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널 별별 에피소드. 새벽까지 조사받은 외국선수·눈물의 기자회견

최창환 2023. 5. 5.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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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최창환 기자] 가장 화려한 무대인 만큼, 챔피언결정전(파이널)에서는 눈부신 기록과 장면도 많이 만들어졌다. 특히 ‘농구대통령’ 허재가 보여줬던 투혼은 여전히 농구 팬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명장면으로 꼽힌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는 법. 경찰 조사를 받았으나 시리즈가 진행되는 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외국선수가 있는가 하면, 파이널에 오를 때마다 우승을 빗겨 간 선수도 있었다.

※본 기사는 농구전문매거진 점프볼 5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허재, 부상은 꾀병이었나?’

1997-1998시즌 파이널은 KBL 출범 후 처음 7차전이 열린 시리즈였다. 대전 현대가 7차전에서 101-90으로 승, 창단 첫 우승을 달성했다. 실업 시절 농구대잔치 5연패, KBL 원년 시즌 통합우승을 달성한 부산 기아 왕조는 막을 내렸지만, 기아 소속으로 치른 허재의 마지막 파이널은 어느 때보다 눈부셨다. 허재는 7경기 모두 선발 출전, 5차전만 36분 48초를 소화했을 뿐 이외의 6경기는 풀타임을 뛰었다. 평균 23점 3점슛 3.6개 4.3리바운드 6.4어시스트 3.6스틸로 활약, 현대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온몸에 부상을 안고 보여준 투혼이었다. 허재는 경남 LG와의 4강 플레이오프에서 오른 손등뼈가 골절되는 부상을 입었다. 최인선 당시 기아 감독이 허재 없는 파이널을 구상했을 정도로 심각한 부상이었지만, 허재는 붕대를 감고 출전을 강행했다. 시리즈가 끝난 후 트레이드가 예정된 상태였던 만큼, 전성기를 보낸 기아에서 후회 없는 마지막 경기를 치르겠다는 각오였다. 허재는 시리즈가 거듭되며 발목과 허벅지에도 부상을 입었고, 경기 도중에는 조니 맥도웰의 팔꿈치에 맞아 눈썹 부위가 찢어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재는 지혈을 마친 후 코트에 나서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허재, 부상은 꾀병이었나?’라는 신문 기사 헤드라인이 나올 정도였다. 비록 기아는 준우승에 그쳤지만, 허재는 기자단 투표 37표 가운데 19표를 받아 플레이오프 MVP로 선정됐다. 준우승팀 소속 선수가 플레이오프 MVP를 차지하는 건 앞으로도 나오기 힘든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기아가 허재의 투혼에도 준우승에 그친 데에는 여러 요인이 있었지만, 저스틴 피닉스의 갑작스러운 태업도 빼놓을 수 없었다. 4강까지 말썽 없이 뛰었던 피닉스는 파이널 7경기 가운데 5경기만 출전했고, 그마저도 평균 12분 5초만 소화했다(당시 외국선수 제도는 2명 보유 2명 출전이었다). 최인선 기아 감독은 “당시 공식적인 이유는 ‘종아리 부상’이었지만, 챔피언결정전을 앞두고 갑자기 재계약을 보장해달라고 하더라. 들어줄 수 없는 요구라고 했더니 그때부터 태업해서 속 썩었다. 피닉스가 5분만 더 뛰었으면 이기는 시리즈였다”라고 회고했다.

새벽까지 조사받고 뛰었다니…
2001-2002시즌은 KBL 역사에 있어 대단히 기념비적인 기록이 나온 시즌이었다. 혜성처럼 등장한 신인 김승현이 이전 시즌 최하위였던 대구 동양을 단숨에 통합우승으로 이끌며 KBL 판도에 지각변동을 일으킨 것. 김승현은 류현진(야구), 김연경(배구)에 앞서 신인상과 MVP를 동시 석권한 국내 프로스포츠 최초의 사례였다.

한편, 파이널에서 동양과 7차전까지 가는 혈투를 치른 서울 SK에겐 웃지 못할 사연이 있었다. SK는 외국선수 드래프트에서 지명한 그렉 스프링필드가 부상을 입은 채 팀에 합류, 시즌 개막 전 퇴출됐다. SK는 드래프트에서 지명을 염두에 뒀던 에릭 마틴에게 연락했지만, 유럽리그 진출을 노리고 있었던 마틴의 대답은 ‘노’였다. 결국 테런스 무어를 영입했지만, 기량 미달로 8경기 만에 퇴출됐다.

