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호를 만드는 기업들](20) 우주발사체 개발 역사 모두 카메라에...매년 5만km 달렸다
’5, 4, 3, 2, 1’
지난해 6월 22일 오후 4시 전남 고흥 외나로도 나로우주센터. 카운트다운을 마치자 한국형발사체 ‘누리호’가 하늘로 솟구쳤다. 순식간에 우주를 향했다. 환희의 순간이었다. 발사 중계 영상을 보며 국민 모두가 환호의 소리를 질렀다.
같은 시각 같은 장소. 한 남성이 팔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10kg 가량의 방송용 ENG카메라를 들고 누리호를 쫓고 있었다. 누리호 발사의 모든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서다. 수직으로 빠르게 우주를 향하는 누리호를 찍기 위해선 카메라도 수직으로 세워 찍어야 한다. 오롯이 팔로 무게를 버터야 한다. 자칫 방심하면 중계 화면에서 누리호를 놓칠 수 있는 긴박한 순간이다.
국내 유일 우주발사체 촬영 경험자이자 전문가인 김중호 씨를 만났다. 그는 한국 최초의 우주발사체인 ‘나로호’부터 이번 누리호까지 국내 우주발사체 발사 당시 영상을 모두 촬영했다. 발사 뿐 아니라 엔진과 부품 실험 등도 모두 촬영하며 국내 우주발사체의 모든 순간을 함께 했다.
그런 그에게 그간의 촬영은 긴장감의 연속이었다. 김 씨는 “누리호 개발 과정처럼 촬영 과정 역시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처음 해보는 것들이었다”며 “하나의 실수라도 있으면 유일한 영상 기록이 날아간다는 압박감이 있었다”고 말했다.
2021년 2월 수행된 누리호 1단 엔진 연소 시험도 그 중 하나였다. 누리호 1단은 75t 엔진이 하나 장착된 2단과 7t 엔진을 단 3단에 비해 추력이 크고 구조가 복잡해 기술적으로 개발하기가 가장 어렵다. 1단에 쓰이는 4기의 75t 엔진이 마치 1기 엔진처럼 작동하듯 성능을 내야 한다.
각 엔진에 공급되는 연료와 산화제를 정확히 제어해 공급해야 하고 엄청난 화염을 내뿜으며 다른 엔진에 영향을 주는 엔진들끼리의 수평과 균형을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다. 하나라도 추력이 어긋나는 순간 발사 실패로 이어질 수 있다.
1단 엔진 연소시험 촬영은 누리호 개발 기록을 남겨둔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만에 하나 시험을 실패하면 원인을 찾는 영상 데이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 씨는 “연소 시험 때 엔진의 온도가 약 3000도까지 올라간다고 하는데, 어느 지점에 카메라를 놔야 촬영이 가능할지 아무도 몰랐다”며 “딱 한 번 있는 실험을 어떻게 잘 촬영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고 말했다.
결론은 ‘열기가 생각보다 약하다’였다. 카메라를 엔진 2~3m 거리에 둬도 카메라가 정상 작동하는 것을 확인했다. 1단 엔진이 불을 뿜는 모습을 성공적으로 포착했다. 함께 촬영을 준비한 이성민 항우연 홍보실 선임행정원은 “엔진이 하단으로 불을 뿜으며 열기가 특정 방향으로 향했기 때문”이라며 “결국 시도를 해봤기에 쌓을 수 있었던 촬영 노하우”라고 말했다.
촬영 노하우는 발사 때도 필요하다. 김 씨는 “발사 때 누리호를 어느 정도 비율로 화면에 담는지가 중요하다”며 “우주로 솟구치는 발사체의 모습을 시기에 따라 타이트하게 혹은 루즈하게 잡는 정도가 달라진다”고 말했다.
항우연 관계자들과 한 몸이 되는 것에도 노하우가 쌓였다. 엔진 실험이나 발사 직전 긴장한 연구자들 속에 섞여 개발 과정을 기록하고 그들의 모습을 담았다. 때론 그들의 긴장도 풀어주는 역할도 했다. 항우연 홍보실과는 긴밀히 협업하며 방송사 영상 송출을 도왔다.
해외에서는 우주발사체 영상 촬영자를 전략적으로 양성하고 있다. 미국항공우주국(NASA)과 일본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 등은 관련 팀을 꾸리고 전문가를 키우고 있다. 심지어 북한도 로켓 관련 자체 영상팀을 갖추고 있다. 생생히 영상을 촬영해 국민에게 영상을 전달하고 관련 사업 추진에 대한 공감대를 얻기 위해서다.
민간 우주발사장 건축 등으로 국내 우주발사체 촬영 건수는 더욱 늘 것으로 전망된다. 김 씨는 “국내에 우주발사체 영상 촬영 경험을 갖고 있는 사람은 항우연 홍보실 영상 담당을 포함해 고작 2명에 불과할 것”이라며 “그간 쌓아온 노하우를 전수할 수 있는 시스템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씨는 1년에 30번 가량 나로우주센터를 찾는다. 영상 촬영장비를 가득 채운 차로 매년 약 5만km를 달리며 서울에서 전남 고흥을 왕복한다. 우주발사체 뿐 아니라 위성이나 항공 쪽 영상도 촬영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항우연이 촬영한 영상 103건 중 50건 제작에 참여했다.
김 씨는 “출장이 잦은 것에 대해 집에서는 거의 포기다”며 “항우연 홍보실 영상 담당 직원을 가족보다 더 자주 본다”며 너털 웃음을 보였다. 그는 “그러나 대한민국의 처음을 영상으로 기록하는데 자부심을 느낀다”고 강조했다. 그가 찍은 모든 영상은 유튜브 채널 ‘항우연(KARI) TV’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고재원 기자 jawon121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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