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브스夜] '꼬꼬무' 어느 날 사라진 138명의 소녀들…경기여자기술학원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
[SBS연예뉴스 | 김효정 에디터] 138명의 소녀들이 사라졌다.
4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에서는 '새벽 2시의 라이터 - 사라진 소녀들'이라는 부제로 어디에서도 회자되지 못한 그날 이야기를 조명했다.
지난 1995년 8월,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한 건물에서 138명의 사람들이 사라졌다. 그들이 사라진 후 남은 것은 폐허와 여성의 이름이 쓰인 초록색 슬리퍼 더미뿐. 대체 그곳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사실 제작진은 해당 방송을 준비하면서 초록색 슬리퍼의 주인공들을 단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 이에 방송에서는 제보를 요청했고, 얼마 후 초록 슬리퍼의 주인들이 전화를 걸어왔다.
당시 10대 청소년이었던 주인공들은 아직도 그날을 생각하면 괴롭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방송에서 언젠가 한번 이야기해 주기를 기다렸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1995년 6월 단짝인 선옥이와 금선이는 함께 그 의문의 건물로 향했다. 그런데 이들을 기다리던 사감은 처음부터 아이들에게 적대적이었다. 그리고 사감은 아이들에게 두 달 동안 절대 말을 해선 안 되며 사회의 것들은 모두 잊으라고 했다.
두 사람이 간 곳은 경기도 여자 기술 학원. 이곳은 흡사 교도소 같았다. 아이들에게는 똑같은 옷을 입히고 건물은 높은 담과 철조망으로 외부와 철저히 단절되어 있었다. 여기에 청원 경찰과 경비견까지 건물을 봉쇄하고 소녀들을 감시했다.
기숙사는 1,2층으로 나뉘어 각 층마다 10개의 방이 복도 양 옆으로 늘어져있었고, 각 방에는 7~8명의 아이들이 갇혔다. 아이들이 지내는 건물은 늘 안에서 잠그고 밖에서는 쇠사슬로 다시 한번 문을 잠갔다.
그리고 그 안에 갇힌 아이들은 최소 10개월에서 길게는 1년까지 이 학원에서 지내야 했다. 13세부터 33세까지 다양한 연령의 이들은 대체 왜 이곳에 오게 됐을까?
소녀들은 가출을 하거나 태도가 불량하다는 이유로 이곳에 보내졌다. 또한 고아원 출신 아이들은 기술을 배우기 위해 이곳으로 왔고, 집이 어디냐는 질문에 답을 못하는 아이들은 가출 청소년 단속반에 의해 막무가내로 잡혀 왔다.
이곳에서의 생활은 군대 그 이상이었다. 운영자들은 아이들을 인간 이하로 취급했고, 매일매일 칫솔로 청소를 시켰다. 해당 학원에서 진행하는 기술 수업은 시대를 거스르고 있었고, 가르칠 것이 없자 아이들에게 매일같이 청소를 시켰던 것.
공포 분위기가 가득한 이 학원, 부모님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어도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철저히 아이들은 운영자들에 의해 고립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중 8월 21일 화재 사고가 일어났다. 생활관을 삼킨 화재로 무려 아이들 40명이 숨졌다. 그런데 현장에 도착한 소방관들은 화재 현장을 보고 의아함을 느꼈다. 동시 다발적으로 건물 곳곳에서 불이 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방화 사건, 범인은 바로 아이들이었다. 무려 17명의 아이들이 불을 질렀다. 아이들은 학원을 탈출하고 싶어서 불을 질렀던 것. 이에 아이들은 비난을 한 몸에 받았다.
그런데 본 사건을 담당한 인권 변호사는 무엇인가가 감춰져 있다고 생각했다. 사건을 파면 팔수록 이상한 이 사건.
사상자는 2층 화장실에서 대부분 발생했다. 발화지점은 1층이 많은데 이렇게 된 이유는?
사실 며칠 전 학원에서는 사망 사고가 발생했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아이들이 종종 있었던 것. 특히 원생 하나가 극단적인 시도를 하다가 학원에 발각됐으나 학원은 손목을 그은 원생에게 밴드 하나만 붙여주는 것으로 처치를 끝냈다. 이는 아이들의 분노를 자아냈다.