SK는 삼고초려의 심정으로 다시 마틴에게 의사를 타진했고, 유럽리그 진출이 좌절된 마틴은 SK 유니폼을 입었다. 마틴은 서장훈의 수비 부담을 덜어주는 것은 물론, 뛰어난 탄력까지 뽐내며 중위권에 머물던 SK가 상위권으로 도약하는 데에 기여했다. SK는 마틴과 서장훈의 활약을 묶어 파이널까지 진출했다. SK는 2승 2패로 맞선 5차전에서 경기 종료 3초 전 조상현이 역전 3점슛까지 터뜨려 71-70으로 승, 시리즈 우위를 점했다. 이후 치른 6, 7차전 모두 패해 V2를 눈앞에서 놓쳤지만, 사실상 외국선수들 중 마틴만 뛰면서 거둔 준우승이라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선전이라 할 수 있었다. 마틴과 함께 뛰었던 찰스 존스는 ‘식물’이라는 오명을 들은 1세대 외국선수였다.

충격적인 소식은 파이널이 끝난 후 보도됐다. 마틴과 당시 전주 KCC에서 뛰었던 재키 존스가 마약 복용 혐의로 검찰의 조사를 받았다는 것. 이들은 소변 검사에서 음성이 나와 혐의를 부인했지만, 함께 마약을 복용한 한국인의 진술을 근거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피닉스의 태업으로 속앓이했던 최인선 감독은 공교롭게 이 당시에도 SK 지휘봉을 잡고 있었다. 최인선 감독은 “마틴은 시리즈가 진행되는 도중에도 마약 복용 혐의로 새벽 4시까지 조사받은 적도 있었다. 당연히 마틴뿐만 아니라 국내선수들의 컨디션도 엉망일 수밖에 없었다”라며 아쉬워했다. 마틴, 존스는 KBL로부터 영구 제명됐다.

사라진 15초, 눈물의 기자회견
동양은 2002-2003시즌에 앞서 전희철이 KCC로 이적했으나 김승현-마르커스 힉스 콤비가 건재를 과시, 파이널에 올라 2시즌 연속 통합우승을 노렸다. 동양은 원주 TG와 2승 2패로 맞선 5차전에서 역전을 주고받는 혈투를 펼쳤지만, 97-98 석패를 당하며 시리즈 리드를 넘겨줬다.

경기가 끝난 후 예기치 않은 이슈가 일어났다. 동양이 76-70으로 앞선 4쿼터 종료 1분 16초 전부터 계시기가 15초 동안 작동하지 않았다는 게 밝혀진 것. 동양으로선 이미 승리로 끝났어야 할 경기를 15초 더 치른 셈이다. 동양은 사상 초유의 ‘추가시간’에 데이비드 잭슨에게 동점 3점슛을 허용하며 연장전에 돌입했고, 결국 3차 연장전까지 치른 끝에 패했다. 경기 운영에 있어 계시원의 명백한 과실이 있었고, KBL 역시 비난을 피하지 못했다.

동양은 이를 근거로 KBL에 재경기를 요구했지만, 이내 ‘대승적인 차원’이라는 이유로 재경기를 포기했다. 정태호 당시 동양 단장은 기자회견에서 재경기 요구를 포기하겠다는 말과 함께 눈물을 쏟기도 했다. 기세가 꺾인 동양은 결국 홈에서 열린 6차전에서도 63-67로 패, 시리즈 전적 2승 4패에 머물며 준우승에 그쳤다.

당시 동양의 통역을 맡았던 문상운 KGC 여자배구단 사무국장은 “시간이 흘러가지 않는 걸 내가 처음 발견했다. 김진 감독님께 곧바로 말씀드렸고, 감독님도 감독관에게 항의했지만 경기는 계속해서 진행됐다. KBL에서 재경기하는 방안을 내놓았지만, TG 측에서 ‘그럼 허재의 허리부상도 다 나으면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자’라고 나왔다. 그래서 눈물의 기자회견이 나왔던 것”이라고 말했다.

사상 초유의 기록원 사태
프로농구 경기가 중단되는 이유는 각양각색이다. 판정에 불만을 품은 관중이 던진 음료수가 코트로 떨어진 적도 있었고, 부상 당한 후 치료를 위해 라커룸으로 향하던 선수가 관중과 설전을 벌인 적도 있었다. 심판이 발목을 다쳐 치료를 받아 경기가 잠시 중단됐지만, 잔여시간은 남은 2심으로 진행된 경기도 있었다. 수많은 에피소드가 있었으나 2015년 4월 2일처럼 황당한 상황은 전례를 찾을 수도, 앞으로도 나오기 힘들지 않을까.

