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으로 거듭난 아버지의 양조장, 금풍양조장 사람들

서울문화사 2023. 5. 5.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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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온수리에는 100년을 지켜온 오래된 건물이 있다. 술 빚는 그윽한 향기가 가득한 금풍양조장에서 아버지 양재형과 금풍양조장의 맥을 잇는 아들 양태석 대표를 만났다.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느껴지는 양조장 2층에서 아버지 양재형 씨와 양태석 대표.
어머니가 직접 쓴 글씨로 간판을 달았다. 그 당시의 표기법을 따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적은 ‘금풍양조장’.
강화쌀과 좋은 물로 만든 금풍양조장의 무탄산 막걸리.
오래전부터 사용하던 술독에서도 세월의 깊이를 느낄 수 있다.

자기소개 부탁합니다.

아들 3대째 이어져오는 금풍양조장 대표 양태석입니다.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인수하신 이 양조장을 운영하셨고, 저는 대학 졸업 후 홍보 마케팅 분야에서 15년 정도 일했어요. 10년 전쯤 아버지가 양조장을 다른 사람들에게 임대했어요. 그런데 양조장이 점점 노후되고, 제가 어릴 때부터 봐오던 모습을 잃어가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양조장을 이어받아 술부터 콘텐츠까지 재정비하고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먼저, 건축물부터 남달라요. 금풍양조장은 어떤 곳인가요?

아들 이 건물은 1931년에 건축물대장에 등재됐는데, 1920년대부터 양조와 판매를 해왔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해요. 그래서 100년 양조장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어요. 1층에는 100년이 넘은 우물과 왕겨를 사용한 벽체, 2층에는 누룩을 띄우던 넓은 창고가 보존돼 있죠. 그래서 작년에는 인천시 등록문화재로 등재됐습니다. 건축 당시 원형을 유지하고 있고 개항기 이후 지역 산업 과정의 역사를 담고 있는 의미가 인정받은 거죠. 목조건물이다 보니 오랜 세월을 지나온 만큼 안전 진단을 통해 보수공사를 해서 최대한 원형을 보존해 많은 이들과 이 공간을 공유하고 싶습니다.

자신이 평생 걸어온 길이기에 자식에게 물려주는 것이 뿌듯하면서도 그 힘든 과정을 알기에 또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아버지의 마음은 어떠셨나요?

아버지 나도 아버지에게 이 양조장을 물려받았지만 양조 기술을 하나도 모르는 상태였어요. 아버지 친구가 하는 논산 양조장에 가서 아무도 모르게 한 달간 배워오기도 하고,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어요. 그리고 양조장을 물려줘도 태석이에게 물려줄 줄은 몰랐죠. 막내거든. 그런데 어느 날 오더니 “제가 해보겠습니다” 하는 거야. 그때는 임대해주고 있었는데, 언제까지 남의 손에 맡길 수도 없으니 한번 해봐라 했죠. 쉽지 않은 일이라 걱정은 됐지만요.

아들 아버지는 어렸을 때부터 제가 뭘 한다고 하면 한 번도 반대하신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이 양조장을 하겠다고 말씀드리니 흔쾌히 해보라는 이야기가 없으신 거예요. 반대는 하지 않으셨지만. 그래서 제가 가지고 있는 계획들을 아버지 앞에서 프레젠테이션했죠. 마케팅을 하면서 늘 해왔던 일이지만 아버지 앞에서 하려니 떨리더라고요.(웃음) 그 프레젠테이션을 듣고 아버지도 좀 더 확신을 가지셨던 것 같아요.

막걸리라는 것이 최근에는 젊은 세대도 즐기는 술이 됐지만 예전에는 그렇지 못했어요. 양조장을 한다고 결심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 같은데요.

아들 저도 하고 있었던 일이 있었기 때문에 양조장을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저희 양조장을 알고 있는 주변 사람들은 너무 좋은 공간이 방치되고 있는 것이 아깝다고 이야기하곤 했어요. 마케팅 일을 오래 하다 보니 남을 위한 것 말고 나만의 것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들었어요. 질문처럼 막걸리는 오랫동안 ‘중장년층이 먹는 술’이라는 이미지가 강했어요. 또한 주류 소비 패턴의 변화로 맥주와 소주에 대한 수요가 급격히 늘면서 사양산업화되고 있었죠. 2010년 초반에 반짝 주목받더니 다시 인지도가 하락했어요. 그런데 최근 전통주 소비가 늘고 다양한 협업으로 새로운 이미지를 입힌 막걸리가 다시 주목받고 있어요. 저는 이런 흐름을 타고 금풍양조 막걸리의 이미지를 바꿔보고자 해요.

어떤 방식으로요?

아들 혼자서 시작하다 보니 유통까지 감당하기는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공간에 먼저 주목했어요.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문화재가 된 양조장이 전국에 흔하지 않잖아요. 아버지와 제가 만든 술은 재료도 맛도 달라요. 그런데 양조장만은 그대로거든요. 그래서 여기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자 싶었어요. 공간에 대한 이미지나 기억이 좋으면 음식 맛도 오랫동안 기억된다고 생각해요. 오래된 공간이 주는 좋은 기운이 분명히 있거든요. 그 좋은 기운을 받으며 술을 마시면 좋은 기분을 만들어내죠. 그런 이미지를 심어주고 싶어요. 술을 즐기지 않는 사람도 우리 술은 선물하고 싶게 하는.

