 찾아냈는지로 연결된다. 청전 이상범의 그림은 서양화의 다채로우면서도 유려한 변화를 한국화가 수용하고 변화를 시도하는 과정에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문명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두 개의 차이를 관찰하고 소화해내는 거장은 항상 반갑고 귀하다.

당시 이미 상당한 규모로 서양 미술과 교류를 했던 일본은 같은 시기 유럽 무대에 직접 진출해서 유럽인들의 회화를 체험하고, 현지에 체류하며 그림을 그리던 화가들이 많았다.

일본에서 열리는 전시회에 자주 유럽의 후기 인상파나, 앵티미즘(intimism) 계열의 그림과 유사한 일본 작가들의 그림이 등장하는 것도 20세기 초반 유럽 활동파의 작품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양 작가들의 운동을 곁에서 보고 비슷하게 그려낸 그림들은 생명력과 감동이 증발한 느낌이 준다.

반면 전통을 고수하는 쪽 역시 계속 같은 이야기만 할 것인지를 물을 수밖에 없다. 당시 작가들은 전통적 시각의 자연을 그리되 시대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색감을 시도했다. 앞서간 서양 미술의 색의 조화를 수용하고 소화하는 단계를 거친 것이다. 이상범의 그림에도 적극적인 변화가 엿보인다.

이런 기법과 표현의 수용은 청전 이상범이 가치 있게 두는 그림의 주제와 묘하게 어울린다.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작은 산, 이름 없는 흐르는 개천을 배경으로 혼자서도 씩씩하게 일하고 또 어디론가 떠나가는 사람들이다. 항상 변화는 시도하는 사람의 손에서 일어난다.

전통을 맹목적으로 고수한 것도, 그렇다고 전통을 넘어선다는 목적으로 아예 외래 문물의 방식과 정신을 따라가는 것도 청전은 모두 멀리했다. 자신의 스타일을 유지하면서 외부의 발달한 점들을 수용해서 새로운 값을 찾아내려 했다고 볼 수 있다. 그가 처음엔 스승 안중식과 비슷한 길을 걷다가 점차 남종화 부문으로 변화했던 것 역시 본인의 그림을 고수하면서도 끊임없이 밖을 살펴보기에 가능한 진로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첫 계단을 오르는 발걸음의 가치

청전 이상범.
이상범이 그린 '신가정’의 창간호 표지는 언뜻 어린아이의 그림처럼 보인다. 소박하고 단순하게 그려진 외형에 어머니와 아들의 다정한 모습을 표현한 장면. 색깔의 감각은 동양화에서 멀리 벗어나 있고 인물의 묘사는 서양화와 동양화 그 어떤 것도 아닌 어쩌면 만화의 한 장면 같은 느낌이기도 하다.
한국화만 다루던 이상범에게 서양화 풍의 초상화는 낯선 도전이었을 것이다. 마치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했던 작가 앙리 루소의 그림처럼, 이상범의 새로운 도전은 때때로 어색하기도 하고 평범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도전 속에서 이상범의 화풍도 이후 다양성을 지니게 됐다. 이런 도전을 이상범이 시작했다는 무게감이 뒤이어 문학진과 천경자 등도 여성동아의 역사에 동참할 수 있었던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이유로 첫 계단을 오르는 발걸음의 가치는 항상 중요하다. 한국화의 거장 이상범의 손길에서 우리는 시작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신가정 #표지화 #안현배 #여성동아

사진 뉴시스 뉴스1 동아일보

안현배 예술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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