울산 모비스와 원주 동부의 2014-2015시즌 파이널 3차전이 열린 원주종합체육관. 유재학 감독은 3쿼터 막판 선수 교체를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볼이 데드된 상태’가 아니라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이미 인바운드 패스가 이뤄져 경기가 재개된 상황이었지만, 유재학 감독 입장에서는 기록원이 신호를 늦게 줘서 그랬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정규리그, 4강 플레이오프 때도 그랬지만 그동안 실점하면 작전타임을 달라고 요청해왔다. 그런데 오늘 아침 매니저가 규정에 없는 행위라고 못하게 하더라. 그러면 순간적으로 골을 먹었을 때 타임을 불러야 하는데 그게 정말 1초도 안 되는 찰나다. 그래서 골을 먹자마자 바로 교체한다고 이야기했는데 감독관 옆에 있는 분(기록원)이 얼굴을 돌리더라. 이건 홈 어드밴티지가 아니라 규칙을 잘못 만든 거다. 나는 분명히 (심판 손에서)공이 나가기 전에 요청했기 때문에 경기가 시작됐더라도 (교체 허용을)해줬어야 하는데 안 해줬기 때문에 항의를 했던 것이다.” 당시 유재학 감독이 남긴 말이었다.

실제 흥분한 유재학 감독은 기록원에게 “뭐하는 거야, 이거!?”라며 거세게 항의했고, 기록원은 이내 옷을 챙기며 경기장을 떠났다. 이로 인해 약 5분 동안 경기가 지연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해당 기록원은 치악체육관 시절부터 일을 해왔던 베테랑이었다. 당시 동부 관계자는 “‘막말’을 들었다고 생각한 것 같다. 사실 감독관에게 항의해야 하는 것이 맞는데 자신들에게 말을 막 하니 감정이 상했을 것”이라고 견해를 남겼다.

물론 FIBA 규칙대로라면 항의 역시 감독이 아닌 주장이 직접 했어야 옳지만, 그렇다 해도 대체자가 없는 구성원이 경기 도중 자리를 박차고 나간 건 프로답지 못한 행동이었다. “이 장면을 시청자들이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요?”, “아무리 그래도 기록원이 자리를 비우면 경기가 어떻게 운영되나요?” 당시 중계진의 코멘트였다.

KBL이 “경기 진행이 매끄럽지 못했던 사항에 대해 팬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향후 안정적인 경기 운영을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을 팬 여러분께 약속드린다”라고 사과하며 일단락됐지만, KBL 경기에서 다신 나오지 말아야 할 촌극 가운데 하나였다.

역대 최고의 단기 알바생
2016-2017시즌, 통합우승을 노리던 안양 KGC는 서울 삼성과의 파이널 도중 악재를 맞았다. 백조로 거듭난 키퍼 사익스가 1차전 11분 11초만 소화한 후 발목부상을 입은 것. KGC는 외국선수 1명의 부재에도 선전을 이어갔지만, 데이비드 사이먼만으로 시리즈를 이어가는 것은 위험 부담이 따랐다. KGC는 사익스의 무리한 복귀 대신 대체 외국선수 영입을 택했고, 마이클 테일러가 가세했다.

테일러는 KGC가 2승 2패로 맞선 상황서 입국했지만, 비자 및 이적동의서 발급 등 서류 절차는 마무리되지 않았다. KGC는 여전히 외국선수가 1명만 뛰는 상황에서도 5차전을 승리로 장식, 다시 한 걸음 앞서나갔다. 사익스 부상 이후 4경기에서 사이먼, 오세근이 라건아, 마이클 크레익에 맞서 2승 2패, 챔피언결정전 우승까지 1승 남겨두게 된 것. 서류 절차를 마친 테일러는 6차전에서 마침내 선을 보였다.

팀에 적응할 여유가 없었지만, 테일러는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2쿼터에 팀 내 최다인 11점을 몰아넣는 등 20분 동안 16점 5리바운드 2어시스트를 기록하며 KGC 앞선에 힘을 보탰다. 불안요소를 지운 KGC는 이정현의 극적인 위닝샷을 더해 시리즈 전적 4승 2패를 기록, 창단 첫 통합우승을 달성했다. 테일러는 단 1경기만 뛰고 우승반지를 따냈고, 사익스와 함께 우승 행사까지 즐긴 후 미국으로 돌아갔다.

