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의 동물원] ② 국내 동물원에 4만9천마리…폐쇄가 답일까
"교육·연구기능으로 진화"…생물다양성 위기 속 '역할론' 부각
(서울=연합뉴스) 이재영 홍준석 기자 = "야생동물은 소유 대상이 아니다".
환경부는 작년 라쿤 등록 시범사업을 추진하며 국민이 이러한 인식을 갖도록 홍보하겠다고 밝혔다.
'야생동물을 소유해선 안 된다'라는 원칙만 고려하면 '좋은 동물원'은 없다.
그러나 인간의 호기심과 즐거움을 위해 동물을 이용해선 안 된다는 명제엔 수긍하기 어렵지 않지만 '동물원 폐쇄'에는 선뜻 동의할 사람이 많지 않을 수 있다. 우선 동물원이 서식지 또는 '고향'이 돼버린 동물을 야생으로 보낼 방법을 찾기 어렵다.
기후위기에 맞선 생물다양성 보전에 동물원이 필요하다는 역할론도 있다.
국내 동물원은 114곳, 보유 동물은 5천513종 4만8천911마리다.
인류 역사 이래 동물원 존재…'권력의 상징'
동물원은 사실상 인류 역사 내내 존재했다.
동물원 역사는 지금으로부터 5천500여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2009년 고대 이집트 주요 도시 히에라콘폴리스 유적을 발굴한 결과 기원전 3천500년께 살았으리라 추정되는 코끼리와 하마, 개코원숭이, 사슴영양 등의 뼈가 발견됐다.
또한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제자인 알렉산더 대왕이 정복지에서 포획해 보내준 동물을 수집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은나라 주왕도 희귀동물을 가둬 길렀다는 기록이 있다.
역사 속 동물원은 '권력의 상징'과 같았다. 이역만리 희귀동물을 데려오는 일은 대규모 노동력과 군사력을 동원할 수 있음을 드러냈다.
초기 근대 동물원도 전시와 과시가 목적이긴 마찬가지였다. 이런 동물원을 '서커스식 동물원'(미내저리·Menagerie)라고 일컫는다.
근대 동물원 기원은 1752년 문 연 오스트리아 빈의 쇤브룬동물원이다. 쇤브룬동물원은 합스부르크 공국을 다스린 프란츠 1세가 왕비 마리아 테레지아의 선물로 만들었다.
동물복지 개념이 들어간 첫 과학적 동물원은 1829년 영국 런던에 생긴 런던동물원이다. 런던동물원은 야생동물을 연구하는 '런던동물학회'가 설립해 여전히 운영 중이다.
국내 첫 근대 동물원은 일제가 1909년 창경궁에 만든 '창경원'이다.
1980년대 창경궁 복원이 추진되면서 창경원 동물들이 이사 간 곳이 경기 과천시 서울대공원이다. 서울대공원은 1984년 개장했다.
이상행동 보이는 동물들…체험·전시 위해 학대까지
콘크리트 바닥과 촘촘한 쇠창살.
동물원 하면 떠오르는 방사장 모습이다.
좁고 휑한 우리에 갇힌 동물은 제자리를 맴도는 행동이나 깃털 등을 뽑아내는 자해행위, 종일 자는 무기력증 등을 보이는데 이를 '정형행동'이라고 한다.
동물의 정형행동은 원래 생활권보다 좁은 곳에 살 때, 습성에 따른 행동을 못 할 때, 무리생활 종인 경우 사회적 상호작용을 할 수 없을 때 나타난다.
과거부터 동물원이 동물을 '신체적으로 학대하는 공간'인 경우가 많았다.
혹고니와 홍학 등 새들은 날 수 없게 한 쪽 날개 끝을 잘리기도 했다. '먹이 주기 체험'에 동원되는 동물들은 관람객 앞에서 먹이를 먹도록 굶겨지기도 했다.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등이 2020년 펴낸 '공영동물원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공영동물원 10곳에서 최근까지 부적합한 사육 환경이 확인된다.
예컨대 청금강앵무를 보유한 동물원 8곳 가운데 6곳은 세계앵무트러스트가 권장하는 '최소 15m 길이의 공간'을 갖추지 않았다. 2곳은 청금강앵무가 머무는 공간 실내온도가 20도 이하로 남미에서 온 청금강앵무에겐 너무 추웠다. 1곳은 깃갈이를 하는 청금강앵무에게 부적합하게 공간에 자연광이 들지 않았다.
이처럼 부적합한 사육 환경 탓에 동물원 5곳의 청금강앵무가 깃털을 뽑는 이상행동을 보였다.
다른 고양잇과 동물과 마찬가지로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길 좋아하는 호랑이를 관람객보다 낮은 위치에 둔 동물원도 있었다. 또한 사막여우는 땅을 파는 습성이 있는데 이를 위한 두꺼운 흙바닥을 마련하지 않은 동물원도 있었다.
어웨어가 지난해 6~12월 환경부 의뢰로 실시한 조사에선 환경부가 정한 '동물원 관리·사육 표준 매뉴얼'이 사실상 지켜지지 않는 현실이 드러났다.
조사가 이뤄진 동물원 86곳 가운데 포유류에서 주어진 공간 75% 이상이 기준을 충족한 곳은 44.7%(34곳)에 그쳤다. 펜스 75% 이상이 높이 기준에 부합한 곳은 18곳(23.7%)에 그쳤다. 야외방사장(조사 대상 67곳)과 실내방사장(48곳) 75% 이상이 기준에 부합한 곳은 각각 49.3%(44곳)와 75%(36곳)에 머물렀다.