당시 직접 사용했던 손때 묻은 양곡 보관 대장도 이제는 하나의 역사가 되어 양조장 2층에 전시돼 있다.
프리미엄 막걸리를 표방하며 양태석 대표가 새로 만든 금학탁주. (왼쪽부터)골드는 보디감이 풍부한 높은 도수의 막걸리로 13도로 만들었다. 그린은 강화 인삼 향이 가득한 인삼 막걸리로 알코올 도수는 9.6도이며, 블랙은 부드럽고 크리미한 맛을 느낄 수 있는 막걸리다. 모두 750ml 용량이며 골드와 그린은 3만3천원, 블랙은 2만8천원.
쌀을 쪄서 말리고 누룩을 만들었던 공간으로 그 당시 사용했던 누룩판이나 선대 창업주의 사진, 직접 사용한 책상과 술독 등으로 옛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고 남겨두었다.

양조장의 콘텐츠화는 확실히 양태석 대표가 할 수 있는 영역이네요. 금풍양조장은 어떤 막걸리를 만드나요?

아버지 이건 확실히 양 대표가 잘할 수 있는 영역이죠. 우리 때하고는 시대도, 막걸리에 대한 이미지도, 정책도 많이 바뀌었으니까요. 쌀이 귀해 밀가루로 막걸리를 만들고, 군 단위로 유통할 수밖에 없는 시절이었어요. 나는 그때가 익숙하고 거기에 적응한 사람이고, 요즘은 온라인으로도 전국의 막걸리를 살 수 있는 시대잖아요. 길에 앉아 새참으로 마시는 막걸리는 이제 없죠. 그래서 지인과 대화하다가 막걸리의 고급화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어요. 나는 평생 막걸리를 만들었어도 1,500원 이상을 못 받아봤는데 5만원, 10만원짜리 막걸리를 누가 살까 싶었어요. 그래도 양 대표에게 이야기를 해봤죠.

아들 지금 나오는 금학탁주는 아버지가 제안하신 고급 막걸리를 저만의 방식으로 만든 거예요. 그리고 온라인 유통이 가능한데 탄산이 있으면 유통 과정에서 맛이 변하고 막걸리가 새기도 하는 점이 싫더라고요. 그래서 고소한 맛을 최대한 살린 무탄산 막걸리를 만들었어요. 금풍양조 막걸리는 맛 좋기로 유명한 강화쌀을 무농약으로 사용하고 좋은 물로 만들어요. 이곳이 온수리인데 따뜻한 물이 나온다는 뜻의 지명이에요. 저희 제품은 지금도 필터로 정화한 지하수를 사용해요. 양조장 내 우물은 문화재 담당자의 말로는 굉장히 큰 편이라고 하더라고요. 또한 감미료를 사용하지 않고 쌀과 누룩만으로 만듭니다. 지역의 특산물을 사용해 강화도 최초 지역특산주 면허도 취득했죠.

가업을 물려받았다는 부담감도 있었을 것 같아요.

아들 오랫동안 지역 어른으로 계신 아버지가 있어 더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지만 아버지가 이루어놓은 길을 제가 더 매끄럽게 만들어야 한다는 사명감도 있죠. 아버지가 계셔서 도움을 받은 것이 많아요. 금풍양조장의 가장 적극적인 서포터즈죠. 2021년에 처음 술이 나왔을 때 저희 양조장의 가장 큰손이셨어요.(웃음) 매일 나오셔서 살펴봐주시고. 아버지는 지금도 대외 활동이 많으신데, 막걸리가 필요할 때마다 오셔서 늘 제값 치르고 구매해 가세요.

아버지 내가 일했던 때하고는 모든 게 달라졌으니 내 방식을 강요할 수는 없잖아요. 그저 뒤에서 묵묵히 지켜보고, 도울 수 있는 건 도와야지요. 내가 해왔던 일들이 시간이 지나 가치 있는 일로 바뀌는 모습을 보니 뿌듯하면서 기특하죠.

앞으로 계획도 궁금해요.

아들 작년 ‘찾아가는 양조장’으로도 선정됐고, 2층 보수공사가 끝나면 양조장을 알리는 데 더욱 힘을 쏟으려 합니다. 양조장 옆에 야외 공간을 마련해 다양한 체험도 제공하고, 운전 때문에 시음을 못 하는 분들을 위해 ‘아인술페너’라는 메뉴도 만드는 등 다양한 이벤트를 계획하고 있어요. 그래서 가까운 시일 내에 금풍양조장이 강화도의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자 합니다.

금풍양조장 @on_sul

양조장 골목을 지나는 아이들의 친구이자 ‘영업 상무’인 반려견 금풍이가 반겨주는 100년의 세월이 담긴 양조장. 3대째 이어져온 금풍양조장에서는 강화쌀과 좋은 물로 만든 프리미엄 막걸리를 만날 수 있다. 쌀 포대로 만든 보냉 팩, 막걸리 2병이 온전히 담기는 강화도 내 카페에서 받은 원두팩 패키지 포장 등 친환경적인 접근도 특징.

주소 인천시 강화군 길상면 삼랑성길 8

영업시간 낮 12시~오후 5시 30분(주말 오전 11시 오픈)

문의 070-4400-1931

에디터 : 이채영 | 사진 : 김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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