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주년 5·18] ① 느닷없이 광주에 온 '결이 다른 두 사죄'
[※ 편집자 주 = 5·18 민주화운동이 마흔세돌이 된 올해는 '사죄'의 해였습니다. 오랜 세월 부정당하거나 왜곡에 시달리던 5·18의 역사에 비춰보면 상당한 진전이지만 공감대 없는 일방적인 화합 행보가 극심한 갈등으로 이어졌습니다. 연합뉴스는 43주년을 맞은 5·18 광주의 현실을 살펴보고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를 되짚어보는 3편의 기사를 송고합니다.]
(광주=연합뉴스) 천정인 기자 = 5·18 민주화운동 43년 만에 특전사 예비역 단체와 전두환 손자가 광주를 찾아 고개를 숙였다.
자신들도 피해자라는 호소에 가까운 사죄를 한 특전사동지회와 할아버지 전두환을 대신해 광주를 찾은 손자 전우원 씨의 무조건적 사죄에 대해서는 냉정한 평가와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는 시각이 함께 공존한다.
엇갈린 평가 속에 43년 묵은 과거사 청산을 위한 의미 있는 첫걸음이 될지, 속 빈 강정에 불과한 이벤트에 그치게 될지 갈림길에 섰다.
'사죄인 듯 아닌 듯' 특전사동지회 대국민공동선언
군복을 입은 특전사동지회원 150여명이 지난 2월 19일 광주 서구 5·18 기념문화센터 대동홀을 가득 채웠다.
5·18 부상자회와 공로자회가 이들과 용서와 화해를 하겠다며 '대국민공동선언식'을 마련한 자리였다.
5·18 항쟁 당시 잔혹한 진압 작전의 선봉에 섰던 공수부대를 공공의 적으로 대해 온 광주와 5·18의 정서에 비춰보면 파격이었다.
가해자의 사죄와 피해자의 용서, 그리고 화합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를 갖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특전사동지회는 대국민공동선언식에서 가해자의 지위를 인정하지 않는 태도로 일관했다.
오히려 "상부의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었던 군사정권의 희생양이었다"며 자신들도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옳고 그름을 따지는 '시비(是非)'를 가릴 게 아니라 '양쪽이 모두 옳다'는 '양시(兩是)'적 관점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입장도 공식적으로 언급했다.
최익봉 특전사동지회장이 5·18 진압 작전에 대해 "질서 회복의 임무를 수행한 선배들의 노고와 희생은 결코 왜곡되거나 과소평가 돼서는 안 된다"고 발언한 것도 이러한 인식에서 나왔다.
잘못을 인정하는 사죄라기보다 어쩔 수 없었던 상황을 이해해 달라는 호소에 가까웠다.
당장 지역사회에서는 용서와 화합으로 이어지기 위해선 진정성 있는 사과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하게 반발했지만, 자리를 마련한 5·18 두 단체는 "이미 사과를 받았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그 많은 피해자를 일일이 찾아가 사과할 수 없고, 5·18 묘지를 참배하는 것이 곧 사죄의 의미"라며 "당사자인 우리(5·18 단체)가 사죄를 받아들이고 용서와 화합으로 나아간다는데 제3자가 반대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원죄 짊어진 전두환 손자의 사죄…손 내민 광주
"제 할아버지 전두환 씨가 5·18 학살의 주범입니다."
한마디 사죄 없이 세상을 떠난 할아버지 전두환을 대신해 손자인 전우원 씨는 지난 3월 31일 5·18 유가족과 영령 앞에 무릎을 꿇었다.
5월 항쟁 당시 태어나지도 않았던 우원 씨지만 전두환 일가의 구성원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스스로 죄인을 자처하며 이틀간의 광주 일정 내내 고개를 숙이고 또 숙였다.
그는 "군부독재에 맞서다 고통을 당한 광주 시민께 가족을 대신해 다시 한번 사죄드린다"며 "더 일찍 사죄의 말씀을 드리지 못해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말했다.
이어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유가족과 피해자들의 마음이 풀릴 때까지 계속 찾아와 용서를 빌겠다"고 밝혔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그의 무조건적인 사죄를 두고 냉정한 평가를 하는 이들도 있다.
'전두환의 책임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 채 하는 사과'라거나 '전두환 일가에 대한 반감에서 비롯된 사과'라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5·18 유가족을 비롯한 광주 사회는 우원 씨의 용기에 따뜻한 손을 내밀었다.
고(故) 문재학 열사의 어머니 김길자 여사는 "나이도 어린 사람이 그동안 얼마나 두렵고 힘든 고통의 시간을 보냈을까 가슴이 아프다"며 오히려 그를 위로했다.
다른 5월 어머니들도 우원 씨에게 '외갓집이라고 생각하고 자주 오라'며 손을 붙잡거나 품에 안았다.
5·18 기념재단 조진태 상임이사는 "5·18에 대해 잘 알지 못하더라도 우원 씨의 순수한 마음이 느껴진다"며 "그의 사죄가 용서, 화해, 상생으로 가는 하나의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5·18 민주묘지관리사무소 김범태 소장도 "(사죄)하지 않아도 아무 일 없이 살 수 있었는데 (사죄를) 결단하고 찾아온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iny@yna.co.kr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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