경기도 동물원 등록현황을 보면 19개(개체수 등 자료가 누락된 1곳 제외) 동물원 면적 합은 387만1천300여㎡이고 동물 수는 1만723마리다. 동물원 전체를 동물이 쓴다고 '가정'하면 동물 1마리당 공간이 361㎡(109평)이다.
다만 이는 에버랜드와 서울대공원, 안성팜랜드 등 국내에서 손꼽히는 대형 동물원이 반영된 결과다. 3개 동물원을 빼면 동물 1마리당 공간은 3.7㎡로 줄어든다.
사육사 1명당 동물은 47.6마리, 수의사 1명당 동물은 428.9마리에 달했다.
환경부 자료에 따르면 2019년 12월 기준 동물원 110곳 가운데 면적이 1만㎡ 이상인 대형은 23곳에 그친다. 1천㎡ 미만인 소형은 47곳이나 됐다.
또 민간동물원(90곳) 가운데는 '실내동물원'이 51.2%(46곳)나 됐다.
환경부는 "동물원 규모는 작아지고, 야외에서 실내로, 관람형에서 체험형으로 변형되고 있다"라면서 "사육환경과 동물관리 적정성 등을 전문적으로 평가·점검할 시스템이 없다"라고 밝혔다.
미국동물원수족관협회(AZA) 인증을 받으면 시설과 동물관리 등을 주기적으로 평가받게 되는데 국내 동물원 중 인증받은 곳은 에버랜드와 서울대공원 2곳뿐이다.
지방자치단체 등이 운영하는 공영동물원이라고 사정이 나은 것도 아니다.
공영동물원 대부분이 선진국에서는 20세기 중반 철거한 1세대 감옥형 전시관을 여전히 사용하고 전시관에 동물이 은신할 곳이 없는 등 '관리자·관람객 중심'이어서 동물복지를 저하한다는 것이 2019년 환경부의 평가였다.
폐지론 제기되지만…"동물 한꺼번에 내보내기 어려워"
동물복지 요구가 커지면서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동물원 폐지론이 제기된다.
야생동물이 있어야 할 곳은 야생으로, 인간이 만든 공간에 갇혀 자유를 억압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세계동물보건기구(OIE)는 동물복지를 '질병 예방·치료·쉼터 제공·영양공급 등을 통해 동물이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건강하고 본능적인 행동을 표현할 수 있는 상태'라고 정의한다.
다만 당장 동물원을 폐쇄하면 동물들이 갈 곳이 없다는 점과 동물원도 진화하고 있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형주 어웨어 대표는 연합뉴스 통화에서 "열악한 시설부터 단계적으로 없애나가는 것이 현실적인 방법"이라면서 "(보유 동물을) 한꺼번에 내보내긴 어렵다. 기후도 서식지도 야생동물이 처하는 상황은 녹록지 않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동물원을 찾는 사람이 여전히 많다는 점도 폐지의 현실성을 떨어뜨린다.
동물원 다수가 민영 시설이다 보니 수익을 내야 동물복지도 향상되는 경향이 있다. 현행법은 동물원 휴·폐원 시 사전에 신고하게 하는데 경영난 등을 이유로 동물원을 닫아버리고 동물을 방치하는 일을 막기 위해서다.
폐지론에 맞서 동물을 전시하는 공간에서 '동물이 서식하는 동산'으로 진화하려는 동물원의 노력도 있다.
예컨대 아일랜드 더블린동물원에는 서부로랜드고릴라를 위한 6천㎡에 달하는 우림이 있다. 관람객은 숲과 초지, 강으로 구성된 거대한 서식지를 통과하면서 고릴라를 찾는다. 너무 넓다 보니 자연히 고릴라를 못 볼 수도 있다.
독일 라이프치히동물원도 야생 서식지를 재현한 뒤 구름다리를 설치해 인간과 동물 사이에 거리를 확보했다.
국내에서는 오는 12월 14일 '동물원 허가제'가 시행된다.
동물 생태습성을 고려한 시설과 복지에 관한 기준을 충족한 동물원만 운영되게 하는 것이 제도의 목표다.
생물다양성 위기에 커지는 동물원 역할론
동물원의 긍정적 기능도 무시할 수 없다.
1980년대부터 동물원 역할은 '종 보전', 교육, 연구, 오락(레크리에이션) 등 4가지로 정리됐다. 인간에게 볼거리를 제공하는 것만이 동물원의 역할이 아닌지 40년 이상 흐른 것이다.
최근에는 '동물과 인간의 웰빙'도 동물원의 역할에 추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외국 동물학계 일각에서 나온다.
기후위기와 생물다양성 위기는 동물원의 역할을 키우고 있다.
영국 체스터동물원 소속 연구원인 세라 스푸너는 최근 논문에서 "기후위기와 생물종다양성 위기의 시대에 동물원과 수족관의 종 보전 역할은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라고 주장했다.
국내 동물원 허가제 도입에 맞춘 시행령·시행규칙 마련 연구를 진행한 한국환경법학회는 "동물원 정의에 '생물다양성 보전'을 추가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서울대공원과 에버랜드, 청주동물원은 현재도 '서식지 외 보전기관'으로서 멸종위기 동물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수행 중이다.
3개 동물원은 호랑이·표범·스라소니·삵·여우·반달가슴곰·수달·산양·두루미·저어새·흰꼬리수리 등 멸종위기 동물 24종 432마리를 보호하고 있다.
청주동물원 김정호 진료사육팀장은 서식지 외 보전기관을 '동물원과 자연의 소통'으로 규정한다.
그는 2019년 영화 '동물, 원' 시사회 후 진행한 질의응답에서 "멸종돼가는 동물이 다치면 이곳에서 보호해주고 증식이 되면 서식지로 나가는 것"이라면서 "서식지 외 보전기관은 서식지가 좋아지면 기능을 다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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