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강'으로 세법 열공하는 기재부 사무관 [관가 포커스]
기획재정부의 두 축은 ‘돈을 쓰는’ 예산실과 함께 ‘돈을 걷는’ 세제실이다. 세법을 집행하는 기관은 국세청이지만 세법 체계를 만들고 개정하는 업무는 기재부 세제실 소관이다. 특히 매년 8월에 발표하는 세법 개정안은 세제실의 가장 중요한 ‘1년 농사’다.
국민 생활과 밀접한 세금을 다루다 보니 여론의 비난을 한 몸에 받기도 한다. 2014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연말정산 파동’이 대표적이다. 당시 서민·중산층 세부담이라는 오명을 쓴 세법개정안으로 인해 세제실은 전례가 없는 홍역을 치러야만 했다. 당시 세법개정안 보고를 미리 받았던 대통령마저 비판 여론이 불거지자 세법개정안 내용을 전면 수정하라고 지시하면서 세제실 공무원들의 자존심이 헌신짝처럼 짓밟히기도 했다.
작년 초엔 역대 최악의 세수 추계 오차로 세제실장이 경질되는 등 뭇매를 맞고, 세수 예측 실패로 감사원 감사까지 받아야만 했다. ‘잘해도 본전’인 세제실은 기재부 공무원들의 기피 부서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다르다는 것이 기재부 안팎의 설명이다.
특히 2030 MZ세대 사무관들이 최근 들어 세제실을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는 것이 기재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통상 기재부의 가장 인기 있는 부서로는 예산실과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경제정책국이나 국제금융국 등이 꼽혔다. 경제정책 경험을 두루 쌓기보다는 세법을 파헤쳐야 하는 세제실은 야망을 지닌 젊은 사무관들이 선호하는 부서로 보긴 어려웠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공직사회에서 민간으로 이직하는 사례가 많아지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우선 세제실 출신 공무원은 대형 로펌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업이다. 조세 소송이나 조세 심판 등 관련 법률 수요는 매년 늘어나는 추세다. 세제실 공무원들은 세법을 직접 만들고 뜯어봤기 때문에 대형로펌들이 선호하는 대표적인 직업 중 하나다. 실제로 기재부 고위 관료뿐 아니라 사무관 출신들도 김앤장 등 주요 대형로펌에 상당수 포진돼 있다.
세법을 파헤치면서 조세 분야 전문성을 키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는 것이 젊은 사무관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특히 세제실에서 근무를 시작한 사무관 상당수가 세제실에서 오랫동안 근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고광효 세제실장을 비롯해 정정훈 조세총괄정책관, 이용주 소득법인세정책관, 조만희 재산소비세정책관 등 주요 고위 간부들은 자타가 공인하는 ‘세제통’이다. 주무과장들도 대부분 세제실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이다. 이렇다 보니 홍남기 전 부총리가 지난해 초 세수 추계 실패를 사과하면서 ‘세제실의 폐쇄적인 구조로 외부와 소통이 없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업무 패턴이 상대적으로 고정돼 있다는 점도 MZ세대 사무관들을 끌어들이는 또 다른 이유다. 통상 각종 경제 현안에 즉각 대응해야 하는 경제정책국이나 국제금융국과 달리 세제실은 바쁜 시기가 정해져 있다. 8월의 세법 개정안 발표가 연간 가장 중요한 행사다. 한 세제실 과장급 간부는 “기재부 모든 부처가 항상 바쁘긴 하지만 세제실은 상대적으로 바쁜 시기가 정해져 있다 보니 업무 패턴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세제실에 배치된 사무관들의 고충도 적지 않다. 가장 큰 고충은 세법 분야가 광대하고 복잡하다는 점이다. 행정고시(5급 공무원 공채) 재경직 시험에서 세법은 필수가 아닌 선택과목이다. 이마저도 세법을 선택하는 수험생은 극히 드물다. 실제로 2021년 기준 선택과목 6개 중 통계학이 79.9%, 국제경제학이 19.5%다. 세법을 선택하는 수험생은 사실상 없다는 것이 합격한 사무관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이렇다 보니 세제실에 처음으로 배치된 사무관들은 회계사 수험생들이 듣는 인터넷 강의로 세법을 공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재부 내에서 세법 관련 교육이나 강의 프로그램이 일절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 세제실 사무관은 “세법 체계를 만드는 공무원이 세법을 모른다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 밤을 새워서 인터넷 강의를 들으면서 세법을 공부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인터넷 강의를 들은 후 세법에 대한 이해가 쌓이면 세제실 내부 공부 모임 등을 통해 실력을 쌓아간다. 공부 모임에선 세법 조문을 암기하고, 관련 조문에 대한 토론을 통해 실력을 쌓고 있다는 것이 사무관들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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