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365일 중 하루만 ‘어린이날’…364일 어른이날은요?

한겨레 2023. 5. 5.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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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서울 영서초 6학년생 친구 5명이 말하는 어른들 말
서울 구로구 영서초등학교 6학년생 친구들(왼쪽부터 홍준영·이예준·이두나·김지민·손지아)

‘어디 놀러 가고 싶어? 뭐 먹고 싶어? 어떤 선물 갖고 싶어?’

어른들은 어린이날이면 여러분에게 이런 것을 묻곤 해요. ‘이날만큼은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줘야지’ 생각하면서요. 그런데 사실 어린이 여러분이 기억하는 어른은 1년 365일 가운데 하루 ‘어린이날’의 어른이 아니라, 364일 동안의 어른이 아닐까요? 하루의 이벤트보다 더 중요한 건 364일 어른들의 말과 행동인지도 몰라요. <한겨레21>은 어린이의 마음속엔 어떤 어른들의 말이 기억되는지 궁금했어요. 마지막 ‘어린이 해’를 보내는 서울 구로구 영서초등학교 6학년생 친구들(김지민·손지아·이두나·이예준·홍준영)을 2023년 4월23일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어요.

공부 잘하는 친구는, 오빠는, 다른 애들은…

―어른들이 하는 말 가운데 듣기 싫은 말은 뭐예요? 두나: ‘공부해라!’

지아: ‘방 치워라!’

지민: 현실적으로 ‘손톱 잘라라’요. 그리고 ‘빨리 들어와라’도 있어요.

예준: ‘공부 다 하고 핸드폰 하는 거니?’

준영: 전 최근엔 잔소리 들은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제가 반항해서 그런지…. 축구선수가 되고 싶어서 계속 축구만 하거든요. 엄마는 그냥 ‘축구 하고 오라’고 해요.

두나: 비교하는 거요, 공부 비교. 같은 학원 친구 중에 공부 잘하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가 영단어 시험 볼 때 암기를 잘해요. ‘친구는 잘하는데 넌 왜 그래’ 이런 비교요.

지아: 그 대신 두나는 요리를 진짜 잘해요!

지민: 같은 스팸을 구워도 두나가 구운 건 뭔가 달라요.

지아: 저는 오빠랑 비교요. 오빠가 언어능력이 뛰어난데, 지난 수능 외국어 문제도 집에서 오빠가 풀었다가 만점 나왔어요. ‘네 나이 때 오빠는 몇 학년 걸 풀었는데’ 이런 말이요.

예준: ‘다른 애들은 큰데 너는 왜 작아.’ 키가 작아서 나쁘다는 건 편견이잖아요. 엄마도 ‘키가 크면 좋으니까 좀 커라’고 해요.

준영: ‘살 좀 쪄라.’ 엄마가 살 좀 찌라고 해요. 엄마가 내 인생 책임져줄 거 아니잖아요. (웃음)

두나: 어른들이 비교를 좀 안 했으면 좋겠어요.

지아: 그런데 (어른들이 하는) 그 말이 팩트(사실)이긴 하니까. 그래도 자주는 안 했으면 좋겠어요. 저희 부모님이 그렇게 자주는 안 하시지만.

예준: 다른 방법으로 사랑했으면 좋겠어요. 행동으로 보여주면 되잖아요.

―어떻게 행동으로 보여줄 수 있어요? 예준: 저는 안아줄 때 사랑한다고 느껴요.

준영: 저희 엄마는 안아줄 때마다 ‘안녕~’ 가늘게 목소리가 바뀌어요. 그게 좀 민망스러워요.

두나: 안아줄 때! 뽀뽀할 때!

지아: 부모님이 평소 많이 사랑해준다고 느껴요. 집에서 먹여주고 재워주는 것만으로도요. 저희 집 가족은 스킨십이 많아서 평소에도 많이 안아줘요. 오빠 무릎에 눕기도 하고요.

