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빼고 모든 공직 경험한 한덕수 총리 "24시간이 모자라"
[편집자주] 윤석열정부가 오는 5월10일 출범 1년을 맞는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미국과 중국의 갈등, 공급망 재편 등으로 대한민국이 복합위기로 휩싸인 1년이었다. 윤 대통령과 각 부처 장관들은 이 위기를 돌파하며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한 1년이었다고 자평한다. 머니투데이가 쉼없이 달려온 장관들의 365일을 되돌아보며 윤석열 정부 1년을 정리했다.
"저는 저녁까지 시간이 되니 하실 말씀 충분히 다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2월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규제샌드박스 혁신기업 간담회'. 한덕수 국무총리가 불쑥 꺼낸 한마디에 기업인 등 행사 참석자들은 깜짝 놀랐다. 예정에 없던 발언이었다.
한 총리의 돌발 발언은 "규제개혁만큼은 '끝장'을 보겠다"는 의지로 읽혔다. 오후 2시에 시작한 이날 행사의 예정됐던 시간은 한 시간 남짓. 하지만 한 총리의 의지에 따라 참석자들이 쉼없이 의견을 내놨고 3시간이 지난 오후 5시에 끝났다.
한 총리는 "귀 기울여 들으면서 모르는 부분은 상세히 질문하고 부처 간 조율 방안을 제시했다"며 "그럼에도 오늘 답변드리지 못한 것들은 꼼꼼히 적어놨고 반드시 다시 답변을 드리겠다"고 약속했다.
윤석열정부 초대 총리를 맡아 내각을 통할하고 있는 한 총리의 지난 1년은 이처럼 현장에서 국민과 '소통'하며 민생 문제를 적극 해결하는 시간이었다.
관가에선 그를 '행정의 달인'이라고 부른다. 행정고시 8회 출신인 한 총리는 기획재정부 등 주요 경제부처 실·국장, 차관급 기관장, 장관, 부총리, 총리 등 공직자로서 대통령만 빼고 거의 모든 자리를 경험했다.
노무현정부때 국무총리를 한번 경험한 한 총리는 국민과 소통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안다. 국민의 삶 속에서 소통하며 문제를 찾고 해결하는 게 공직자의 역할이란 게 그의 지론이다.
한 총리가 그간 공식적인 자리에서 직접 육성으로 연설한 횟수는 130번이 넘는다. 주말을 제외하면 이틀에 한 번 꼴로 연설을 했다. 한 총리는 그 연설에 진심을 담는다. 윤석열정부의 정책 방향은 물론 비전을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리기 위해서다.
그는 모든 정책과 국가 운영 방향을 국민이 모른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참모진에게도 수시로 "정책 자료를 만들땐 국민들이 핵심을 제대로 알 수 있도록 이해하기 쉽게 만들라"고 지시한다.
한 총리는 이번 정부의 첫 국무총리로서 국민들에게 △상식과 공정의 원칙이 바로 서는 나라 △민간과 시장, 기업의 역동성이 살아있는 나라 △성장의 온기가 골고루 퍼져서 국민 행복이 하루하루 높아지는 나라 △수도권과 지방이 함께 잘 사는 나라 등을 약속했다.
그는 지난 1년간 이처럼 큰 정책 뼈대를 토대로 국민과 소통했다. 한 총리는 지난해 5월 취임할 때 "사회 각 분야의 다양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갈등으로 멀어진 사회를 연결해 나갈 것"이라며 "더 소통하면서 국정 운영엔 소관과 경계가 없도록 할 계획이다"고 강조했다.
총리실 관계자는 "한 총리는 지난 1년간 부처 간 벽을 허물고 민생을 챙기면서 국회는 물론 다양한 이해 관계자들을 만났다"며 "현장방문을 비롯해 모든 행사에 참석할 때 진심을 다해 소통했다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총리로 일하고 있는 지금을 "국가에 대한 마지막 봉사"라고 떳떳하게 얘기한다. 한 총리는 거기서 나온 자신감으로 파격적으로 실행한 게 있다. 바로 기자단 백브리핑이다.
한 총리는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100일이 지난 2022년 8월16일 중대 선언(?)을 했다. 매주 한차례씩 출입기자단과 '백브리핑' 시간을 갖겠다는 것.
백브리핑은 기자들과 비공식적으로 정책의 맥락과 배경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다. 공식 브리핑과 깊이 등이 다르다. 민감한 사안에 대해 얘기도 할 수밖에 없다. 정치적 고려나 눈속임이 쉽지 않다.
현안에 대한 질문이 쏟아지고 한 총리는 허심탄회하게 답한다. 이태원 참사, 가스요금 폭등, 전세사기 피해 등 대한민국 사회를 뒤흔든 이슈에 대해 한 총리는 피하지 않고 자세히 설명했다.
한 총리는 "기자들과 함께 하는 백브리핑은 민심을 겸허히 듣고 이해를 구하는 소통의 장"이라며 "국민께 보다 더 진솔하게 이해를 구하고 소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다"며 고 강조했다.
한 총리는 지난 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가진 백브리핑까지 총 22차례(지방 현장 일정이 많아져 올해부턴 격주로 개최) 기자들을 만났다. 신년 기자회견 등 다른 행사까지 감안하면 직접 기자들을 만난 횟수는 더 많다. 역대 총리 중 기자단과 가장 많은 간담회 및 회견을 했다.
한 총리는 지난 2일 열린 백브리핑에서 취임 1년 소회를 얘기하며 "지난 1년은 '변화'라는 한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민간 주도 경제, 규제 혁신을 통한 투자 주도 성장, 대북 억지력 확보, 국제적 연대, 동맹과의 관계 개선 등의 변화가 있었다"며 "민간 기업들이 (윤석열 정부 이후) 국내에 남아서 사업을 본격적으로 더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신 분들도 늘어났다고 본다"고 했다.
각 부처 장관들과 함께 '120개 국정과제' 달성을 위해 힘쓰지만 국회에서 막히는 게 많다. '양곡관리법 개정안' 같은 게 대표적 예다. 한 총리는 "전형적인 포퓰리즘 법안"이라고 목이 터져라 설득했지만 결국 야당의 숫자를 넘지 못했다.
지난 1년을 돌이켜보면 여소야대 현실에 갇힌 윤석열정부의 한계를 넘어서는 게 한 총리에게 주어진 미션이자 고민의 시작점이었다. 한 총리의 모든 관심은 민생에 맞춰져 있는데 여소야대 상황이 그를 흔들었다.
그래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한 총리는 윤 대통령이 미국을 국빈방문한 지난달 24일 국무회의를 직접 주재하고 "국제유가 동향 등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여전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긴장을 늦추지말고 물가 상승 압력을 점검하고 적시에 대응해야한다"며 "정부는 민생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이와 직결되는 서민 물가 안정에 계속해서 전력을 기울이겠다"고 강조했다.
한 총리는 이날 유류세 한시적 인하 조치를 8월말까지 연장하고 닭고기와 명태, 대파와 무 등 밥상 물가에 큰 영향을 주는 농축수산물 7개 품목의 관세율을 한시적으로 인하했다. 민생 경제의 부담을 덜기 위한 특단의 조치다. 국회를 통하지 않더라도 어려운 재정 여건에서도 국민의 삶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부분을 살폈다.
총리실 핵심 관계자는 "한 총리는 국무위원들을 비롯해 참모진에게 민생법안이 국회의 벽에 막히더라도 시행령을 비롯해 국회를 통하지 않고 민생을 위해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며 "지난 1년간 모든 부처가 적극 행정에 나선 배경"이라고 말했다.
정진우 기자 econpho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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