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 남은 엄마 보고파"…우크라 피난 청소년의 소원

전쟁 장기화에 한국으로 피난…고려인마을, 위로 행사 마련

(광주=연합뉴스) 정다움 기자 = "엄마를 직접 볼 수 없으니, 보고 싶을 때마다 꺼내볼 수 있는 가족사진이라도 있었으면 좋겠어요"

우크라이나 전쟁 피난민 정일리아(17)군은 '어린이날 소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눈시울이 붉어지며 답했다.

전쟁을 피하기 위해 한국에 입국한 지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한국어 실력은 서툴렀지만, 떨리는 목소리에서는 정군의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전해졌다.

고려인 아버지와 우크라이나 국적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정군은 우크라이나 해안도시 헤르손에서 살았다.

아버지는 전쟁이 나기 전 가족 생계를 위해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이 때문에 정군은 몇 년을 아버지 없이 어머니와 단둘이 우크라이나에서 살아야 했다.

그러다 갑작스레 전쟁이 터졌고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정 군은 하는 수 없이 어머니를 고국에 남겨둔 채 아버지가 있는 광주 고려인마을로 왔다.

정군은 "한국에서 아빠와 함께 생활해 기쁘지만, 이제는 엄마와 이별하게 됐다"며 "입국하지 못한 엄마가 너무 그립다"고 울먹였다.

이어 "엄마가 그릴 울 때마다 볼 수 있게 엄마, 아빠와 함께 가족사진을 찍고 싶다"며 "곁에 두고 꺼내보고 싶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에도 한국의 어린이날처럼 어린이를 위하는 별도의 기념일이 있다.

해마다 6월 1일 '어린이를 보호하는 날'에는 한국처럼 떠들썩하지는 않지만, 어린이들은 가족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공휴일이 아닌 탓에 직장 생활을 마친 부모님과 자녀들은 저녁 식사를 하는 것이 보통의 일상이다.

힘겨운 피난 생활에 정 군은 어머니·아버지가 좋아하는 음식을 먼저 떠올렸다.

그는 "부모님이 초밥을 좋아한다"며 "한국에서 엄마, 아빠와 초밥도 먹고 싶다"고 미소를 지었다.

이어 "어린이날이라고 해서 많은 것을 바라지는 않는다"며 "전쟁이 하루빨리 끝나 엄마가 계시는 우크라이나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을 전했다.

광주 고려인마을은 어린이날을 맞아 고국과 가족을 그리워할 정일리아 군과 같은 10대 피난민들을 위해 이날부터 1박2일 일정으로 캠핑 행사를 계획하고 있다.

개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광주 광산구 운남동의 한 캠핑장 업체가 어린이날 장사를 포기하고 피난민 어린이들에게 업장을 내주기로 했다.

고려인마을 8가족이 행사에 참여할 예정이고, 이들은 지역 체육시설에서 명량운동회를 한 뒤 캠핑장에서 오랜만의 휴식을 즐기며 고국을 떠나온 슬픔을 달랜다.

dau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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