지민: 엄마한테 용돈 2천원만 달라고 했는데 토스(송금 앱)로 1만원 주실 때 사랑한다고 느껴요. 주기 싫어하는 것처럼 하시다가 많이 줄 때. 근데 1만원도 저번에 하루 만에 먹는 데 다 썼어요. 요즘 분식집이 너무 비싸서요. 즉석떡볶이가 8900원이잖아요. 6학년 담임선생님도 고마워요. 저희 선생님이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이셨다가 또 담임선생님이 되셨거든요. 친구랑 온라인상에서 약간 다퉜는데, 그게 선생님 귀에 들어갔어요. 선생님이 억울하지 않게 느끼도록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주셨어요. 그래서 고마웠어요.

지아: 저도 선생님이 했던 말은 잘 기억 안 나지만 행동으로 보여준 선생님이 기억나요. 5학년 때 선생님이 친구들 생일파티도 해주고 아이들한테 아낌없이 사랑을 주셨거든요. 옛날 저학년 때 좀 많이 엄격하고 소리치는 선생님도 계셨어요. 맨날 선서하라 하고.

지민(윗줄 왼쪽), 지아(윗줄 오른쪽), 두나(아랫줄 왼쪽), 예준(아랫줄 가운데), 준영(아랫줄 오른쪽)이 그린 그림들.

말랐다, 까맣다… 왜 지나가다가 한마디씩 할까요

―부모님 말고, 잘 모르는 어른들 말에 속상했던 적도 있어요? 지아: 길 가다가 평가를 한 번씩들 하세요, 제 몸에 대해서. ‘다리가 얇다, 피부가 까맣다.’ 어르신들은 그런 말을 하는 데 익숙하시니까.

지민: 유전적으로 오빠랑 저는 말랐어요. ‘너희는 되게 말랐다’ ‘많이 먹어’라고 지나가면서 평가하세요. 그런 말을 들으면 저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해요. 욕이 아니라 칭찬이라고 해석하려 하면 타격감은 없어요. ‘뚱뚱한 것보단 낫지, 뭐’ 이렇게 생각하려고 노력해요.

예준: 문제를 풀다가 틀렸을 때 선생님이 ‘고학년인데 이걸 틀려?’ 그럼 속상해요. 그럴 땐 그냥 가만히 듣고 있어요.

두나: ‘한 번 더 풀어보고 힘들면 선생님한테 말해’ 이렇게 말해주면 좋을 거 같아요.

지민: 우리도 의견이 있다고 생각하고 말해줬으면 좋겠어요. ‘이 부분이 선생님 생각이랑 살짝 다른데, 한 번 더 해보고 선생님한테 말해줄래?’ 이런 식으로요.

준영: 전 잘 모르는 사람 앞에서 태도가 180도 바뀌거든요. 존댓말 하고 예의 바르게 행동하고. 제 겉모습만 보고 지나가는 어른들이 좋아하세요.

지민 우리끼리 있을 때만 난리 치다가 얌전해져요. (다 같이 웃음)

―어떤 얼굴로 말했는지 어른들 얼굴을 그림으로 그려줄 수 있어요? 두나: 어떤 친구랑 다퉜을 때, 그 친구 엄마가 ‘감히 우리 딸을 건드려!’ 이렇게 말한 적이 있어요. 그때 무서웠어요.

지아: 전 ‘호호, 피부가 까맣네’ 했던 사람이 기억나요. ‘호호’가 있어야 해요. 웃으면서 말해야 해요.

예준: 고마운 거 그려도 돼요? 전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보고 변호사 꿈을 꾸게 돼서, 우영우 변호사한테 고마워서요.

준영: 지하철에 엄마랑 서 있는데, 어떤 이상한 사람이 ‘니 엄마’ 어쩌고 했는데 기분이 나빴어요. 긍정적으로 받아들였어요. 우리 엄마가 부러워서 그런 거다.

―그런 말 안 듣게 얼른 어른이 되고 싶어요? 두나: 그래도 어린이인 게 좋아요. 어린이는 귀엽고 사랑받고, 보호받을 수 있으니까.

준영: 어린이가 좋아요. 늙으면 움직이는 게 좀 둔해지잖아요. 전 밖에 나가서 뛰어노는 게 좋아요.