추억은 추억으로 남았을 때 아름다운 법. 테일러는 2018년 KGC와 계약하며 안양으로 돌아왔지만, 2018-2019시즌 개막까지 보름도 남지 않은 시점서 퇴출됐다. ‘단기 알바’ 이후 십자인대수술을 받아 몸 상태가 완벽하지 않았고, 시즌 도중 내구성 문제가 커질 수 있다는 우려를 지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테일러를 대신해 합류한 랜디 컬페퍼 역시 햄스트링 부상을 입어 16경기 만에 퇴출되는 등 KGC는 시즌 내내 외국선수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

“우승은 하늘이 점지해준다”
KBL 출범 후 파이널에서 통산 20경기 이상 소화한 선수는 총 24명이며, 이 가운데 우승 경험이 없는 선수는 박지현, 윤호영 단 2명이다. 특히 박지현은 앞서 언급한 2002-2003시즌 벌어진 ‘사라진 15초’를 동양 벤치에서 직접 경험한 선수였다. “경기에 집중하느라 전혀 못 느꼈다. 그런 일 때문에 우승 기회를 놓쳐 안타까웠다. 그래도 (김)승현이 형을 막을 선수가 없었고, 팀 분위기도 워낙 좋았기 때 문에 동양에서 한 번 더 우승 기회를 맞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박지현의 회고다.

동부 소속으로 치른 2010-2011시즌 파이널도 KCC의 우승을 지켜봐야 했던 박지현은 2011-2012시즌에도 파이널 무대를 밟았다. 당시 동부는 정규리그 역대 최다인 44승을 따내는 등 탄탄한 수비력을 지녀 ‘동부산성’이라 불렸다. 패기를 앞세운 KGC에 비해 객관적으로 우위에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실제 동부는 정규리그에서 KGC에 5승 1패 우위를 점했다. 하지만 동부는 주인공이 되지 못했다. 동부는 3차전에서 이기며 2승 1패로 앞서나갔지만, 이후 내리 3경기에서 패하며 또다시 준우승에 머물렀다.

특히 KGC가 우승을 차지한 6차전은 박지현에게 잊고 싶은 기억으로 남은 일전이다. 동부는 3쿼터 한때 17점 차까지 달아나며 7차전을 기약하는 듯했지만, 4쿼터 들어 수비가 균열 조짐을 보여 추격의 빌미를 제공했다. 설상가상 박지현은 경기 종료 5분 전 파울아웃됐다. 9점 차로 앞서있던 동부는 포인트가드 박지현의 퇴장 이후 5분간 2점에 그쳤고, 결국 역전패했다. 박지현은 “정규리그에서 우리가 이뤘던 업적, 기록들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돼 허무했다. 정규리그에서는 ‘상대가 우리 앞에서 아무 것도 못한다’라는 느낌도 받았는데…. 우승 세리머니를 지켜보는 게 어느 때보다 힘들었다”라고 돌아봤다.

박지현은 2014-2015시즌에 다시 파이널에 올랐지만, 동부는 역대 최초의 3연패를 노린 모비스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스윕을 당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그렇게 박지현은 선수로 치른 마지막 파이널에서도 웃지 못했고, 전력분석으로 치른 2017-2018시즌 파이널 역시 SK의 우승을 지켜봐야 했다. “우승은 하늘이 점지해준다.” 박지현이 선수, 스태프로 치른 5차례 챔피언결정전 모두 준우승에 그치며 깨달은 바였다.

2022-2023시즌 파이널에서 맞붙고 있는 KGC와 SK는 연일 명승부를 펼치고 있다. KGC가 문성곤에게 김선형의 수비를 맡기는 전략으로 시리즈 우위를 가져오자, SK는 이후 변칙 라인업과 지역방어로 주도권을 되찾았다. 오세근과 김선형이 건재를 과시한 가운데 렌즈 아반도의 탄력은 파이널의 흥미를 더해줬다. 또한 오재현은 부진을 딛고 빅샷을 터뜨렸고, 방송 인터뷰에서 눈물을 흘렸다. 많은 얘깃거리를 만들며 ‘봄의 축제’의 막바지로 향하고 있는 두 팀 가운데 최후의 승자는 누가 될까.

#사진_점프볼DB(문복주, 유용우, 박상혁 기자), KBL 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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