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린 월급 받으실래요 아니면 사장님 처벌하실래요
왜 임금체불에 무감각할까…“반의사불벌이 원인”
밀린 월급보다 적은 벌금…억울한 근로자는 다시 ‘을’
임금체불 사업주 중 나쁜 사업주만 골라 제재한다는 정부
[이데일리 최정훈 기자] 임금체불은 한국 사회의 고질병이다. 지난해 임금체불 규모는 1조3500억원로 24만명에 달하는 근로자가 임금을 받지 못해 고통받고 있다. 우리나라의 임금체불 규모는 일본에 18배에 달할 정도다.
임금체불은 주로 작고 불안정한 사업장에서 발생한다. 지난해 임금체불의 절반 이상은 제조업과 건설업에서 발생했고, 30인 미만 기업에서의 임금체불액이 전체의 75%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3월 인천에서 할인마트를 운영하는 김모씨는 근로자 10명에게 6300여만원에 달하는 임금을 주지 않았다. 고용노동부에 신고해 기분이 나빴다는 게 이유였다. 김씨는 “한번 벌금 내면 그만”이라고 말하며 조사를 회피하기도 했다.
처벌 수준이 높은데도, 사업주들의 임금체불에 무감각한 이유는 무엇일까. 노동계에선 원인이 ‘반의사불벌’ 조항에 있다고 본다. 임금체불 사업주는 징역까지 받을 수 있지만, 1심 선고 전까지 근로자와 합의하거나, 근로자로부터 처벌불원서를 받으면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의미다.
반의사불벌 조항은 2005년 7월 근로기준법 개정과 함께 도입됐다. 밀린 임금을 빠르게 청산할 수 있도록 유도하기 위한 차원이었다. 임금을 지급하지 않으면 연 20% 지연이자를 물리는 등 경제적 제재를 강화하는 채찍과 함께 도입된 일종의 당근책이었다.
그러나 제도 도입 후 사업주가 밀린 임금을 대가로 처벌불원서를 요구하고,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으면서 악순환에 빠진다는 현장의 목소리가 커졌다. 특히 반의사불벌 조항은 근로감독관이 근로자에 합의를 종용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임금체불 규모는 해마다 늘어나 2011년 처음으로 1조원을 넘긴 후 한 번도 1조원 밑으로 내려온 적이 없다. 그러나 법 시행 이후 근로감독관의 시정지시 등 행정지도를 통한 체불청산은 대폭 늘었다. 법 시행 이전인 2004년 행정지도 청산 비율은 28.5% 수준이었지만, 지난해에는 59.8%으로 뛰었다.
처벌이 강하니 반의사불벌 조항이 효과가 있던 것 아닐까. 그러나 실제로 임금체불로 중형을 처벌받는 사업주는 드물다. 드문 걸 넘어, 밀린 임금보다 적은 벌금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업주가 체불한 액수 대비 벌금액이 30% 미만인 경우가 77.6%를 차지한다.
약한 처벌과 반의사불벌이 더해지니, 임금을 받지 못해 억울한 근로자가 다시 ‘을’이 된다. 체불임금을 받기 위해 시간과 비용을 들여 민사소송을 하는 것 자체가 근로자에겐 큰 부담이기 때문이다. 사업주는 이런 상황을 노려 체불임금의 전부가 아닌 일부만 주는 대신 처벌불원서나 고소취소장을 써달라고 요구하는 사례도 심심치 않다.
나쁜 사업주는 임금체불자료가 신용정보기관에 제공돼 대출·이자율 심사나 신용카드 발급 등에 영향을 받게 된다. 또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사업이나 보조가 제한되고 공공사업 입찰 시에도 감정을 받는 등 불이익을 부여할 계획이다.
나쁜 사업주에게도 한 번의 기회는 더 주어진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브리핑을 통해 “일시적 경영상 어려움 등으로 체불이 발생할 수 있는 만큼, 대상 사업주에게 충분한 기간을 줘 체불을 청산하도록 유도할 것”이라며 “융자제도 활용 등 구체적인 청산 계획을 제출하면 위원회의 객관적 심의를 거쳐 제재하지 않는 방안도 두겠다”고 설명했다.
최정훈 (hoonism@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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