지아: 어리광부릴 수도 있고, 감정을 표현하려면 어린이인 게 편해요. 어른이 되면 힘들다는 얘기도 하기 힘들어지잖아요. 어른이 ‘나 너무 힘들어’ 할 수도 없고. 자기만 힘들다는 게 아님을 아니까요.

지민: 또 그런 얘길 하면 ‘다 큰 어른이 왜 힘들다고 해’ 이런 말을 사람들한테 들을 수도 있잖아요.

예준: 저는 어른이 되면 더 좋을 거 같아요. 자기한테 맞는 진로를 찾아가고, 직업을 갖고 꿈을 펼칠 수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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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내가 힘든 건 해주겠지

―예준이 빼곤 다들 어린이인 게 더 좋다는 건데, 6학년이면 이제 어린이 시절이 끝나가네요. 더 어린 친구들한테 어떤 얘기를 해주고 싶어요? 예준: ‘놀아! 어린이일 때 더 많이 놀아’라고요. 거의 하루에 반 정도는 공부하면서 보내요. 학교에서 6시간 정도 공부하고, 또 집에 와서 한두 시간 공부하고요. 다 말하면 영어, 수학, 구몬, 한자, 피아노… 아, 피아노는 공부 아닌가.

준영: ‘꿈을 빨리 선택해라.’ 엄마가 그러는데, 꿈을 어릴 때 선택 안 하고 나이 들어서 하면 운동선수든 공부든 준비가 안 돼 있대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축구선수 해야지’ 했는데 저도 좀 늦은 거예요. 1~2학년 때부터 해야 한대요. 축구 할 때 제일 재미있고 행복해요. 새벽 5시에 일어나 학교 가기 전에 축구 연습하고, 집에 가서 공 놔두고 가방 메고 가요. 제가 좋아서 하는 거예요.

지민: ‘운동 실컷 해라’고요. 저는 ‘어릴 때 놀아라’라는 마인드를 가지고 있어서, 공부를 하나도 안 해요. 학교에서도 수업 시간에 혼자 종이 가지고 놀고 딱풀로 만드는 것도 하고. 춤추기도 하고, 진실게임도 하고, 뛰는 것도 하고. 공부로는 엄마 아빠가 포기한 거 같아요. 오빠도 게임 많이 하고 공부 안 하는데, 그래도 오빠는 시험 치면 성적이 잘 나오더라고요. 저희 집안에 공부 잘하는 사람이 많은데, 전 노는 게 좋아요. 나중에 커서 열심히 하면 되겠죠? 저는 ‘미래의 지민이가 해주겠지? 미래에 힘들면 되고, 과거는 재밌으면 되고’ 이렇게 생각해요.

지아: 전 놀이도 중요하지만 어릴 때 꿈을 찾았으면 좋겠어요. 자신이 잘하는 게 뭔지, 장점을 어떻게 부각할지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선행 공부를 해놓고 놀아도 늦지 않은 것 같아요. 저도 꿈이 많이 바뀌었어요. 1학년 땐 가수였다가, 2~4학년 땐 파티시에(제빵사), 이제는 현실적으로 디자이너요. 이모티콘 작가가 돼서 다른 사람들이 제가 디자인한 이모티콘을 쓰면 뿌듯할 거 같아요.

두나: ‘어릴 때 공부하자. 어릴 때 열심히 공부하고, 어른 돼서 편안하게 다니자!’ 엄마가 저한테 하는 말이 ‘지금부터 네가 공부해도 안 늦었으니 고등학교 때 조금만 참고 20살 대학 가서 신나게 놀면 된다’고 한 게 기억에 남아요.

준영: 그렇게 (공부)해서 넌 행복해?

두나: 어.

준영: 그럼 할 말 없네. 축구선수는 근데 영어만 잘하면 돼.

두나: 너 영어도 못하지 않아?

준영: 조용히 해.

지민: 공부 안 하면 뺄셈도 잘 못하잖아.

예준: 계산기 쓰고 번역기 쓰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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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게 놀았던 게 제일 기억나요

―어린이인 동안 기억에 남게 행복했던 날, 혹은 속상했던 날 좀 얘기해주세요. 지아: 학교에서 서울랜드 간 날이 기억나요. 서울랜드 갔다가, 여기(카페)에 와서 놀았어요. 놀이기구도 재미있었고, 친구들이랑 노는 게 좋아서 기억나요.