그리고 얼마 후 경보 장치가 고장 난 틈을 타 탈출을 한 아이들이 나왔고, 이를 보고 또 다른 아이들이 탈출을 시도했다. 그러나 탈출 직전 청원 경찰에게 붙잡혔고, 탈출에 실패한 아이들은 죽도록 맞았다. 몇 가지 사건으로 아이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그리고 아이들은 탈출을 꿈꾸며 방화를 시도했다. 이는 원생들 대부분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아이들은 불이 나면 문을 열어주겠지, 그 틈에 지옥 같은 학원을 벗어나야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불이 난 후 아이들은 살려달라고 애원했지만 아이들의 비명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경보 장치도 울리지 않았고, 사감을 비롯한 어른들 누구도 보이지 않았다.
참다못한 아이들은 소화기를 꺼내 불을 끄려 했지만 소화기는 빈 통이었다. 그리고 의자 따위로 출입문을 깨려고 했으나 문은 끄떡하지 않았다. 문은 바로 강화유리로 만들어졌던 것.
뒤늦게 나타난 남자는 2층으로 먼저 올라갔다가 1층으로 와서 출입문을 열어주었다. 이에 1층 아이들은 정신없이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2층 아이들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2층 아이들은 살려달라고 비명을 질렀지만 문이 열리지 않았다. 그리고 아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화장실로 달려갔다.
아이들은 살기 위해 쇠창살을 간신히 뜯어냈다. 하지만 구출된 것은 몇 명뿐, 대부분이 질식으로 목숨을 잃었다. 그중에는 선옥이의 단짝 금선이도 있었다.
이 사건으로 다치거나 숨진 것은 원생들 뿐이었다. 어른들은 아무 일없이 모두 탈출한 것. 특히 2층 아이들은 잠시 열렸던 2층 출입문의 존재를 몰랐다. 무슨 일인지 사감이 빠져나간 후 2층 출입구가 다시 잠겼던 것이다. 그리고 직원 그 누구도 아이들을 대피시키거나 구하지 않았다.
2층 아이들을 구조해야 할 시간, 청원 경찰들은 몽둥이를 들고 1층 아이들을 감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믿을 수 없는 이들의 행동, 그리고 결국 2층의 미스터리는 밝혀지지 않았다. 방화범인 아이들을 검거했기에 경찰은 더 이상의 수사를 진행하지 않았던 것이다.
시끄러워서 화재 경보는 일부러 꺼두고, 살려달라는 소리를 듣지 못해 2층 아이들을 구조하지 않았다는 학원 직원들의 말. 그들은 자신은 인권 유린을 한 것이 아닌 가족처럼 아이들을 대했다고 항변했다.
오랜 역사의 여자 기술학원은 사실 윤락 여성을 수용하던 부녀보호소였다. 사회는 그들을 요보호 여성이라 부르며 선도하고 갱생시켜야 할 사회악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회가 변하며 수용해야 할 윤락여성들의 수는 줄었고, 그 빈자리를 가출 청소년들이 대신한 것. 원생 138명 중 성매매 혐의는 단 10명뿐이었다.
그럼에도 학원과 담당 공무원은 원생들을 타락할 대로 타락했다며 윤락여성이 될 수도 있는 아이들이라며 잠재적 윤락여성이라 판단했다. 이 사건으로 아이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갔고, 방화를 벌인 아이들은 죄책감에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세상은 아이들을 향해 손가락질했다.
인권 변호사는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던 아이들을 위해 최후 변론을 했다. 그는 "이 사건에 대해 아이들에게 1차적인 책임이 있다고 판단하더라도 나아가 사건의 사회적 의미와 어른들의 오류를 함께 평가하는 재판이 되기를 바란다"라고 읍소했다.
그리고 법원은 원장과 직원에 대해서는 징역 1년 6개월, 2년, 집행유예 3년형을 선고했고 방화를 저지른 소녀들은 소년부 송치를 결정했다. 아이들이 참사의 모든 책임을 지는 것은 잘못됐다고 재판부가 판단한 것이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4,50대가 된 원생들. 그들은 여전히 그날 일을 잊지 못하고 반성문을 써왔다. 그리고 먼저 떠난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하다며 눈물을 흘렸다.
그날의 이야기를 들은 이야기 친구들은 남은 이들에게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해주고 싶다고 했다. 누군가에게 손가락질을 먼저 할 것이 아니라 왜 이런 일들에 계속 노출이 되어야 하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상대가 어떤 행동을 했든 함부로 낙인찍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용기를 내어 카메라 앞에 선 그날의 주인공들은 지난날의 자신들의 잘못을 후회하고 있다. 그럼에도 용기를 낸 이유는 그날의 그 아이들의 이야기를 한 번만이라도 이해해 달라고 목소리를 낸 것이었다.
그때는 너무 어려서 미처 하지 못했던 아이들의 말을 지금이라도 듣고, 제대로 기억해 달라고 간절하게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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