두나: 워터파크에 가족끼리 갔을 때가 제일 행복했어요. 제일 속상했던 날은… 친구들이랑 싸운 날. 질투도 있고, 배신도 있고 그런 거요.

지민: 친구들도 몇 인방 무리가 있고, 단짝도 있고 그래요. 누구랑 한 번 놀면 배신, 자기랑 안 놀면 배신, 단짝 아닌데 같이 놀았다고 뭐라 하고. 그런 것들이요. 행복했던 날은, 가족이랑 놀러 가는 거도 좋지만 전 친구들이랑 노는 걸 더 좋아해서요. 신림동에 놀러 간 적이 있어요. 롤러장 갔다가 방탈출 게임도 하고 사진도 찍고. 친구들이랑 다닌 날 너무 행복했어요.

예준: 엄마가 ‘시험 100점 맞으면 뭐 해준다’고 했는데, 수학 100점 맞아서 치킨 사줬어요. 초등학교 6학년도 학교 시험이 있어요. 수행평가나 진단평가 같은 거요.

지민: 좋아하던 아이돌 남자 그룹이 있었는데 해체할 때 엄청 울었던 기억이 나요. 휴지 두 갑을 다 썼어요. 잘생긴 그룹이에요. 많이 울었던 걸로 치면 일본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 보고도 울고, <스즈메의 문단속>도 보고 엄청 울었어요. 전 엠비티아이(MBTI·성격유형지표)에서 에프(Feeling·감정)가 심해요.

준영: 가장 행복했을 때가 5학년 때 다른 학교랑 축구 대결해서 이겼을 때요. 슬펐던 날은 제가 축구학원 다니다가 끊었을 때요. 영어학원 때문에. 다시 다니려고요.

지혜로운 사람, 차분한 사람, 배려심 있는 사람

―어른에 대해 얘기해봤는데, 여러분은 커서 어떤 어른이 되고 싶어요? 두나: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마음을 꺾이게 하지 않는 사람이요. 활발한 사람. 포기하지 않고 다가가는 사람. 지아: 자기 의견·주장·생각을 잘 내세우고, 힘든 일이 있어도 잘 회복하는 사람이요. 감정 같은 걸 안 숨기고 말할 수 있는 어른. 자기감정도 숨겨버리면, 자기도 자신을 잘 모르는 거잖아요. 그럼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이 한 명도 없을 테니까. 자기 해보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살았으면 좋겠어요. 저희 가족은 엄마 아빠 두 분 다 계획적이셔서, 당장 하고 싶은 걸 하기보다 미래를 중시하세요. 이모 가족은 여행도 자주 가고 학원도 빠지고. 물론 미래를 위해 참는 것도 좋지만 여행도 많이 가고 싶어요. 지민: 그냥 김지민으로 살고 싶어요.

예준: 짧고 구체적이네.

지민: 저는 엠비티아이가 이엔에프피(ENFP·재기발랄한 활동가)예요. 4차원적이고 활발해요. 모르는 사람 앞에서도, 길가에서도 춤추고 그래요. 노래방 가서도 <티어스>(Tears)란 노랠 부르는데 너무 흥이 넘쳐서 손전등 들고 불렀어요. 사람들은 어른이 되면 성숙해져야겠다고 하는데, 전 어른이 돼도 활발하게 살고 싶어요.

예준: 지혜로운 사람이 되고 싶어요. 문제를 잘 해결하고, 고난이 닥쳤을 때 잘 풀 수 있는 사람. 이렇게 말하면 좀 그런데… 전 아빠를 존경해요. 아빠가 그냥 모든 일을 잘 해결해요. 저랑 누나랑 싸웠을 때도 잘 해결해주고. 화내지 않고 차분하게, 뭔가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동등하게 얘기를 들어보고, 뭘 잘못했는지 알려주고 잘 풀게 해주고요.

준영: 배려심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다른 사람한테 자신이 소중히 생각하는 걸 양보해주고, 시간을 써주는 어른이요.

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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